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0 (토)

홍콩 삼키는 중국인 인해전술 … 정식 이주만 한해 5만 명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홍콩 반환 20년 특파원 현장 2신

당국, 본토인 이민 우대 정책

공영주택 입주 자격도 빨리 줘

현지선 “중국에 동화시키는 전략”

홍콩인들은 해외 이민 꿈 커져

2009년 이후 매년 7000명 떠나

중앙일보

시진핑(가운데) 중국 국가주석이 27일 베이징에서 렁충잉(오른쪽) 홍콩 특별행정구 행정장관과 캐리 람(왼쪽) 차기 행정장관의 안내를 받으며 ‘홍콩 반환 20주년 성과전’을 관람하고 있다. 지난 3월 선거에서 당선된 캐리 람 차기 행정장관은 친중파로 알려져 있으며, 다음달 1일 취임한다. [신화=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홍콩 침사추이(尖沙咀)의 페닌슐라호텔과 하버시티 일대는 명품 상점과 보석상이 즐비한 굴지의 쇼핑가다. 이곳에서 가장 환영받는 손님은 중국인 관광객들이다. 가방 속에 위안화 현찰을 가득 채워오는 ‘큰 손’들도 드물지 않다. 이탈리아계 브랜드 매장의 종업원은 “최근 중국 당국이 자본 유출을 규제한 영향 때문인지 현찰로 결제하는 사람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지난 한 해 동안 홍콩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4277만 명으로 전체 외국인 관광객의 75%를 차지했다.

홍콩으로 이주해 온 중국인도 대폭 늘었다. 26일 퇴근 시간에 행정기관과 금융기관, 기업 사무실이 밀집한 애드미럴티 역에서 지하철을 타니 홍콩인들이 쓰는 광둥어뿐 아니라 표준 중국어인 푸퉁화(普通話)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홍콩섬과 카오룬(九龍)반도를 오가는 연락선인 스타페리에서 만난 저우(周)는 연신 ‘축하 홍콩 반환 20주년’이라 쓰인 대형 조명을 배경으로 일행들에게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홍콩에서 산 지 오래됐다”는 그는 “고향 친척들을 초청해 홍콩 구경을 시켜주는 중”이라고 했다. 저우처럼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중국에서 건너온 이들을 ‘신(新)이민’이라 부른다. 1949년 중국 공산정권 수립을 전후해 넘어온 세대와 중국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시절 목숨을 걸고 홍콩으로 건너온 불법 월경자에 이은 제3의 이민행렬인 셈이다.

홍콩으로 이주해 오는 중국인은 한 해에 약 5만 명에 이른다. 반환 이후 20년간 홍콩 인구는 648만 명에서 740만 명으로 늘었다. 50대 택시기사 우(伍)는 “구직·결혼 등 다양한 이유로 사람이 홍콩으로 건너오고 있다”며 “꾸준히 인적 융합이 일어나 홍콩이 중국에 동화하도록 하는 것이 중국 당국의 전략 아니겠냐”고 말했다. 중국 당국은 과거 신장(新疆)과 티베트 등 소수민족 거주지역에 한족의 이주를 장려한 바 있다.

홍콩인들이 신이민을 보는 시각은 그다지 곱지 않다. 직장 여성 재클린 창은 “홍콩 당국이 신이민 우대 정책을 펴고 있다”며 “홍콩인들이 정부가 저렴하게 공급하는 공영주택에 입주하려면 보통 7∼8년씩 기다리지만, 중국인들은 모든 방법을 동원해 1∼2년만에 입주 자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학자 출신의 야당 의원 쳉충타이(鄭松泰)는 26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단청증(중국인 대상의 장기체류 비자) 발급 대상자를 홍콩 당국이 아니라 중국측이 정하고 있다. 홍콩 정부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정작 홍콩인들 사이에선 탈(脫)홍콩을 꿈꾸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홍콩에 주재하는 서방 외교관은 “해외 이민 희망자가 80%에 이른다는 여론 조사 결과도 있다”고 말했다. 홍콩 보안국의 통계에 따르면 2009년 이후 매년 7000∼8000명이 해외 이민을 가고 있다. 줄곧 미국, 호주, 캐나다가 선호대상이었지만 최근에는 대만 이민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중국 비판 서적을 출판하다 중국 당국에 연행돼 고초를 겪은 퉁루완(銅?灣) 서점의 람윙키(林榮基)점장은 “대만으로 옮길 예정”이라고 밝혔다.

20년 동안 중국 정부는 홍콩과의 일체화 작업을 가속화해왔다. 하지만 홍콩인이 스스로 느끼는 정체성은 그런 노력과는 반대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지난달 홍콩대학 여론조사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63%의 응답자가 “나는 홍콩인”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중국인”이라고 대답한 사람은 35%에 불과했다.

홍콩=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예영준 기자 yyjune@joongang.co.kr

▶SNS에서 만나는 중앙일보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포스트]

ⓒ중앙일보(http://joongang.co.kr) and JTBC Content Hub Co., Lt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