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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마지막 희망의 사다리 접혀"…반세기만에 사시 문닫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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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년만에 사시 폐지, 응시생들 "끝이라니 아쉬워"…존치 주장 집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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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연세대 백양관에서 사법시험 시험장임을 알리는 현수막이 철거되고 있다. /사진=남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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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가 '개천 용'이 될 수 있던 시절이 있었다. 시골 노모는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자식이 내려올 때마다 "밥은 잘 먹냐"며 꼬깃해진 돈을 쥐어줬다. 자식은 "이번엔 꼭", "합격만 하면"이란 말을 속으로 되뇌며 상경해 법전과 씨름했다.

부슬비가 내리는 24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백양관. 지난 21일부터 치러진 제59회 사법시험 2차시험 마지막날이다. 총 186명이 응시한 이번 시험에서 최종합격자 50명만이 '마지막 사시합격자'가 된다. 이 시험을 끝으로 1963년부터 54년의 역사를 이어온 사법시험은 폐지된다.

시험이 종료되는 오후 3시가 다가오자 한 응시생의 어머니는 초조한듯 연신 시계를 들여다봤다. 잠시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으는가 하면, 자식에게 쥐어 줄 우산이 잘 펴지는지 펼쳐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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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회 사법시험 2차 시험이 치러진 연세대 백양관 정문 /사진=남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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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장을 바라보는 응시생 가족 및 시민들/사진=남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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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마치고 나오는 응시생이 두 손을 번쩍 들고 있다. /사진=남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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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바늘이 오후 3시를 가리키자 문이 열리고 곧이어 시험을 마친 응시생들이 하나둘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 문 밖으로 나선 응시생은 가족들을 향해 활짝 미소를 지어 보였고 이들을 바라보던 몇몇 시민들은 박수를 치며 "수고했다"고 격려했다.

한 응시생은 문 밖에 나서자마자 양 손을 벌린채 "끝났다"고 외치며 홀가분한 기분을 표현했다.

응시생들이 나오자 출구 앞은 이내 활기가 돌았다. 한 응시생의 아버지는 시험을 마친 아들을 꼭 안아주며 등을 토닥였다. 한 응시생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연신 "고맙다"는 말을 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마지막 사법시험을 기념하며 친구들과 '셀카'를 찍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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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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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고시 존치'를 위한 서명에 동참하는 시민 및 수험생들/사진=남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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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간 사법시험 공부를 했다는 한 응시생은 "시험이 어렵지는 않았는데 정말 마지막이라고 하니 더 긴장됐다"며 "이제 재도전하고 싶어도 할 수 없으니 걱정되기도 하고 후련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응시생은 "이번이 마지막이라니 아쉽고 막막하다"며 "로스쿨 학비 부담이 커 부모님 지원을 바라기 어려운 상황인데 이번에 안붙으면 취직을 해야하나 고민이 많다"고 토로했다.

일부 응시생들은 수험장에서 나오자마자 한 켠에 준비된 '사법시험 존치' 서명장으로 가 자신의 이름을 적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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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고시 존치를 주장하는 고시생들의 회견 모습 /사진=남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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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시험 종료 후 '사법고시 존치를 위한 고시생 모임'(이하 '고시생 모임') 회원들은 서명운동을 하며 기자회견을 가졌다.

기자회견에는 시험을 마치고 나온 일부 응시생들도 함께 해 20여명이 피켓을 들고 참여했다. 이종배 고시생 모임 대표는 "사법고시는 공정한 제도의 상징이자 공정사회를 지탱하는 주춧돌"이라며 "신분이나 빈부에 상관없이 오로지 실력과 노력으로 선발하는 사법고시가 폐지 위기에 몰렸다"라고 말했다. 이어 사법고시를 존치하고 로스쿨과 병존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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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장에서 떼어내지는 현수막 /사진=남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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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이 끝난 후 응시생들과 가족들이 모두 떠나 한적해진 백양관 앞에 한 관리인이 사다리를 들고 나타났다. 사다리 위에 올라선 관리인은 '2017년도 제59회 사법시험 2차시험 시험장'이라고 쓰여진 현수막을 떼어 둘둘말아 사라졌다.

이날 시험을 끝으로 로스쿨 도입 이후 진통을 겪어온 사법시험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지금까지 70만8276명이 사법시험에 응시했지만 합격한 건 2만718명으로, 2.9%에 불과하다. 사법시험은 많은 청춘들에게는 ‘실패’의 역사인 셈이다.

사법시험 존치를 골자로 한 변호사시험법 개정안 3건이 현재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지만 사실상 논의가 중단된 상태다.


모락팀 남궁민 기자 serendip15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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