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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서창석·이철성 '백남기 사건' 입장 왜 바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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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영정 속 백남기 농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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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 조사실 향하는 서창석 서울대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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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치는 이철성 경찰청장


【서울=뉴시스】 심동준 기자 = 고(故) 백남기 사망사건과 관련해 경찰과 서울대병원의 전향적인 입장변화를 두고 서창석(56) 서울대병원장과 이철성(59) 경찰청장의 정치적 노림수가 있는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사망진단서 정정 불가' 방침을 고수했지만 지난 15일 사망진단서를 병사에서 외인사로 정정한다고 발표했다. 경찰도 지난 16일 유가족에게 공식적으로 사과를 했다. 검찰 수사가 진행중인 만큼 사과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에서 물러난 것이다.

◇각종 의혹 받는 서울대병원장, 해명 없는 진단서 정정

이번 사망진단서 정정은 의료계 내부에서도 매우 이례적인 일로 평가 받고 있다. 주치의가 아닌 전공의가 진단서를 정정했다는 점도 있지만 서 원장의 그간 행보를 보면 이런 평가를 납득할 만한 대목이 있다.

서 원장은 그간 백씨 사망진단서의 정정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번 정정이 새정부의 코드를 맞추기 위한 보여주기식 조치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실제로 서 원장이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 또는 백씨 유족들에게 했던 말을 살펴보면 박씨 사망진단서 정정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병원 안팎의 다수 견해다.

서 원장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사망진단서가 적법하게 작성됐다고 보느냐'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변했다. 백씨 유족 측은 서 원장이 사망진단서에 적힌 사인을 바꿔달라고 대면 요청했을 때 '그럴 수 없다'라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진단서 변경에 대한 입장 변화를 서 원장 본인이 뚜렷하게 해명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지적받고 있다. 지난 15일 백씨 사망진단서 정정을 알리는 기자회견에서 서 원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서울대병원 김연수 진료부원장, 김승기 신경외과장, 이숭덕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교수, 권용진 직업윤리위원회 전문위원이 참석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대병원 직원은 "국민들의 관심이 큰 사건 속에 있는 서울대병원의 모습이 부적절하다는 것은 다수가 인정하고 있다"며 "병원장이 공식적으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듯한 모습은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인도주의 실천의사협의회 이보라 의사도 "병원장이 직접 해명하고 사과할 부분이 있는 것 같다"면서 "서 원장은 불과 몇 개월 전만해도 절차상 옳았다는 등 옹호 발언을 해왔다. 어쩌면 여전히 병사로 적힌 사망진단서가 옳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사망진단서가 정정된 시점, 서 원장이 백씨 사건에 관한 여러 의혹을 받고 있는 상황 또한 이번 조치가 정치적 고려에 의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서울대병원이 진단서 정정 논의를 시작한 시기는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지난 1월께다. 정정은 기관운영 감사 기간인 14일 이뤄졌다. 이 사이 정권 교체도 이뤄졌다. 서 원장은 지난 정권에서 주치의를 하다가 서울대병원장으로 선임됐다.

특히 서울대병원은 이날부터 기관운영 예비감사를 받는다. 감사가 본격화되기 전 자신을 둘러싼 각종 의혹을 덜어내기 위한 조치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서 원장은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던 백씨의 병세를 수시로 청와대에 보고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병원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주치의 백선하(54) 교수는 백씨의 상태를 원장에게 보고했다. 보고는 서 원장의 전임인 오병희(64) 원장때부터 이뤄졌다고 한다.

백씨에 대한 치료, 사망진단서 작성 과정에 서 원장이 개입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 백씨 사망 전날인 지난해 9월24일 작성된 의료기록에는 신찬수(55) 당시 진료부원장이 승압제 사용을 지시한 정황이 드러나 있다.

서 원장은 자신의 책임을 다른 교수들에게 돌리면서 '꼬리 자르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받고 있다. 서 원장은 사망진단서 논란이 불거지자 백 교수를 보직 해임했다. 신 전 진료부원장은 지난해 12월 돌연 자진 사퇴했다.

◇수사권 조정 원하는 경찰, 사과하면서도 연관성 인정 안해

이 청장도 새정부의 코드 맞추기 조치를 했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동안 경찰은 백씨 사건 자체에 대한 언급을 꺼려했으며 당시 물대포 사용이 적법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첫 사과 뒤에 '유족을 만나지도 않고 원격으로 사과를 한다'라는 비판이 일자 직접 유족을 만나 뜻을 전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열어놨다. 지난해 백씨 사망 직후 조문 여부를 두고 여러 비판이 있었음에도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 청장은 지난 5일까지만 하더라도 "수사결과에서 잘못이 명백히 밝혀지면 충분히 유족에 사과도 드릴 수 있다"라고 했다. 그러나 서울대병원의 사망진단서 정정 발표 다음날 유가족에 사과를 했다. 11일만에 입장이 바뀐 것이다.

경찰은 이번 사과가 상황 변화에 따른 것이라는 점을 일부 인정하기도 했다. 이 청장은 19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유감표명은 계속했으나 유가족이 봤을 때 와 닿지 않고 진정성이 없다고 했던 것"이라면서 "늦은 사과는 인정한다. 늦게 된 것은 여러 상황 변화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청장은 백씨 사건 당시 경찰의 수장이었던 강신명(53) 전 청장을 비롯해 그간 경찰 수장이 내비쳤던 입장에서 180도 선회했다. 민주화 희생자들과 함께 백씨 이름을 언급하기도 했다. 집회시위 현장에서 원칙적으로 살수차를 사용할 수 없다는 규정을 신설하고 사용기준을 엄격히 제한하겠다고 밝히는 등 구체적인 재발방지 대책도 내놨다.

하지만 이 청장의 행보를 놓고 새정부의 코드에 철저히 맞춘 행동이라는 비판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경찰은 문재인 정부로부터 수사권 조정을 위해서는 먼저 조직을 인권 친화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문을 받고 있다.

이 청장의 사과도 결국은 문재인 정부의 지침과 방향을 함께한 것으로 해석된다. 경찰 입장에서 백씨 사건은 '수사권 조정'의 가장 큰 걸림돌 가운데 하나다. 경찰이 인권 관련 정책을 연이어 내놓고 있는 상황에서 경찰의 대표적인 인권 침해 사례로 꼽히는 백씨 사건에 대한 입장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다만 경찰은 백씨 사망과 경찰의 직사 살수의 연관성은 여전히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다. 물대포로 인해 백씨가 사망에 이르렀는지 여부는 경찰의 과잉 진압과 관련자들의 혐의를 입증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대목이다.

이 청장 본인의 거취도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새정부가 들어서면 권력기관장들이 교체되는 경우는 비일비재했다. 이 청장도 이 부분에선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가운데 이 청장은 자신의 향후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정부가 추구하는 인권경찰의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최근 수사권 조정에 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부분이나 인권 강화를 요구하는 상황, 정책 기조의 변화 등도 간접적으로 이번 변화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s.wo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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