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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금융초보 탈출기]"종이통장 원하면 돈 내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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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데일리 전상희 기자] 2020년 9월 서울의 한 시중은행을 찾은 ‘김머니’씨. 한 적금 상품에 가입했는데 창구직원이 도통 종이통장을 건네지 않습니다. 결국 김씨가 통장을 하나 발급해달라고 요청하자 직원은 이렇게 답하는군요.

“종이통장 발급 원하신다고요? 통장 발행에 드는 비용 일부는 고객님께서 내셔야 합니다.”

‘종이통장’의 100년 역사가 그 끝을 앞두고 있습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2015년 ‘통장기반 금융 거래 관행 등 혁신방안’을 발표하며 종이통장의 단계적 감축을 예고했죠.

이에 따라 오는 9월부터는 종이통장이 사라집니다. 2015년 9월부터 올해 8월까지는 종이 통장을 선택하지 않은 고객에게 금리 혜택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는데 그쳤지만 2단계가 시작되는 9월부터는 ‘종이통장 미발행’이 원칙이죠. 단 고객이 60세 이상이거나 금융거래 기록 등을 이유로 종이통장을 희망하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통장이 발급됩니다. 마지막 단계로 3년 뒤 2020년 9월부터는 종이통장 발행을 원한다면 고객이 통장발행 비용의 일부를 부담해야 합니다.

종이통장 발행 감축안은 장기간 사용하지 않고 방치 중인 금융계좌를 정리하고 금융산업의 효율성을 증진하기 위해 도입됐습니다. 무엇보다도 종이통장을 발급하고 관리하는 데 금융소비자와 금융 회사 모두에게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한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죠.

금융사는 신규 발행이나 이월 재발행 등으로 종이통장을 무상으로 발행하는 과정에서 제작비, 관련 인건비 등의 비용 부담을 지고 있습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종이통장 1개를 만들기 위해서는 300원가량의 제작원가와 인건비, 관리비가 합쳐져 약 5000원~1만 8000원의 비용이 소요됩니다.

소비자의 부담도 적지 않았습니다. 통장 분실이나 훼손 등에 따라 재발행을 하는 경우엔 고객들에게 수수료를 받고 있는데, 이 비용도 연간 약 60억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장기 미사용 계좌 통장들이 대포통장 등에 악용된다는 점도 골칫거리였죠. 장기 미사용계좌들의 수도 적지 않은데요. 2015년 3월 기준 수시입출금식 요구불 계좌 약 2억920만개 중 절반가량은 1년 이상 입출금이 없는 계좌일 정도입니다.

종이통장을 없애 이 같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니 두 손 들고 반길만한 이야기지만 일각에서는 우려의 시선을 보내기도 합니다. 종이통장이 사라진다면 전자금융거래에 익숙하지 않은 고객들은 불편을 겪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정보화진흥원(NIA)의 ‘2016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55세 이상의 디지털 정보화 역량 수준은 전체 국민의 54% 수준에 불과합니다. 여기에 더해 저소득층·장노년층·장애인·농어민 등 4대 소외계층의 인터넷 이용률과 스마트폰 보유율은 각각 63.4%와 61.2%로 일반 국민대비 20%포인트 이상 낮은 수치를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60세 이상 고령층에 한해서는 종이통장이 예외적으로 발행되는 안이 마련돼 있지만 다른 디지털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는 눈에 띄지 않는 상황입니다.

종이통장을 택하지 않는 고객들에게만 제공하는 금리혜택 등 인센티브도 디지털 소외계층을 금융에서도 소외시키고 있다는 불만을 불러왔습니다.

이에 당국은 최종 3단계까지 남은 3년여 동안 추이를 살피며 보완 방향을 논의하겠다는 입장입니다. 곽범준 금융감독원 은행제도팀장은 “오는 9월부터 시행되는 종이통장 감축 2단계는 종이통장이 없는 금융상품을 다양하게 선보이며 고객의 선택을 넓히는 단계로 고객이 원할 경우 종이통장을 자유롭게 이용 가능해 사실상 큰 변화는 없다”며 “향후 소비자들의 반응을 살피며 무통장거래가 본격적용되는 3단계에서 보완 방향 등을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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