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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앵커브리핑] 5행시, 6행시…'주고받는 말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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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합니다.

"열흘에 한 번 정도 집안의 편지를 점검하라."

다산 정약용 선생이 아들 학연과 학유에게 당부했던 말이었습니다.

다산의 당부는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편지를 한 통 쓸 때마다 두세 번씩 살펴보며, 이 편지가 길가에 떨어져 나의 원수가 보더라도 아무 일 없을지, 또한 편지가 수백 년 뒤에까지 전해져 안목 있는 사람들이 본다 해도 놀림거리가 되지 않을지 생각해본 후에 편지를 봉하라고 하였습니다.

조선 최고의 실학자이자 사상가, 문장가였던 그였지만 다산은 늘 스스로를 돌아보며 당부하고 삼갔던 것이었습니다.

옛 기록들을 살펴보면 선조들은 늘 말과 글을 경계하고 두려워했습니다.

사사로이 쓴 편지글은 물론이거니와 오래된 나라와 새로운 나라가 한판 세를 겨루던 여말선초 시기, 자신의 목숨을 걸고 정적과 벌인 사투에서조차 그들은 시구를 지어 주고받았습니다.

625년 전 어둠에 휩싸인 개성 선죽교. 그 역사적인 장면이 우리에게 이토록 생생한 것은 '하여가'와 '단심가' 그들이 주고받았던 사뭇 비장한 시구들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치는 예술'이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그들은 목숨을 뺏고 빼앗기는 절체절명의 시간에도 상대방을 필요 이상으로 자극하지 않으며, 품격 있게 자신의 뜻을 전하여 왔던 것입니다.

5행시 그리고 6행시… 모처럼 정치인들이 주고받은 시구가 논란이 됐습니다.

상대방을 향해 던진 시구 안에는 서로를 향한 감출 수 없는 적의와 비난만이 가득했으니…

비록 5행시니 6행시니 하는 것이 애초부터 그 어떤 품격을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풍자만을 위함이었다 하더라도 그들이 시로 인해 얻으려 했던 것은 무엇이고 말하고자 했던 바는 무엇이었을까….

"편지가 수백 년 뒤에까지 전해져 안목 있는 사람들이 본다 해도 놀림거리가 되지 않을지 생각해본 후에 편지를 봉하라"

다산이 남긴 그 깊은 뜻은 주고받는 말의 품격이 있어야 대화도 되고 정치도 민생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간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물론 현실의 정치에선 5행시 6행시보다 더한 '아무 말'도 횡행합니다만…

오늘(26일)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손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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