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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롯데 신격호 70년만에 완전 퇴진…재벌 1세대 마침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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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직서 물러나

1942년 일본 건너가 껌 회사 창업

제과기업 입지 굳히고 재벌로 성장

1967년 한국 돌아와 롯데제과 설립

박정희 특혜 받으며 5대 재벌로 안착

2015년 경영권 분쟁으로 회장서 해임



롯데그룹의 창업주인 신격호(95) 총괄회장이 창업 70년 만에 경영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재벌 창업자 가운데 유일하게 현업에서 뛰던 그의 퇴진이다.

한·일 롯데그룹의 지주회사격인 일본 롯데홀딩스는 지난 24일 도쿄 신주쿠에 있는 본사에서 주주총회를 열고 임기가 만료된 신 총괄회장을 새 이사진에 선임하지 않았다고 25일 밝혔다. 신 총괄회장이 2차세계대전 종전 직후인 1948년 도쿄에서 롯데홀딩스의 전신인 ㈜롯데를 창업한 지 약 70년 만이다. ‘신격호 시대’가 막을 내렸음을 상징한다. 앞서 지난 3월 출간된 ‘롯데제과 50년사’에서 설립자임에도 사진이나 기념사가 전혀 없어 그의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알렸다. 신동빈 회장이 기념사와 사진 등으로 아버지 역할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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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총괄회장의 퇴진은 한국 재벌사의 한 페이지가 마무리되는 것을 뜻하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군부 독재시대를 거치며 고속 성장했던 재벌 1세대는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신 총괄회장의 성공을 말할 때 ‘껌 하나로 세운 롯데왕국’이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껌은 롯데의 시작이다. 롯데그룹에 따르면, 집무실인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4층 책상 위에는 처음 정신을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늘 롯데껌 3~4개가 놓여 있었다. 신 총괄회장은 1921년 11월3일(호적상 1922년 10월4일) 울산에서 5남 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새로운 것을 공부하고 싶던 그는 1942년 83엔(당시 면서기 두달치 월급)을 들고 일본으로 갔다. 우유·신문 배달을 하면서 신용과 성실성을 인정받아 일본인에게 투자를 받아 1948년 껌 회사인 (주)롯데를 창업한다. 법인명은 문학을 좋아한 그가 독일의 문호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여주인공 ‘샤롯데(샤를로테)’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후 초콜릿(1963년)·캔디(1969년)·아이스크림(1972년)·비스킷(1976년) 등을 잇달아 내놓아 일본 굴지의 종합 제과기업으로 입지를 굳혔다. 1980년대 중반 이미 롯데는 일본에서 롯데상사, 롯데부동산, 롯데전자공업, 프로야구단, 롯데리아 등을 거느린 재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국내 진출은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인 1967년 4월 자본금 3천만원으로 롯데제과를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롯데제과는 당시 국내 처음으로 멕시코 천연 치클을 사용한 고품질 껌을 선보여 ‘대박’을 쳤다.

한국에서 재벌로 성공하기까지 박정희 정부의 특혜도 ‘한 몫’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손정목 서울시립대 명예교수가 펴낸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에는 특혜 속에 탄생한 롯데의 비화가 상세하게 담겨 있다. 손 교수에 따르면, 1970년 11월 13일 롯데제과 껌에서 쇳가루가 검출돼 제조 정지 명령이 내려진 날, 박정희 전 대통령은 신격호 회장을 불러 롯데껌 파동을 선처해 주는 대신 호텔을 지으라고 지시했다. 이후 호텔 건설은 일사천리로 이뤄졌으며 부지 확보, 세금 혜택 등 각종 지원이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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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지난 3월20일 롯데그룹 경영권 비리 관련 1차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법원으로 들어오고 있는 모습.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롯데는 1973년에 지하 3층, 지상 38층, 1천여 객실 규모의 소공동 롯데호텔을 선보이면서 관광업에, 1979년에는 소공동 롯데백화점을 개장하면서 유통업에도 진출했다. ‘식품-관광-유통-건설-화학’ 등에 걸쳐 진용을 갖춘 롯데그룹은 1980년대 고속 성장기를 맞았고, 잇단 인수·합병(M&A)을 통해 오늘날 국내 재계 서열 5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신격호 시대’는 2015년 7월 불거진 장남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간 경영권 분쟁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신 총괄회장은 홀딩스 대표이사 회장직에서 전격 해임되는 수모를 겪었다. 불투명하고 전근대적인 경영 방식도 도마 위에 올랐다. 검찰의 수사(배임·횡령 등)와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되기 전까지 롯데 지배구조가 어떻게 되는지, 경영은 어디서 결정되는지 외부에 알려진 바가 없었다. 내부 직원들도 “그때 롯데 지배구조를 제대로 알게 됐다”고 할 정도였다.

95살의 신 총괄회장의 건강은 좋지 않다. 이달 초 대법원에서 신 회장에게 한정후견인을 지정하면서 정상적인 경영활동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한정후견인은 법적 의사 결정이 힘들 경우 해당 직무를 대신할 법정 대리인을 지정하는 제도다.

‘아버지의 시대’는 가고, 이번 주총 결정으로 아들 신동빈 회장의 체제가 더욱 공고화될 것으로 보인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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