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땅의 끝은 땅의 처음… 그 땅끝에서 시작을 보다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해남 땅끝 '도솔암'

서울까지 천리… 너른 大洋의 출발점에서

끝은 시작이다. 단지 비유가 아니다. 끝에 서면 안다. 해남 땅끝으로 가는데 '희망의 시작, 땅끝'이라 적힌 표지판이 길을 안내했다. 땅끝에서 바다가 시작한다. 그것만이 아니다. 땅의 끝은 땅의 처음. 땅끝마을 '땅끝탑' 앞에 서면 안다. 한반도를 거꾸로 세운 조형물이 놓여 있다. 그렇게 뒤집어 보고서야 알았다. 땅끝은 육지가 시작하는 첫 땅이다. 동경 126도 31분 25초, 북위 34도 17분 32초. 여기서 출발한 땅은 한반도를 거쳐 만주와 시베리아를 지나 유럽으로 이어진다. 바다 끝에서 솟아오른 땅이 거대한 유라시아 대륙으로 뛰어간다. 그리하여 끝은 처음이다. 둘이 다르지 않다는 불이(不二).

조선일보

하늘끝 땅끝 맞닿은 곳에 작은 기와집이 놓여있다. 해남 도솔암이다. 땅끝에서 땅은 처음 시작한다. 끝은 새로운 시작이다. /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땅끝에 또 땅끝이 있었다. 수직으로 하늘 끝에 닿은 땅끝이다. 바다를 연모(戀慕)해 남쪽으로 내달리던 산맥이 이곳 땅끝에서 마지막으로 솟구친다. 달마산(489m)이다. 정상 능선에 공룡 등뼈 같은 암봉(巖峰)이 이어진다. 초록 옷 입은 거대한 몸 사이로 흰 뼈를 드러낸 골산(骨山)이 위압감을 준다. 땅을 밟아 산을 오른다. 더 오를 수 없는 곳, 하늘 시작하는 땅끝에 작은 기와집이 있다. 도솔암이다. 땅끝과 하늘 끝 닿은 곳에서 땅끝 여행은 시작한다. 끝은 다시 시작이므로.

기둥은 네 개. 발걸음으로 길이를 쟀다. 왼쪽과 오른쪽 기둥 사이 거리는 다섯 걸음. 앞과 뒤 기둥 거리 역시 다섯 걸음이다. 대개 한 걸음은 70㎝. 그렇다면 한 변 길이는 3.5m, 집 면적은 12.25㎡다. 세 평은 넘고 네 평은 안 되는 정방형(正方形) 기와집이다. 책처럼 넓적한 돌 수천 개로 축대를 쌓아 작은 마당을 가두었다. 일그러진 삼각형 모양이다. 긴 쪽이 열 걸음, 짧은 쪽이 두 걸음이다. 오후 햇살 한 장 누우면 가득차는 공간이다. 오를 때 보았던 암봉이 삐죽빼죽 눈앞에 솟아있다. 집 뒤에는 깎아지른 백벽(白壁)이 웅크리고 있다.

조선일보

왼쪽 사진은 땅끝 도솔암. 작은 기와집이다. 오른쪽 사진은 땅끝전망대로 가는 모노레일.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두 기둥에 걸린 주련(柱聯)을 본다. 한자(漢字) 일곱 자씩 모두 열네 글자를 적었다. ‘조광장엄동해출(朝光莊嚴東海出) 야경적정해중월(夜景寂靜海中月)’. 아침빛 장엄하게 동쪽 바다에서 나오고, 밤 경치 고요하니 바다 속에 달이 있네-. 집이 서있는 이곳 풍광을 묘사했다. 동쪽으로 완도, 서쪽으로 진도 앞바다가 보인다. 좌우 바다에서 거센 바람이 내내 불어온다. 30분쯤 서있는데 몸에 한기(寒氣)가 들었다. 마침 바람막이 재킷을 가져왔기에 다행이다. 도심은 폭염이라던 날이었다.

처마 밑에 건 현판은 이 집의 이름을 알려준다. 도솔암(兜率庵). 불교에서 말하는 도솔천(兜率天)은 미륵보살이 머물고 있는 천상(天上)의 정토(淨土). 의역하면 ‘지족천(知足天)’이라 한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족함을 알면[知足] 그곳이 정토라는 뜻일까.

조선일보

해남 달마산 미황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런 곳에 집을 지은 이는 대단한 의지와 안목을 지닌 사람일 것이다. 도솔암 오르기 전 입구에 내력을 적은 안내판이 있다. 당초 통일신라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한다. ‘한국고전종합DB’(db.itkc.or.kr)에서 검색하니 더 자세한 기록이 있다. “달마산은 북쪽으로는 두륜산에 접해 있고 삼면은 모두 바다에 닿아 있다. 그 위에는 아주 흰 돌이 우뚝 솟아있는데 당(幢·절 앞에 세우는 깃발) 같기도 하고 벽 같기도 하다. 그 땅 끝에 도솔암이 있다. 암자 앉은 형세가 훌륭하다. 그 장관을 따를 만한 것이 없다.”(‘신증동국여지승람’)

중국에도 알려진 명승이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지원(至元) 신사년(1281년) 겨울, 나라 망한 남송(南宋)의 큰 배가 표류해 달마산 동쪽에 정박했다. 한 고관이 물었다. “이 나라에 달마산이 있다 하던데 저 산이 그 산 아닌가?” 주민들이 “그렇다” 하자 고관은 산을 향해 예(禮)를 표하더니 말했다. “우리는 이름만 듣고 공경할 뿐인데 그대들은 이곳에서 나고 자랐으니 부럽고 부럽습니다. 참으로 달마대사가 상주할 땅입니다.” 고관은 그림을 그려 가져갔다 한다.

