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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TEN 리뷰]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 감동받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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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아시아=김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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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 공연 장면 / 사진제공=㈜티앤비컴퍼니

연구실을 옮겨놓은 무대와 푸르스름한 조명은 스산한 기운을 풍기고, 슈트를 갖춰 입은 지킬 박사가 등장하면 긴장감이 맴돈다. 이내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는데, 웃어도 되는 장면인지 의구심이 들지만 웃을 수밖에 없는 상황의 연속이라 고민은 금세 사라진다.

일본의 극작가 미타니 코키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연극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가 그렇다. 선과 악, 두 개의 인격을 다룬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서 소재를 가져온 미타니는 기발한 설정을 채워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를 만들었다. 지난 2015년 국내에 초연돼 지난해에 이어 올해로 삼연 째다.

경험이 쌓인 만큼 무대와 조명, 의상 등 기술적으로 더욱 탄탄해졌다. 반면 극은 원작의 99%를 가져왔다고 할 정도로 대부분 일치한다. 표현이 까다로운 단어를 교정했을 뿐, 국내 정서에 맞는 분위기로 애써 바꾸지 않았다. 그럼에도 웃음이 터진다는 건 미타니 코키 작품이 지닌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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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 공연 장면 / 사진제공=㈜티앤비컴퍼니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그간 다양한 방식으로 재해석됐다. 그중 프랭크 와일드 혼이 음악을 만든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는 국내에서도 여전히 사랑받는 작품 중 하나다. 어두운 이미지가 지배적인 ‘지킬 앤 하이드’는 미타니 코키, 그리고 국내 공연을 진두지휘한 정태영 연출의 손끝을 거쳐 코미디극으로 탈바꿈했다.

‘선과 악’이라는 큰 줄기가 같을 뿐, 시작부터 새롭다.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 속 지킬 박사는 인간의 이면성을 분리하는 신약 개발에 실패했다. 그러나 이를 감추기 위해 분리된 악한 인격의 하이드를 연기할 무명배우를 고용한다. 예정된 연구 발표회를 성공적으로 마치기 위해 지킬 박사와 빅터는 리허설을 진행, 이때 지킬 박사의 약혼녀 이브가 등장한다. 여기서부터 극은 웃음의 향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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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 공연 장면 / 사진제공=㈜티앤비컴퍼니

지킬 박사는 진지해서 웃기고, 빅터는 억지로 악한 인격을 끄집어 내며 웃기고, 이브(하이디)는 느닷없이 웃기고, 풀은 의뭉스럽게 웃긴다. 모든 인물들이 혼란에 빠질 때, 관객들이 가장 즐거운 순간이다.

지킬 역은 드라마를 종횡무진하다 오랜만에 무대를 찾은 윤서현과 김진우가 맡아 각기 다른 개성을 살린다. 박하나와 스테파니는 약혼녀 이브와 하이디를 오가며 매력을 뿜어낸다. 이 밖에 정민과 장지우, 박영수와 장태성 등이 극의 중심을 잡으며 재미까지 선사한다.

초반의 의구심이 사라진 이후부턴 큰 소리로, 웃고 싶을 때 마음껏 웃으면 된다. 쉼 없이 100분간 웃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면 그만이다. 어느 대목에서 감동을 받아야 할까 고심하지 않아도 된다. 원작자 미타니 코키는 이렇게 말했다. “관객이 감동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는 8월 20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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