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6 (금)

겹겹이 쌓은 색감, 찢어내며 드러낸 조형미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전병현 개인전 ‘어피어링 시리즈’…한지 소재 6~7장 겹쳐내며 그려

경향신문

전병현의 ‘Appear-Fruit’(혼합매체, 224×160㎝).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수묵 중심의 한국화에서는 먹의 농담에 따른 번짐과 스며듦의 효과가 중요하다. 덧칠을 통해 색을 드러내는 서양 유화와 달리 덧칠을 허용하지 않는 수묵은 단 한번의 붓질로 먹 색감의 다양한 변화를 이끌어낸다. 유화 속의 색이 겉으로 드러나려는 의도가 강하다면, 한국화 속의 먹색은 상대적으로 은근하게 숨어드는 색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만의 작품세계로 주목받는 중진작가 전병현(60)은 한국적 정서를 다양한 주제와 소재, 기법의 서양화로 표현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늘 새로운 실험을 감행하는 그가 신작으로 꾸민 개인전 ‘어피어링 시리즈’(Appearing Series, 가나아트센터)를 통해 또 한번 독특한 작업을 선보여 주목받고 있다.

경향신문

전병현의 ‘Appear-Blossom’(혼합매체, 197×26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신작들은 전통 한지를 소재로 한다. 30여년 전 프랑스 유학(파리 국립미술학교) 시절 고암 이응노 화백의 작업실에서 공부할 때 한지 작업을 접한 그는 그동안 유화와 더불어 한지를 소재로 한 작업도 꾸준히 해왔다. 특히 10여년 전 한지 죽과 대리석 가루 등을 활용한 부조 회화인 시리즈 ‘만개(Blossom)’는 국내외에서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이번 신작들은 한지를 소재로 하되 조형적 즐거움, 색감을 중시한다. 서양화이면서도 스며든 색감, 한지가 머금은 독특한 색감을 찾아내는 작업이다. 그는 한지에 수용성 안료 등으로 그림을 그리고, 마르면 그 위에 다시 한지를 붙인 뒤 다시 그리기를 반복했다.

6~7겹의 한지 그림이 겹쳐지면 그는 화면 곳곳을 찢어냈다. 6겹 아래에 숨어 있던 색감이 은은하게 드러나는가 하면, 층마다 다르게 색감이 나타난다.

물론 화면 곳곳은 찢어낸 한지 조각들이 나풀거린다. 기존 평면 회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미묘한 변화들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숲 같은 자연 풍경이든 먹거리가 풍성한 식탁의 정물이든, 인물 초상이든 구상과 추상을 넘나드는 작품들은 ‘그리고 붙이고 찢어내는’ 반복 작업을 통해 독특한 색감과 더불어 조형적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40여 점의 신작에서 작가의 농익은 조형감각이 읽혀진다. “최근 6~7년 신작을 하면서 과거와 달리 어떤 집착을 내려놓았다고 할까요. 작업하는 제가 즐겁고, 보는 이가 즐거운 그런 조형미 있는 작업을 그저 기대했을 뿐이죠.” 욕심을 비워낸 중진작가의 여유로움, 자유분방함은 재료, 화법을 넘나들며 신선한 충격을 전한다. 작가의 예술적 상상력, 1000년의 세월을 담아내는 전통 한지의 새로운 표현양식을 새삼 생각해 볼 수 있는 전시회다. “한 주제를 평생 파는 작가도 의미 있지만, 적어도 저는 늘 새로운 것을 보여주는 작업을 하고자 한다”는 작가다운 작품들이다. 전시는 7월16일까지.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 경향신문 SNS [트위터] [페이스북]
[인기 무료만화 보기]
[카카오 친구맺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