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9 (금)

[해리포터 20년]②도깨비연구 홀대 나라…해리포터 없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국판 해리' 탄생 조건풍부한 소설 자료英, 신화·전설 등 원천 콘텐츠 풍부

한국에선 '가치없다' 여겨 연구 외면

스토리텔링

단순한 영웅 성장기론 독자층 한계선악·우정 등 사회적 담론 끌어내야

이데일리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나를 기른 건 8할이 해리포터였다”, “스네이프를 따라해 머리를 장발로 길렀다”, “입시로 시달릴 때 유일한 탈출구”, “번역본이 나오려면 4개월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영어에 소질 없던 내가 원서를 번역해 읽기 시작했다.” “지금은 자녀들과 함께 즐겨본다.”

이른바 ‘해리포터 효과’다. 1997년 6월26일 태어난 스무살 해리포터의 인기는 여전하다. 그저 대중이 좋아하는 판타지 이야기로만 치부해 버리기 어렵다. 문화현상을 넘어 사회적·경제적 현상으로 평가받을 정도로 수많은 기록들을 남겼다. 유통 여행 산업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데일리

해리포터의 성공은 어디서 왔을까. 출판·서점·유통·문화평론가들은 “결국 이야기의 힘”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성수 문화평론가는 “성인과 아동 모두에게 인기 있는 서적은 해리포터가 거의 유일무이하다”면서 “그냥 게임하는 성장소설이 아니다. 선악·종교·정치·사회적 이슈와 갈등 등 다양한 담론을 이끌어낸 인문학적 뿌리가 탄탄한 이야기는 꾸준한 인기의 원동력”이라고 설명했다.

김도훈 예스24 문학 MD는 “해리포터 시리즈는 그야말로 꾸준하게 판매되고 있다. 탄탄한 독자층의 호응이 눈에 띈다. 특히 10대 시절부터 책을 접한 20대가 강력한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출판계에 판타지 장르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다. 해리포터의 국내 판권을 따낸 문학수첩 관계자는 “한 소년의 성장기와 통과의례를 다룬 고전적인 이야기이면서도 국가와 성별·연령을 초월해 매료시킬 요소가 굉장히 많다”며 “국내에서 그동안 외면 받았던 판타지 책들의 번역서가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한 출판사 관계자도 “워낙 판매부수가 압도적인 책이라 국내에서 ‘해리포터’가 나오면 해외 소설분야에서는 당시 신간 자체가 잘 나오지 않았다”며 “다른 해외원서와 국내 도서 판매량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회고했다.

해리포터의 성공에는 제도적 장치도 뒷받침했다. 영국은 문화산업을 개인의 지적재산으로 강력하게 보호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가치와 고용, 경제 발전을 창출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미디어산업 전반에 걸쳐 종사하는 작가들을 대표하는 대영작가조합이 노동착취에 대한 제도적 보호를 위해 작가 개별계약 자문업무 등을 수행한다. 최저임금 기준을 설정하고 동의계약서를 작성, 연금제도를 제공한다. 작가조합 외에 셰일 랜드 어소시에이츠와 같이 작가 편에서 제작사와 유통사의 저작권을 중개하는 기관도 존재한다.

△한국산 ‘해리 포터’가 없는 이유

한국판 해리포터가 없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원천 콘텐츠를 여전히 홀대하는 사회적 인식과 정부의 제도적 지원에 대한 부재를 꼽았다. 영국은 고대 신화부터 개인사까지 이야기 원천을 발굴하고 대중에게 선보이는 작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지원하는 지역 단위 스토리텔링클럽만 3000여개를 상회한다.

이데일리

반면 우리나라 원천 콘텐츠의 토양은 빈약하다. 이를테면 ‘도깨비’ 관련 드라마를 쓰려면 역사 고증 등 탄탄한 인문학적 토대를 바탕으로 상상력을 펼쳐야 하지만 정작 도깨비 설화를 연구한 자료는 많지 않다. 김성수 문화평론가는 “원천 자료 연구를 가치없다고 여기는 사회 인식이 문제다. 영국에서는 마녀·요정 등 온갖 잡스러운 연구들이 정부 지원 속에서 수집될 뿐 아니라 고스란히 자양분이 되어 작품이 된다”고 했다. 이어 “글로벌한 콘텐츠를 갖기 위해서는 원천 콘텐츠인 이야기 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며 “‘도깨비’ ‘태양의 후예’ 등이 흥행에 이어 다른 분야로 확장을 꾀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꼬집었다.

국내 콘텐츠 산업은 2011년 82조9678억원, 2012년 87조2716억원, 2013년 91조2096억원, 2014년 94조9472억원으로 4년간 연간 평균 4.9%씩 성장했다. 2015년엔 100조4863억원을 기록, 2016년 105조2000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콘텐츠의 원천이 되는 이야기산업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하 콘진원)에 따르면 국내 이야기 산업은 태동 단계로 보고 있다. 김숙 콘진원 정책개발팀 책임연구원은 “역사기록과 설화 등의 원천 소재가 드라마, 방송, 출판, 전시를 넘어 교육과 홍보 수단 등 일반 산업에까지 활용되는 추세“라며 ”제도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안정적 근거법이 없는 만큼 이야기산업 진흥 관련 법안 발의를 진행 중이다. 폐쇄적이었던 원천소재 거래를 활성화시키는 환경조성에 힘쓰고 있다”고 했다.

김 연구원은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안정적 토양을 만드는 중”이라면서 “해리포터 같은 대박난 작품은 없지만 실제로 성과가 작게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최근 사업 10년차에 접어든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전 등 이야기를 만들고 이를 축적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김 연구원은 “‘태양의 후예’의 경우 스토리 공모전에서 뽑혔던 ‘국경없는 의사회’ 이야기가 드라마로 확장돼 공동집필한 사례”라며 “최근 국제도서전에서도 완결된 작품 이전에 스토리 단계에서 출판하길 원하는 작가와 출판업자를 피칭하는 사업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김성수 평론가는 "20년을 넘어 100년이 넘는 콘텐츠의 힘은 결국 깊은 연구와 질 높은 원천 콘텐츠를 활용한 결과물에서 나온다"면서 "이 노력들 역시 충분히 보상받아야 한다. 세계적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도록 낡은 시스템도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데일리

이데일리



<ⓒ성공 창업 프랜차이즈 정보허브 이데일리 EFN -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