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38637722 0012017061938637722 09 0902001 5.17.1-RELEASE 1 경향신문 0

[박래용 칼럼]노무현과 문재인 시대의 다른 점

글자크기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에서 “(노 전 대통령의) 이상은 높았고 힘은 부족했다.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다”고 했다. 그렇다. 노무현의 이상은 높았다. 꿈을 이뤄내는 게 정치다. 정치는 주어진 환경에서, 여러 난관을 물리치고,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다. 힘은 부족하지 않았다. 2004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152석으로 원내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행정부와 입법부를 동시에 장악한 최초의 민주정부였다. 참여정부는 그 힘을 4대 개혁입법(국가보안법·과거사법·언론개혁법·사립학교법)에 쏟아부었다. 민생과는 거리가 멀다고 시민들은 느꼈다. 파열음이 터져나왔다. 보수언론을 포함한 보수세력은 반노무현 전선을 구축하고 총결집했다. 돌에 걸려 넘어져도 노무현 탓이라고 했다. 현실의 벽은 높았다. 노무현은 고립됐다. 여당은 대통령을 지키는 동력을 상실했고 울타리는 허물어졌다. 결국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경향신문
나는 노무현이 몇 세대를 앞서 너무 일찍 대통령이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미래에서 온 시간여행자 같았다. 그의 생각은 옳았고 꿈은 창대했지만, 다수의 시민을 끌고 가지 못했다. 그는 항상 시민들의 몇 발짝 앞에 있었다. 그를 지지하고 열광하는 시민도 있었지만, 이해하지 못하고 주저앉는 시민도 많았다. 보수세력의 저항은 집요했고, 참여정부는 서툴렀다.

문 대통령은 “우리는 다시는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이 앞서가면 더 속도를 내고, 국민이 늦추면 소통하면서 설득하겠다”고 했다. 맞다. 참여정부 실패의 본질은 대통령과 시민 간 괴리였다. 그래서 DJ(김대중 전 대통령)는 정치인은 국민 반발짝만 앞서가라고 했다. 개혁은 시민이 체감하고 환호할 때 성공한다. 피로감을 느끼고 짜증을 내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지금 문 대통령은 75% 이상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탈권위, 개혁 드라이브, 민생 챙기기, 사이다 인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의 개혁은 민생과 같이 가고 있다. 국정 역사교과서 폐지와 미세먼지 감축 대책이 동시에 이뤄지는 식이다. 민생과 개혁을 씨줄과 날줄로 교직(交織)시킨다. 자수(刺繡) 놓는 솜씨가 참여정부에 비해 훨씬 세련되고 정교하다. 여당의 한 중진의원은 “문 대통령은 확 달라졌다. 학습을 많이 한 것 같다. 노무현 정부가 왜 실패했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 2012년 대선에서 떨어지고 재수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했다.

인사는 그가 직면한 첫 난관이다. 처음 새 정부의 인선은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미흡한 인사검증으로 발목이 잡혔다. 문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사람들의 34%가 그 이유를 인사 문제로 꼽고 있다. 문 대통령은 “검증이 약간 안이해진 것 아닌가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인사는 이제 시작이다. 17개 부처 장관 후보자 중 6명이 인사청문회를 마쳤고 그중 5명이 임명됐다. 나머지는 아직 청문회도 시작하지 못했다. 국회는 참여정부 때보다 더 열악하다. 그때는 여대(與大)였지만 지금은 야대(野大)다. 문재인 정부는 벌써 코너에 몰리고 있다. 예상보다 빠르다. 탄핵당한 적폐세력의 분풀이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반문 프레임이 보수언론→보수정당→보수언론으로 확대 재생산되는 왕따 사이클은 이미 작동되기 시작했다. 반노무현 프레임의 작동법과 똑같다. 문 대통령은 현실의 벽을 넘어설 수 있을까. 문재인정부가 참여정부 때와 다른 게 있다. 노무현은 시민보다 앞서갔고, 문재인은 시민과 함께 가고 있다. 문재인은 시민들과 담쟁이 덩굴처럼 하나로 휘감겨 있다.

마오쩌둥(毛澤東)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했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권력은 시민에게서 나온다. 특히 야당의 힘은 시민의 지지에서 비롯된다. 야당은 여론과 따로 떨어져 있을 수도, 등을 지고 갈 수도 없다. 하지만 지금 야당은 문재인 정부의 무릎을 꿇려야 존재감을 과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회초리로 나무라도 될 일을 몽둥이질을 하고 있다. 지지율 10%의 정당이 지지율 80% 정부의 허리를 분지를 태세다. 시민들은 묻고 있다. 야당은 몽둥이질을 할 자격이 있는가. 정치란 시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행위라는데 당신들은 누구의 눈물을 닦아줬는가. 대의(代議) 민주주의는 정확히 작동되고 있는가.

많은 시민들은 노무현을 지켜주지 못했던 점을 미안하게 생각하고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를 잘 몰랐던 사람들도,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들도, 비난했던 사람들도 알게 됐다. 그의 꿈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 시민들은 깨어났다. ‘노무현 죽이기’를 무력하게 지켜만 봤던 그때의 시민들이 아니다.

<박래용 논설위원>

▶ 경향신문 SNS [트위터] [페이스북]
[인기 무료만화 보기]
[카카오 친구맺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페이스북 공유 트위터 공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