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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여행기자의 미모맛집]24 물컹한 다슬기, 쫀득한 수제비…이렇게 궁합이 좋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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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구례 다슬기수제비 맛집 '부부식당'

구례에선 흔한 것도 범상치 않은 맛

회무침·밑반찬도 훌륭

지리산이 굽어보고 섬진강이 휘감는 전남 구례는 청정 식재료가 그득한 맛의 고장이다. 지리산권에서도 호남 특유의 '개미(깊은 맛을 뜻하는 전라도 사투리)'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 구례다. 경남 하동 사람들 사이에서 제대로 한 끼 먹으려면 구례로 넘어간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하는 게 이해가 간다. 신기하게도 같은 메뉴인데도 구례에 가면 다른 지역 음식보다 훨씬 맛깔나다. 섬진강 주변에서 흔히 먹는 다슬기도 구례에서 먹으면 결코 흔치 않은 맛을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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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구례의 대표적인 향토음식 '다슬기 수제비'. 구례읍 부부식당이 원조 격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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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 맑은 고장에서는 예부터 다슬기를 많이 먹었다. 동강이 흐르는 강원도 영월, 달천이 굽이치는 충북 괴산, 그리고 섬진강변의 경남 하동과 구례가 대표적이다. 다슬기 해장국 혹은 올갱이국(올갱이는 다슬기의 충청도 방언)이 주요 메뉴다. 다슬기 한 줌에 아욱과 부추 등을 넣고 끓인 뒤 밥과 함께 먹는다. 그런데 구례에는 조금 다른 다슬기 요리가 있다. 바로 다슬기 수제비다. 지금은 다슬기 수제비를 파는 식당이 제법 많지만, 원조 격으로 꼽히는 집은 구례읍에 있는 부부식당(061-782-9113)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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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읍사무소 인근에 있는 부부식당은 25년이나 됐다. 식당은 허름하지만 맛은 비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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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식당은 약 25년 전 문을 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 부부식당을 운영하는 최용구(61)·박남순(59) 부부가 식당을 맡은 게 대략 25년 전이다. 그 전에도 부부식당은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민물고기 회, 추어탕, 다슬기탕, 삼겹살 등 온갖 메뉴를 팔았다. 박남순씨가 주방을 맡으면서 지금의 다슬기 전문식당으로 바뀌었다. 현재 메뉴는 다슬기수제비(8000원)와 다슬기 회무침(소 3만원), 두가지 뿐이다. 식당 영업시간은 매우 짧다. 오전 11시30분부터 오후 7시까지다. 박남순씨는 “오전 5시부터 음식을 준비하는 터라 저녁 장사까지 하긴 버겁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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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 뜬 수제비가 넉넉히 들어있다. 쫀득쫀득 씹는 맛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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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16일 식당을 찾았다. 오전 10시 40분, 식당 문을 열었더니 아직 준비가 덜 됐다며 11시 20분 즈음 다시 오라고 했다. 식당은 허름했다. 테이블은 모두 10개 뿐. 주방에서는 한창 다슬기 국물을 내고, 밑반찬을 만드는 중이었다. 식당 바로 옆에 있는 구례상설시장을 배회하며 시간을 때우다 다시 식당을 찾았다. 그리고 다슬기 수제비를 주문했다. 6가지 반찬과 함께 큼직한 사기 그릇에 수제비가 담겨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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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슬기도 넉넉히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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숟가락을 바닥까지 훑은 뒤 떴다. 다슬기 여러 점과 손으로 직접 뜬 도톰한 수제비가 담겨 올라왔다. 수제비는 쫀득쫀득, 다슬기는 물컹 미끄덩. 식감이 전혀 다른 다슬기와 수제비를 천천히 씹었다. 고소함과 구수함 사이를 교차하는 맛이 입안에서 감돌았다. 부추와 청량고추가 넉넉히 들어가 국물 맛은 개운했다. 일반 수제비처럼 감자, 호박 등은 넣지 않았다. 국물이 걸쭉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맑지도 않았다. 식당에서는 된장을 넣는 것 외에는 국물 레시피를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어쨌든 그동안 먹어봤던 다슬기 해장국, 올갱이국, 수제비와는 결이 다른 맛이었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바쁘게 놀렸다. 10여 분 뒤 수제비 그릇은 바닥을 드러냈다. 반찬 그릇 6개도 깡그리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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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럿이 식당을 찾는다면 다슬기 회무침도 먹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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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슬기수제비는 구례가 아니면 맛보기 어려운 메뉴지만 사실 대단한 연구 끝에 나온 건 아니다. 박남순씨가 우연처럼 만들었다는 얘기다. 이들 부부의 부부식당도 처음엔 다슬기탕을 팔았다. 박씨의 설명이다. “처음엔 수제비 몇 점만 탕 안에 넣었어요. 한데 다슬기탕을 먹는 사람마다 수제비를 더 달라고 하더라고요. 조금씩 양을 늘리다가 아예 다슬기 수제비로 메뉴를 바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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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제비 없이도 밥 한 공기 비울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밑반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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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식당은 구례군이 인정한 향토음식 지정업소다. 섬진강 특산물인 다슬기로 음식을 만드는 데다 흔치 않은 메뉴로 구례 사람뿐 아니라 구례로 놀러온 외지 사람들 입맛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부식당에서 쓰는 다슬기가 모두 섬진강에서 건진 건 아니다.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메뉴판에 솔직히 적어뒀다. ‘다슬기는 계절에 따라 중국산, 북한산 사용.’ 부부와 함께 가게를 지키는 아들 최명현(35)씨는 “주말이나 휴가철에는 외지 관광객이 많이 찾지만 평소엔 지역 주민, 단골이 많이 찾는 터라 가격을 올리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정오가 가까워오자 테이블이 금세 다 찼다. 낡은 식당만큼 주름 많은 어르신이 대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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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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