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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탈모와 ‘정치적 올바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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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칼럼니스트 리처드 골드스타인은 키가 작고 뚱뚱하며 머리가 벗어진 사람이었다. 주간지 ‘빌리지 보이스’에 보낸 글에 자신의 외모를 이렇게 표현했다. “높이가 다르고, 모낭이 제 기능을 못하는, 몸집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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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번역 출간된 <루이비통이 된 푸코>의 여러 내용 중 유독 이 사례가 지금껏 기억에 남는 건 내 몸 몇몇 특징이 골드스타인의 그것과 비슷해서다.

“모낭이 제 기능을 못한다” 같은 말을 듣는다면? 탈모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지 오래지만 시비나 모욕으로 받아들일 것 같다. 골드스타인의 비유는 미국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 운동에 따른 경멸과 차별, 폭력의 언어를 사용하지 말자는, ‘언어의 규범화’가 과해진 점을 자신에 빗대 농반으로 지적한 것이다. 골드스타인이 ‘정치적 올바름의 정치학’이란 제목의 이 글을 쓴 건 1991년, 미국의 PC운동이 절정일 때다. 조지 오웰의 <1984>의 사상경찰 같은 ‘PC경찰’이란 조어가 나오기도 했다.

지난 미 대선에서는 PC가 새로운 대접을 받았다. 도널드 트럼프 당선은 주류가 된 PC의 위선을 심판한 결과라는 것이다. 트럼프가 “해피 홀리데이는 구석에 버려두면 된다”고 한 것은 비기독교인을 감안해 ‘해피 홀리데이’를 더 사용한 버락 오바마 정부의 PC를 겨냥한 전략이었다. 트럼프는 PC를 정치적 이득을 노린 언행이나 억압 기제를 가리키는 틀(프레임)로 만들어 활용했다.

트럼프의 승리를 PC의 패배로 그냥 받아들일 일은 아니다. PC의 결과인 차별제도 철폐나 문화적·종교적·민족적 다양성 존중을 폐기할 일도 아니다. 과도함을 인정하며 PC의 필요성을 다시 주장하는 이도 나타난다.

영국의 문화평론가 아르와 마흐다위는 트럼프식의 공격과 모멸의 언어를 두고 ‘포퓰리즘적 올바름(Populist correctness)’이라고 규정했다. 인종차별주의자를 인종차별주의자로 부르지 못하고, ‘대안 우파(alt-right)’라고 지칭해야 하는 포퓰리즘적 올바름의 문제를 지적한다.

골드스타인의 비유가 떠오른 건 미 대선 결과를 연결해 한국 사회 PC의 과도함을 지적하는 몇몇 글을 보고서다. 한국 사회에서 PC는 주류인가? PC를 제대로 논의라도 해봤는가? 미국의 소수집단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 같은, 한국에서 태어난 이주민 학생을 위한 대학 특별전형을 시도할 수 있을까? 외국인 관광객이나 외국인 아이돌 팬을, ‘외국인’에 ‘바퀴벌레’를 더해 ‘외퀴’라는 합성어로 부르는 사회에서 말이다.

온라인에서 혐오와 차별·배제의 말들은 빈도나 정도에서 심해진다. 여성이나 성소수자들은 공격의 대상이 되기 일쑤다. 이들이 다수와 다른 의견을 낼 때면 존재 자체를 공격받는다. 욕설은 덤이다. ‘정치적 올바름’을 따질 수도 없는 상황이다.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자처하는 이들도 정파 논리에 따라 그 기준이 들쭉날쭉한다.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에게 더 올바른 표현이 뭘지는 고민거리가 아니다. 난무하는 차별과 혐오의 언어를 시정하는 일이 급선무다. 억압의 실체를 철폐하는 제도화도 과제다. 한국의 PC는 진행형이며 투쟁 중인 셈이다.

내가 탈모로 겪은 일을 입 밖에 꺼낸 건 민망하다.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소수자가 당하는 차별, 폭력에 비할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30대 이후 머리숱에 관해 들은 별의별 말은 책 한 권으로 정리해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다. 십수 년 전 “곧 대머리 되겠다. 그렇게 까져서 장가는 가겠냐” 같은 ‘노골적인 걱정’이 최근 “관리 좀 해야겠다”는 ‘완곡한 우려’로 바뀐 게 변화라면 변화다. 내 탈모를 언급하는 사람도 줄어들었다. PC의 영향일 것이라고 본다. 다른 존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부터 다시 시작할 때다.

<모바일팀 김종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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