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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단 100초만에 마을 사라져… 아기 울음에 깬 가족 3명만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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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쓰촨성 신모村 산사태로 100여명 사망·실종]

오전 5시45분쯤 산사태 일어나 자고 있던 주민들 대부분 '봉변'

추가 생존자 찾기 쉽지 않을 듯

지진·산사태에 취약한 지역… 100년새 대참사만 3차례

이번 사고는 폭우가 직접적 영향

2008년 원촨(汶川) 대지진 때 큰 피해를 입었던 중국 쓰촨(四川)성의 한 산골 마을에 이번에는 거대한 산사태가 덮쳐, 마을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주민 100여명이 숨지거나 실종됐다.

지진으로 지반이 약화된 상태에서 최근 내린 폭우가 사고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마을은 지난 1세기 동안 지진과 홍수 등으로 2000명 이상이 숨지는 대참사만 세 차례나 겪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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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만㎥ 토사가 와르르… 흔적도 없이 사라진 62가구 - 지난 24일(현지 시각) 대규모 산사태가 발생한 중국 쓰촨성 마오현 뎨시진 신모(新磨)촌에서 군인과 구조대원이 토사와 돌덩이를 치우며 구조 활동을 하고 있다. 이날 산사태로 한 산골 마을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며, 주민 100여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최근 내린 폭우로 지반이 약화된 것이 이번 산사태의 원인으로 알려졌다.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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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영 신화통신과 CCTV 등에 따르면, 지난 24일(현지 시각) 오전 5시45분쯤 쓰촨성 청두(成都)에서 북쪽으로 170㎞ 떨어진 티베트족·강(羌)족자치주 마오(茂)현 뎨시(疊溪)진 신모(新磨)촌에서 산사태가 일어났다. 뒷산에서 흘러내린 토사와 거대한 바위들이 약 100초에 걸쳐 산 아래 62가구를 초토화시켰다. 잠들어있던 주민들은 미처 피신할 틈도 없이 그 아래 묻혀버렸다. 일가족 3명이 극적으로 구조됐으나, 25일 오후 현재 10명이 시신으로 발견되고 93명은 실종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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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아빠까지 살린 아기 - 지난 24일(현지 시각) 중국 쓰촨성 마오현 신모촌에서 발생한 산사태에서 구조된 생후 38일 된 차오다오춘(喬道淳·남)이 청두 쓰촨대학 화시아동병원에서 간호를 받고 있다. /쓰촨성 정부 웨이보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진 3명은 차오다솨이(喬大帥·26) 부부와 생후 38일 된 아들 차오다오춘(喬道淳)이었다. 이 가족은 아기 울음 때문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차오씨 부부는 CCTV 인터뷰에서 "새벽 5시쯤 아기가 우는 바람에 일어나 기저귀를 갈아주고 달랜 뒤 다시 자려고 하는데 마을 뒤에서 굉음이 들리고 땅이 흔들렸다"고 말했다. 부부는 아기를 안고 밖으로 나가려 했지만 토사의 압력 때문에 이미 문이 쉽게 열리지 않는 상황이었다. 토사 속에서 허우적대던 세 식구는 사고 발생 5시간 만에 하천 건너 마을 주민들에 의해 구조됐다. 많은 토사와 물을 삼킨 아기는 위 세척과 함께 폐렴 치료를 받고 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차오씨는 "두 살 난 첫째 딸은 같은 마을 장인 댁에 있었는데 장인·장모와 딸아이는 땅 아래 묻혀있다"고 말했다.

차오씨 세 식구가 구조된 지 4시간 만인 오후 3시쯤 또 다른 기적이 일어나는 듯했다. 주민 명단에 나온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던 구조요원이 한 여성과 통화가 됐다. 바위 아래 깔렸다는 여성은 흐느껴 울었다. 구조요원이 계속 말을 거는 사이 수십명이 미친듯이 땅을 팠다. 그러나 대답이 없었다. 한 시간 뒤 여성은 남편과 함께 시신으로 발견됐다.

현장에서는 남편이 아내 위에 엎드려 꼭 끌어안은 모습의 부부 시신도 발견됐다. 구조요원들은 "남편이 아내를 지키려 했던 것 같다"며 눈물을 훔쳤다.

중국 정부는 3000여 명의 구조요원과 중장비와 구조견, 생명탐지기를 동원해 필사적인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도 "모든 자원을 동원해 생존자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흘러내린 토사와 바위가 800만㎥나 되고 산사태 낙차가 최대 1600m나 돼, 생존자가 나올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현지 매체들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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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에는 호스텔도 있어 한때 관광객 피해도 우려됐지만, 관광객 142명은 사고 전 모두 마을을 떠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 대사관은 "한국인 피해자는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현지 당국은 지난 21일 이후 계속된 비로 지반이 약화된 것이 사고 원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에서는 2008년 5월 원촨 대지진 이후 이 지역 지반이 불안정한 상태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산사태가 난 마오현은 8만명의 사상자를 낸 원촨 대지진의 진앙에서 직선으로 110㎞ 떨어져 있다. 마오현도 당시 3933명이 숨지고 가옥의 80%가 파괴됐다.

이번에 산사태 현장인 뎨시진은 과거에도 지질(地質) 관련 대참사가 잦았던 '비극의 마을'이었다. 1933년 8월 규모 7.5의 대지진이 덮쳐 6800여 명이 숨졌고 두 달 뒤인 10월에는 대지진으로 형성된 언색호(堰塞湖·지진 등의 영향으로 생겨난 자연 호수)가 붕괴하면서 2000여 명이 수장됐다. 그 일로 마을 전체가 지금의 위치로 이주했지만 80여 년 만에 또다시 마을이 사라지는 비극을 맞았다.



[베이징=이길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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