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호미 들기 전 연필 잡는 '농사꾼 소설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유년 때 겪은 전쟁의 기억 담아 장편 '임진강에… ' 낸 황의진씨

"젊은 세대가 6·25 아픔 알아주길"

경기도 파주를 떠난 적 없다. 6·25전쟁도 고향에서 맞았다. 다섯 살 때였는데 기억이 또렷하다. 최근 장편소설 '임진강에 상처를 씻다'(북인)를 낸 황의진(72·사진)씨는 "겪은 일 70%에 들은 이야기 30%를 섞었다"고 말했다. 첫 소설이다.

원래 직업은 농부다. 전쟁은 유년(幼年)을 앗아갔다. 아버지는 인민군에게 납치됐다. 어머니는 행방불명. 국민학교(초등학교)를 겨우 마치고 남의 땅 빌려 농사지으며 평생을 살았다. 그래도 딸·아들 넷을 대학 공부 시켰다. 지금도 매일 새벽 4시 50분 임진강 건너 민통선 안에 들어가 벼농사를 짓는다.

조선일보

/성형주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소설은 다섯 살부터 아홉 살까지 겪은 전쟁 전후의 일을 기록한다. 터키군의 병사 처형 장면은 전쟁의 일면을 드러낸다. 마을 처녀를 강간하고 살해한 병사를 형틀에 매단 모습을 생생히 묘사했다. 중공군에 대한 기억은 부정적이지 않다. "중공군이 마을을 점령했을 때 우리 집에 10여 명이 머물렀어요. 안방을 우리가 쓰게 하고 자신들은 건넌방을 썼어요. 만두를 쪄서 나눠 먹기도 했어요." 중공군을 미화하려는 게 아니다. "개인적 경험과 국가의 차원은 다른 것이죠."

일본식 영어를 많이 쓰던 당시 기억을 되살려 '제모시'(GMC 미군 트럭) '싸진'(미군 부사관) '콜프'(하사) '스피아깡'(지프차 뒤에 붙이는 기름통) 같은 말을 당시 발음으로 적어 현장감을 높였다.

글을 쓰기 시작한 때는 11년 전 아내가 세상을 떠나면서부터. 먼저 시와 수필을 썼다. 2013년 첫 시집 '임진강'을 냈다.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절절하게 담았다. 4년 전부터 소설에 도전했다. 매주 목요일 서울 명동 어느 백화점에서 구효서 소설가의 강의를 듣고 '소설 쓰기'를 배웠다.

"내가 겪은 이야기를 그냥 없애버리기에는 억울하고 안타까웠어요. 선배 세대가 이렇게 고생해서 지금의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젊은 세대가 알았으면 합니다."

'농사꾼 소설가'는 매일 논으로 나가기 전 2시간 동안 5~6매를 쓴다. 겨울에는 더 많이 쓴다. 자신을 '전업농(專業農)'이라 소개했는데 '전업 작가'라 해도 틀리지 않을 듯했다.

[이한수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