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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右로 기운 美대법원… 트럼프 ‘反이민’ 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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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치 입성후 보수판결 줄이어

동아일보

닐 고서치 신임 대법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임명한 닐 고서치 연방대법관(50)이 중요 사건에서 보수적인 판단을 잇달아 내리면서 미 연방대법원의 보수화 경향이 가속화되고 있다. 메이지 히로노 상원의원(민주·하와이)은 반(反)이민행정명령은 물론이고 동성결혼과 총기 소유 등 이념 대립이 첨예한 사안들에 대해 거침없이 보수적 판단을 내리는 고서치와 기존 대법관들을 ‘성경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종말을 알리는 말 탄 기사들’이라고까지 불렀다.

대법원은 회기를 마치는 26일 트럼프의 반이민행정명령의 효력을 일부 인정하며 하급심 판단을 뒤집었다. 행정명령이 겨냥한 6개국(리비아, 이란, 시리아 등)의 시민 가운데 미국과 ‘진실한(bona fide)’ 관계가 없는 사람들에겐 90일 입국 금지 등 행정명령 주요 조치의 효력이 인정된다고 결정한 것이다.

고서치는 일부가 아닌 전체의 효력 인정이 바람직하다는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의 의견에 동의했다. “(미국과) ‘진실한 관계’가 정확히 무슨 뜻인지 법원이 결정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다음 회기에도 트럼프의 손을 들어줄 것을 예고했다.

동성 부부에게 결혼 케이크 판매를 거부했다가 차별금지법 위반 선고를 받은 콜로라도주 빵집 주인의 항소를 대법원이 다음 회기에서 다루게 된 것도 종교상 양심의 자유를 강조하는 고서치의 영향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동성 부부의 아기 출생증명서에도 이성 부부의 경우처럼 부모 신원을 자동적으로 등록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단에 대해서도 고서치는 반대 의견을 냈다. “생물학을 바탕으로 한 출생 등록이 위헌이란 말은 (동성결혼 합법화 판결문) 어디에도 없다”는 것.

대법원이 검토를 거부한 캘리포니아주의 엄격한 총기 소유 법안에 대한 위헌심판 청구에 대해서도 고서치는 ‘수정 헌법 제2조’를 강조하며 검토 찬성 의견을 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미국인들은 ‘50년 만에 가장 진보적인 대법원’ 탄생이 임박했다며 흥분했다. ‘보수 법조계 거두’ 앤터닌 스캘리아 대법관이 사망한 뒤 중도 진보 성향의 메릭 갈런드 워싱턴 연방항소법원장이 대법관으로 지명되자 ‘진보 5 대 보수 4’의 구도가 가능해지는 듯했다. 하지만 상원 다수당인 공화당이 이를 막는 동안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됐고 ‘스캘리아의 적자’로 불리는 고서치가 등장한 것이다.

‘보수 5 대 진보 4’가 유지된 가운데 중도 보수 성향의 ‘캐스팅보트’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81)이 이번 회기에 은퇴 선언을 하지 않으면서 진보 진영은 한숨을 돌리는 형국이다. 고령의 케네디가 떠난 자리에 강경 보수 대법관이 충원되면 미국 진보의 먹구름은 한층 더 짙어진다. 강경보수인 이른바 ‘종말의 기사’들이 현 3인에서 4인으로 늘게 되고 중도 보수 성향의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캐스팅보트를 쥐게 되는 것이다.

CNN은 “케네디의 은퇴는 트럼프를 ‘새로운 레이건’으로 만들 것이다. 미국의 법질서 방향을 바꾼 대통령으로 기억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는 지난해 대선 유세에서 “내가 싫어도 당신들은 나를 뽑아야 한다. 연방대법관을 생각해 보라. 미안하다. 당신들은 선택권이 없다”며 흔들리는 보수 표심을 붙잡는 데 성공했다.

한편 연방대법원이 반이민행정명령의 일부 효력을 인정함에 따라 미국에 가족이나 직장이 없거나 학교를 다니고 있지 않은 6개국 시민들은 당분간 미국에 오기 어렵게 됐다. 난민의 경우에도 미국에 연고가 없는 경우 입국이 힘들어졌다. 대법원은 새로운 회기가 시작되는 10월 해당 행정명령과 관련한 심리를 다시 열기로 했다.

트럼프는 트위터에 “미국의 안보와 안전을 위한 굉장한 날”이라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국토안보부도 “나라를 보호하기 위한 이성적이고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됐다”며 “국무부, 법무부와 협의해 정책 시행을 위한 세부사항을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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