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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6·25때 은혜 갚아야죠" 남수단 향하는 진짜 태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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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부대 내달 3일 파병…손수 준비한 구호품 3천여점 가져가

매일경제

다음달 3일 남수단에 파병될 한빛부대 8진 대원들이 인천시 계양구에 있는 국제평화지원단 부대에서 각오를 다지고 있다. 왼쪽부터 김창윤 상병, 김한신 중사, 김해도 원사, 박배승 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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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인천시 계양구에 위치한 국제평화지원단 부대 연병장. 숨 막히는 폭염 속에서 장병들이 줄지어 달리고 있었다. 유엔 평화유지군(PKO) 자격으로 남수단 파병을 앞둔 한빛부대(대령 안덕상) 대원들이 한창 체력검정을 받고 있었다. 한빛부대는 한국 파병부대 활약상을 무대로 만들어진 KBS 인기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실제 모델이다. 재건활동·의료지원 등의 활동을 전개중인 한빛부대는 현지인들로부터 ‘신이 내린 축복’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이들은 다음달 3일 내전의 화염에 휩싸인 남수단으로 출국할 예정이다.

그들에게 "위험한데 두렵지 않으냐"는 질문을 던졌다. 장병들은 "과거 다른 나라들도 위험을 무릅쓰고 6·25 때 파병을 오지 않았느냐"며 "파병 받았던 나라에서 위기에 처한 국가의 국민을 돕는 역사의 현장에 있을 수 있다는 게 오히려 자랑스럽다"고 입을 모았다.

한빛부대에 드라마 '태양의 후예' 속 유시진 대위(배우 송중기 역)는 실제 없지만 누가 봐도 훤칠하고 수려한 외모의 한 젊은이가 눈에 띄었다. 배우 박중훈 씨의 아들 박배승 일병(21)이다. 그 역시 다음달 파병되는 한빛부대의 일원이다. 그는 한국인 아버지와 재일동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한국과 일본 양쪽 국적을 모두 갖고 있다. 유년 시절 대부분을 미국에서 보냈고 대학도 미국에서 다니던 중이었다.

여느 상류층 자식들처럼 한국 국적을 포기하면 병역을 간단히 피할 수도 있지만 박 일병은 그러지 않았다. 박 일병은 "어디에 있든 제 고향은 늘 한국이라 생각했다"며 "청춘의 2년을 복무하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조국을 위한 투자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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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한빛부대 8진 장병들이 파병교육센터에서 한빛희망나눔운동 기증식에서 자신이 가져온 기증품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 한빛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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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아버지 박중훈 씨는 해외에 있는 그에게 늘 '넌 한국인이니 병역의 의무는 꼭 마쳐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미국의 박 일병 방에는 늘 태극기가 걸려 있었다. 그는 이번 파병에서 감시병·통역병 임무를 맡았다. 박 일병은 "입대하면서 우리나라가 6·25전쟁 당시에만 도움을 받은 게 아니라 이후 경제·사회 재건 과정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부모 세대의 빚을 우리가 갚는 것 역시 호국·애국의 한 방법이 아니겠냐"고 말했다.

해외에서 귀국해 병역의 의무를 다하는 자랑스러운 젊은이는 한빛부대에서 박 일병뿐이 아니다. 미국 세인트루이스 의과대학원 졸업을 1년 앞두고 현역 병사로 입대한 김창윤 상병(28)은 "제가 현역병 입대에 이어 파병까지 간다고 말하니 한국보다 미국 친구들이 훨씬 더 자랑스러워했다"며 "주변에서 '미국 영주권을 얻어서 군대 가지 말라'는 말도 많이 들었지만 한국 뿌리를 잊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물론 순수 국내 토종 출신으로서 해외파 못지않은 열정으로 파병에 동참한 젊은이들이 더욱 많다. 이날 100회 헌혈을 앞두고 있다는 김한신 중사(26)도 "군인으로서 국가에 더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부대 내에서 헌혈에 꾸준히 임하게 됐다"며 "이번 파병도 같은 생각에서 지원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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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농장에서 남수단 주민들에게 농업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사진 = 한빛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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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 이어 아들까지 3대가 군인인 김해도 원사(53)는 이런 젊은 혈기들을 이끌어 국위 선양의 봉사단을 이끄는 든든한 맏형이다.

그는 2005년 다산부대 6진으로 아프가니스탄 파병에 참여했고 이번이 두 번째 파병이다. 김 원사는 "아버지가 6·25 당시 원산까지 올라갔다 총을 맞고 대전에서 치료를 받은 뒤에 곧바로 다시 전장에 나가셨다"며 "대위인 아들도 기회가 되면 꼭 파병에 참여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한빛부대는 내전으로 삶이 피폐해진 남수단 현지인을 위해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 장병들이 각자 집에서 가져온 의류와 신발, 학용품•인형 등 구호물품 3000여 점을 남수단 현지인들에게 전달하는 '한빛희망나눔운동'을 계획 중이다. 열악한 환경과 위생상태 때문에 작은 상처만 나도 환부가 곪아 팔·다리를 잘라내기도 하는 현지인들을 돕기 위한 것이다. 정훈공보과장 김도훈 소령(36)은 “기업의 후원을 받을 수도 있지만 부대원들이 모아 온 물건을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이 직접 사용하는 것을 보면 더 뜻깊을 것 같다”며 “60여년전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작은 도움이 그들에겐 큰 희망이 될 거라 생각해 계획한 운동”이라고 말했다. 김 소령은 또 "남수단은 후진국성 질병인 결핵·말라리아·HIV 등이 많아 장병들 건강 관리에도 유념해야 한다"며 "외국어를 잘하고 능력이 있어도 애국심·봉사심 없이는 임무 수행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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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병대가 백나일강 차수벽 공사를 하고 있다. [사진 = 한빛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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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부대는 ‘세상을 이끄는 환한 큰 빛이 되는 부대’라는 뜻으로 오랜 내전 끝에 분리 독립한 남수단의 재건과 지원 활동을 위해 창설됐다. 대표적 활동으로는 남수단 중심지인 주바와 브르 시를 연결하는 유일한 육상 교통로를 건설에 참여한 ‘희망로 작전’이 있다. 편도 2~3일이 소요되던 거리를 약 5시간으로 크게 단축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매년 우기마다 범람·침수하던 백나일 강에 차수벽을 건설해 현지 주민들에게 삶의 터전을 마련해줬다.

이들은 기반시설 건설뿐 아니라 ‘고기를 잡는 법’도 가르친다. 지난해 4월 현지인들을 위해 개설한 ‘한빛직업학교’는 총 6개 과정(목공, 전기, 용접, 건축, 제빵), 농업)을 10~12주 동안 운영한다. 지금까지 배출된 247명의 수료생들은 남수단 재건을 위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한편 293명으로 구성된 이번 한빛부대 8진은 간부 3.7대1, 병사 11.1대1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선발됐으며 지난 5월 8일 소집돼 두 달간 파병 준비를 마쳤다. 한빛부대는 28일 환송식을 한 후 다음달 3일 출국한다.

[인천 = 박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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