‘동국여지승람’의 필자는 “외국인도 우러르고 공경함이 저와 같은데 먼 지방에 있는 까닭에 산에 올라 감상하는 이 없으니 슬프다”고 탄식했다.

조선일보

땅끝전망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원래 건물은 정유재란 때 불탔다 한다. 명량해전에서 패한 왜군이 바닷길로 퇴각하기 어려워지자 달마산을 넘어 달아날 때였다. 지금 건물은 15년 전 오대산 월정사에 있던 법조(57) 스님이 지은 것이다. 꿈에 도솔암 터가 3일간 나타났다. 이곳에 찾아와 32일만에 집을 올렸다 한다. 목재와 기와 1800장을 직접 지고 날랐다고 안내판에 적었다.

출타 중인 스님과 전화 통화가 닿았다. 요즘은 암자를 자주 비운다고 했다. “애초부터 정감스럽고 부담 없는 절집을 지으려고 했어요. 굳이 내가 있을 필요가 없지요. 주객(主客)이 따로 없어요. 종교도 상관 없고요. 누구나 편하게 와서 스스로 느끼고 가면 됩니다.”

도솔암에 오른 때는 지난 15일 늦은 오후. 한동안 앉아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오후 7시 30분쯤 저무는 낙조(落照). 커다란 해가 내일 또 새날을 시작하려 분주하게 서녘 하늘을 붉은 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도솔암에서 4.5㎞쯤 걸어내려가면 미황사가 있다. 신라 경덕왕 8년(749년) 창건했다 전한다. 대웅전(보물 제947호) 뒤편으로 길게 늘어선 암봉이 장엄미를 준다.

조선일보

땅끝마을 ‘땅끝탑’이다. 한반도를 거꾸로 세운 조형물이 앞에 놓여 있다. /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제 바다끝에 닿은 땅끝으로 갈 차례다.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 산 43-6. 한반도 최남단이다. 해남 땅끝에서 서울까지 천리, 서울에서 함경북도 온성까지 이천리를 더하여 한반도는 삼천리 금수강산이라고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에 적었다.

땅끝 사자봉 정상에 전망대가 있다. 걸어서 오르면 40분쯤 걸린다. 나무 데크 계단이 이어진다. 쉽지 않은 등산이다. 모노레일을 타면 전망대까지 편안히 오를 수 있다. 청산도, 보길도, 소안도 같은 크고 작은 섬이 바다에 흩뿌려져 있다. 전망대에서 500m 내려 온 곳에 땅끝탑이 있다. 삼각뿔 모양 조형물이다. 뱃전처럼 만들어 놓은 전망 공간이 바다를 향해 있다. 여기서 바라보니 땅끝은 바다가 시작하는 곳이다. 저 너른 대양(大洋)으로 나아가는 첫 출발점이다.

조선일보

서울에서 해남까지는 천리길. 시간이 꽤 걸린다. 서울 강남 센트럴시티에서 고속버스로 4시간30분~5시간, 해남종합버스터미널에서 도솔암까지는 자동차로 40~50분. 미황사에서 걸어오르는 길은 4.5㎞ 산행이다. 길안내 앱에서 도솔암을 검색하면 산 정상 가까운 주차장까지 데려다준다. 산으로 오르는 시멘트 도로는 교행이 어렵다. 주차장에서 도솔암까지는 약 800m. 쉬엄쉬엄 걸어도 20분이면 닿는다. 정상 능선을 따라 걷는 평탄한 길이다.

땅끝마을에서 전망대까지 노란색으로 칠한 두량짜리 ‘땅끝모노레일’이 오간다. 왕복 5000원. 전망대 입장료 1000원은 따로 받는다.


조선일보

해남 천일식당 떡갈비정식.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바닷가에 왔으니 회를 아니 먹을 수 없다. 땅끝마을에 횟집이 여럿 있다. 주민에게 추천받아 간 집인데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다. 값은 비싼데 그저 평범하다. 돔·농어, 광어·우럭 각각 8만~12만원. 모듬해산물 4만~6만원, 해물탕 4만~6만원. 해남읍 천일식당(061-536-4001)은 떡갈비정식(2만8000원), 불고기정식(2만2000원) 두 가지만 낸다. 작은 방에 앉아 있으면 잘 차린 밥상을 두 사람이 들고 온다.

[해남=이한수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