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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에곤 실레 보고 요가도 하고… 미술관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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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하는 미술관' 국내외서 유행]

디뮤지엄, 무용·놀이 결합한 '탄츠플레이' 워크숍 열어

해외선 입장료에 운동비 더해 전시장 돌며 '스쿼트' 하는 등 '미술관서 운동하기' 빠르게 확산

"흥미 없던 예술에 관심 생겨" "미술관 순기능 잃게 될 수도"

땅거미가 진 저녁, 서울 한남동 디뮤지엄 전시장을 빠른 비트 음악이 채웠다. 평상복 대신 운동화에 운동복을 입은 20~30대 청년들이 바닥의 요가 매트 위로 올라가 몸을 움직인다. 작품 앞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자리에 눕고 앉기를 반복하다, 환호를 지르며 전시장을 뛰어다니기도 했다. 무용과 놀이가 결합된 '탄츠플레이' 워크숍이 이곳에서 열린 것. 조용했던 미술관은 순간 '열기 가득한 운동장'으로 변신했다. 참가자 나지혜(32)씨는 "몸을 움직이면서 바닥에 앉거나 눕는 등 다양한 자세로 작품을 보니 새롭고 특별한 경험을 한 것 같다"고 했다

미술관이 달라지고 있다. 미술관에서 요가를 하고, 팔벌려뛰기를 하면서 작품을 감상한다. 영화 제목에 빗대면 '미술관 옆 체육관'이랄까. 국내에는 아직 생소하지만, 외국에선 빠르게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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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 요가하고, 팔벌려뛰기 하며 작품을 감상한다. 지난 4월, 서울 한남동 디뮤지엄에서 열린‘탄츠플레이’워크숍 참가자들은 미국 사진작가 라이언 맥긴리의 작품을 바라보며 운동을 즐겼다. /디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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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많은 건 요가다. 작품 훼손 우려도 적고, 대중적 호응도 크기 때문이다. 미술관·갤러리 바닥에 색색 매트를 깔고 스트레칭부터 코브라 자세까지 한두 시간 운동한다. 가격은 입장권과 운동비를 더한 정도의 금액. 런던 빅토리아&앨버트 미술관은 작년 30파운드(약 4만3000원)에, 미국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은 올 4월 10~25달러(약 1만1400~2만8500원) 사이에 요가 포함 입장권을 판매했다. 오스트리아 빈 알베르티나 미술관은 요가 수업과 에곤 실레의 작품 투어를 11월까지 20유로(약 2만5000원)에 판매하고 있고,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은 매주 수요일 기부금을 내면 요가 수업에 참여할 수 있다. 인스타그램에 'museum yoga'를 검색하면 400개가 넘는 게시물이 등장한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뮤지엄 워크아웃' 프로그램은 다른 미술관 운동과는 다르다. 미술관 갤러리 투어, 댄스 퍼포먼스와 운동을 결합했다. 75달러로 약간 비싸지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해 인기가 많다. 참가자들은 반짝이 장식이 달린 드레스에 운동화를 신은 두 현대무용가를 따라 좁은 보폭으로 뜀박질하며 미술관 전시장 안을 돌아다닌다. 총 36개의 갤러리 방을 도는데, 방을 옮길 때마다 회화와 조각 작품 앞에서 팔벌려뛰기하거나 무릎을 굽혔다 펴는 '스쿼트' 등을 한다. 올 초 단발성으로 끝낼 예정이었지만, 반응이 뜨겁자 연말까지 행사를 연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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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참가자들이 작품 사이를 거닐며 운동을 하고 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영상 캡처


국내 미술관과 갤러리도 조금씩 이 운동 문화가 시작되고 있다. 서울 한남동 디뮤지엄은 지난 4월, 3주에 걸쳐 '탄츠플레이' 워크숍을 진행했다. 특수교사인 신예선(30)씨는 "운동하면서 작품을 보니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라며 "눈으로만 본다는 선입관이 깨졌다"고 했다. 양진령 디뮤지엄 홍보 큐레이터는 "전시장 안에선 조용히 그림만 봐야 한다는 편견을 깨고, 새로운 관람 방식으로 전시 주제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자 했다"고 말했다.

서울 대치동 '슈페리어' 갤러리는 작년부터 올해 초까지 일주일에 두 번 갤러리에서 요가 수업을 했다. 해외에서 이뤄지는 '갤러리 요가'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시행했다고 한다. 오후 6시 반부터 참가자들은 작품 앞에 요가 매트를 깔고 요가 전문 강사와 50여 분 남짓 운동을 했다. 직장인 신동은(29) 씨는 "운동하면서 큐레이터의 설명을 듣다 보니 별 흥미 없던 예술에도 관심이 생겼다"며 웃었다. 요가 수업을 진행한 유미연씨는 "요가는 몸을 이완시키고 혈액 순환이 잘되게 해 집중력과 기억력이 향상된다"면서 "이 상태로 그림을 보면 주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주관에만 집중하며 감상할 수 있다"고 했다.

우려의 시선도 있다. 'Artsy' 매거진의 대니얼 쿠니츠 에디터는 "미술관이 좀 더 다양한 관람객을 유치하려는 노력은 이해하지만, 이런 프로그램을 지속하다간 '조용한 명상을 하는 장소'라는 미술관의 순기능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정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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