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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홍콩 반환 20년…시진핑 첫 방문 앞두고 최대규모 시위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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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르포]

‘광둥어’가 자랑이던 1996년 영화 <첨밀밀> 분위기 옛말

주변국들처럼 중국경제 의존도 높아져…사회불평등 심각



베이징 지역의 방언을 중심으로 제정된 중국 표준어 ‘보통화'의 보편적 사용은 1997년 7월1일 유니언잭이 내려지고 오성홍기가 올라간 뒤 20년이 지난 홍콩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홍콩 표준어였던 광둥어가 여전히 공용어이긴 하지만 보통화 또한 홍콩 시내에서 별 불편 없이 통용된다.

경제통합 뒤 양극화 커지고 공동사업엔 ‘민생 외면’
2014년 직선제 요구한 ‘우산 시위’ 성과없이 끝나
젊은층 불만 높은데 중국 ‘강경책’이 반발 부추겨

“일국양제 견해 차가 현실 왜곡” 주장도
시진핑 방문 앞 대규모 반중시위 예고


직장인 타이힝싱(39)은 “과거엔 보통화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고, 오히려 대륙(중국)에서 온 사람들이 광둥어를 배워야 했다”며 “이제는 경제적 이유에서, 더 많은 돈을 벌려고 보통화를 배운다”고 말했다. 교역의 절반 이상을 중국에 의존하고 관광객 4명 중 3명이 중국에서 오는 상황에서 보통화는 홍콩인들에게 ‘필수 과목’이 된 것이다.

타이가 말하는 과거 풍경은 영화 <첨밀밀>에도 등장한 적이 있다. 영화의 배경인 1980년대 홍콩에서는 가까운 광저우 출신으로 광둥어를 구사하는 리차오(장만옥)가 중국의 다른 지역 출신으로 광둥어를 못하는 샤오쥔(여명)한테 으스댈 수 있었다. 지금은 거꾸로 대다수 홍콩 초등학교들이 보통화 교육을 하고, 심지어 광둥어가 아닌 보통화를 잘해야 좋은 학교에 갈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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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문제가 아니더라도, 여느 주변국과 마찬가지로 급성장한 중국 경제의 영향력을 뼛속 깊이 체감하는 중이다. 관광 분야가 대표적이다. 홍콩 경제는 2003년 초 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 발병으로 직접적 타격을 입을 뻔했지만, 그해 24.1%, 이듬해 44.6% 등 중국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큰 위기는 면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나 2014년 가을 반중 성향의 ‘우산시위’가 일어나자 2015년 3%, 2016년 6.7%씩 관광객이 줄어들며 경제적 타격을 입었다. 중국 관광객들의 동향에 희비가 갈리는 것이다.

발전하는 중국을 바라보는 홍콩의 불안감은 크다. 직장인 게리 라우(23)는 “홍콩이 중국보다 우세한 것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디즈니랜드만 봐도 새로 생긴 상하이가 홍콩보다 흥행한다. 정보기술에서는 선전을 중심으로 들어선 화웨이, 다장, 텅쉰 같은 세계적 수준의 기업들이 홍콩을 압도한다”고 말했다. 2004년까지 세계 최대 물동량을 자랑하던 홍콩항은 2005년 싱가포르에 1위를 내준 뒤 2010년부터 1위로 올라선 상하이와 선전, 닝보 등 중국 항구에 밀려 5위(2015년)로 내려앉았다. 한때 홍콩이 아시아의 중심지 구실을 했던 컨벤션산업도 이젠 중국이 대세라는 데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비록 홍콩의 경제 성장은 이어지지만 상당 부분 중국에 기댄 상태에서 대체 누가 그 열매를 맛보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지난해 자산 상위 10%의 월평균 소득은 11만2450홍콩달러(약 1640만원)로 하위 10%(2560홍콩달러)의 44배였다. 특히 젊은층은 직접적으로 중국 쪽에 분노의 화살을 돌린다. 중국 출신 이주민을 상대로 한 인종차별주의적 시선도 있다. 중국이 홍콩 문제로 영국과 협상을 시작한 1980년대부터 의도적으로 이주 정책을 펼쳐 홍콩 장악을 위한 장기 전략을 구사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잔뜩 몰려와서는 아이를 많이 낳는다며 중국 출신을 ‘메뚜기’로 부른다는 얘기도 있다. 지난 20년간 홍콩으로 이주한 중국인은 150만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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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통합은 부의 유출을 더욱 촉진한다는 불만도 있다. 지난 1월 홍콩 정부가 선전시 정부와 산업단지 공동 개발에 합의한 것을 두고 ‘예산 낭비’와 ‘민생 외면’이란 비판이 거센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기에 멜라민 분유 파동 뒤 중국인들이 홍콩에서 사재기를 하는 바람에 빚어진 분유 부족 사태, 홍콩 원정 출산 탓에 일어난 산부인과 병상 부족, 일부 중국인 관광객의 몰지각한 행태 등은 홍콩인들의 감정을 악화시킨다.

