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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로 세상보기]원더우먼, 슈퍼우먼, 그리고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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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우먼을 대통령으로!’

1972년 미국의 페미니스트 잡지 ‘미즈’는 창간호 표지로 원더우먼을 내세웠다. 표지 화보의 오른쪽엔 베트남 전쟁으로 불타는 장면이 펼쳐지고, 왼쪽엔 ‘진실의 올가미’에 사로잡힌 도시의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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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의 와중에 치러진 이 선거에서 원더우먼은 ‘평화와 정의’를 추구하는 여성 참정권 운동의 상징이 된다. 실제로 1941년 만화 <원더우먼>의 원작자 윌리엄 몰튼 마스터는 이 유명한 여성 캐릭터를 전투적 페미니즘 운동의 상징으로 창조했다. 그에게 원더우먼은 ‘새로운 여성상의 심리적 프로파간다’였다.

하지만, 76년 만에 할리우드 슈퍼히어로 블록버스터 영화로 부활한 <원더우먼>은 여성해방의 상징인가? 아니면, 멀티플렉스 극장의 팝콘 장사를 위해 소비되는 상품화된 여성 이미지에 불과한가? 영화는 당대 대중의 현실을 은유한다. 할리우드 영화의 슈퍼히어로 캐릭터들은 대중의 꿈과 욕망을 상징하는 ‘신화적 장치’다.

1938년 최초의 슈퍼히어로 만화 캐릭터 슈퍼맨은 공황과 세계대전에 지친 대중의 마음속에 평화와 희망의 메시지를 던졌다. 40년 뒤 할리우드 영화로 부활한 <슈퍼맨>은 베트남전 패배와 경제위기로 강대국의 지위를 잃어가던 미국인들에게 팍스아메리카나의 재림을 약속하는 징표였다. 2017년 ‘DC 확장 유니버스’로 다시 태어난 <원더우먼>은 강인한 여성의 힘과 성차별 철폐를 바라는 21세기 대중의 염원을 표상한다.

영화 <원더우먼>은 영웅주의 신화의 내러티브를 충실히 따라간다. 위대한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이 말했듯이, 신화 속의 영웅은 ‘세계의 배꼽’이다. 그(녀)는 선과 악, 죄와 구원이라는 세계와 존재의 근원을 탐구한다. 모든 영웅 신화는 출발-입문-귀환의 3단계 과정을 원형질로 삼는다.

아마존 공주 다이애나는 데미스키라 섬의 여성 유토피아를 떠난다(출발). 전쟁의 고통에 빠진 인간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악과의 투쟁에 나선다(입문). 황금팔찌, 진실의 올가미, 무적의 방패, ‘갓킬러’로 무장한 원더우먼은 초인적 힘으로 전쟁의 신 아레스를 물리치고, 사랑과 평화의 세상을 회복한다(귀환). 원더우먼이라는 여성 영웅은 전쟁과 차별의 세상을 타파하는 신화적 상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할리우드 슈퍼히어로 영화는 보수적 영웅주의를 정당화한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세상은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나누어질 수 없고, 현실은 영웅과 악당의 전쟁터가 아니다.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등 초인적 영웅들이 악당들로부터 구해낸 세상이란 결국 성, 계급, 인종, 사회적 지위 등 온갖 차별로 얼룩진 바로 그 사회다. 영웅의 초인적 투쟁은 사회의 근본적 구원이 될 수 없다. 원더우먼이라는 강인한 여성 영웅은 오늘도 고단한 삶과 노동의 현장에서 ‘슈퍼우먼’이 되기를 강요하는 보수 이데올로기의 영화적 재현이다.

2000년대 이후 할리우드는 슈퍼히어로 장르를 통해 글로벌 영화시장을 장악한다. 코믹스의 양대 산맥 마블과 DC는 디즈니와 워너 브러더스의 마르지 않는 창작의 샘물이 된다.

이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토르, 헐크를 한 영화 속으로 밀어 넣고, 슈퍼맨과 배트맨이 서로 싸우는 ‘프랜차이즈 스토리텔링’ 전략을 통해 안전하고 확실한 최대 이윤을 추구한다.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만화의 황당한 상상력을 영화의 사실적 환영으로 재창조한다. 만화와 그래픽노블은 영화가 되고, 영화는 다시 컴퓨터 게임, 캐릭터 상품, 패션 트렌드, 놀이동산 등이 되어 엔터테인먼트 문화 자본의 순환 고리를 완성한다.

<원더우먼>은 페미니즘 여성해방의 길을 따라가기에는 너무나 할리우드스럽다. 여성을 상품화하는 미인대회 입상자이자,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폭격을 지지한 여전사 갤 가돗이 반전 평화의 상징이 되기도 쉽지 않다. 스크린 속에 펼쳐지는 원더우먼과 아레스의 선과 악의 최후 대결, 디지털 스펙터클의 화려한 액션을 즐기긴 하겠지만, <원더우먼>은 그저 팝콘과 함께 즐기는 2시간짜리 ‘슈퍼우먼’의 환상에 불과하다.

<정헌 | 중부대 교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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