중국의 강압적 정책도 불에 기름을 붓는다. 2014년 전면적 직선제 도입 약속을 지키라는 요구에서 비롯돼 석달간 도심 간선도로를 점령한 ‘우산시위’에서는 경찰의 폭력적 진압과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은 정부의 작전이 사실상 성공을 거뒀다. 지난해 초 어묵 노점상 단속에 반발해 발생한 ‘어묵시위’는 시위대가 전례를 찾기 어려운 폭력적 양상을 보여 주목받았다. 지난해 입법회 선거에서 당선된 바지오 렁과 야우와이칭 등 두 본토파 의원은 선서의 합법성 논란 끝에 결국 의원직을 정지당했다. 본토파는 반중 성향이 가장 강한 세력이다. 올해 행정장관 선거에서는 중국이 지지한 캐리 람이 여론조사에서 우위였던 도널드 창을 쉽게 누르고 당선됐다.

마응옥 홍콩중문대 교수(정치학)는 “무력감이 크다. 정치에 무관심했던 이들이 우산시위를 거치며 정치적 문제의 중요성을 자각했는데 성과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반중 세력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야당의 민주파를 포함해 누구도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진단했다. 또 1997년 이후의 홍콩 질서를 규정하는 기본법(헌법)이 행정장관(행정부 수반)과 입법회(의회)를 보통선거로 선출한다고 규정하고도 시행 시기가 정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실현되지 않고 있다며 “그때 이뤄지지 않은 약속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친중파 쪽에선 일국양제에 대한 견해차가 홍콩의 현실을 왜곡시킨다고 주장한다. 건제파(친중) 성향으로 중국 정치협상회의 위원인 라우슈카이 홍콩중문대 명예교수(사회학)는 “1997년 전까지 여러 의견을 수렴한 중국은 97년 이후엔 좀처럼 일국양제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반대파는 일국양제에 대한 그들의 견해가 마치 유일한 것인 양 홍보해왔다”며 “최근 들어서야 중국이 중앙에 대한 도전이나 국가 안전에 대한 위해 등에 대해서는 스스로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일국양제 원칙을 확인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덩샤오핑은 1987년 기본법 논의 과정에서 “1997년 이후에도 홍콩 사람들의 공산당 비판을 허용하겠지만, 그런 말이 행동으로 옮겨져 민주를 빌미로 대륙에 저항한다면 베이징은 간섭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는 등 선을 제시한 바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9일부터 사흘간 취임 뒤 처음으로 홍콩을 방문해 7월1일 ‘주권 반환’ 20주년 기념식과 캐리 람 행정장관 취임식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관영 <신화통신>이 25일 보도했다. 시 주석은 홍콩 주둔 인민해방군 부대를 방문하고, 홍콩~주하이~마카오를 연결하는 강주아오대교 건설 현장 또는 선전~홍콩 고속철 건설 현장도 들를 것으로 전해졌다. 둘 다 홍콩과 중국 대륙을 연결하는 육로로, 중국이 역점을 두는 물류 프로젝트 ‘일대일로' 사업과도 관련된 현장들이다. 해마다 7월1일에 반중 시위를 해온 범민주파 진영은 올해도 최대 규모의 시위를 예고하고 있다. 시 주석 방문 뒤에는 중국의 첫 항공모함 랴오닝이 홍콩에 기항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홍콩/김외현 특파원 oscar@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주주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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