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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말라죽어 또 모내기…비 안오면 농사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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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가뭄에 논바닥 거북등 ‘타는 농심’

서산간척지 염분상승 모 70% 고사

40년만에 재이항해도 모 말라버려

“수억원 빚 쌓일판”핏발선 눈에 눈물

식수 부족 초읽기…충청·경기 기우제

강릉시는 사상 첫 제한급수 코앞에



초여름 푸른 벼로 가득한 들판은 어디에도 없다. 누렇게 죽어가는 모만 마른논을 지키고 있었다. 19일 오후 충남 서산 부석면 논에선 때늦은 모내기가 한창이다. 죽은 모 위로 이앙기가 움직이자 파릇한 새 모가 논에 선다. 농민 한만록(47)씨의 핏발 선 눈에 눈물이 고였다. 한씨는 지난달 20일 모내기를 했지만 보름 만에 말라 죽자 이날 다시 모내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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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산 부석면에서 간척지를 임대해 벼농사를 짓는 한만록(47)씨가 19일 두번째 모내기를 앞두고 말라죽은 모들을 바라보고 있다. 극심한 가뭄으로 논의 염도가 급격히 오르면서 지난달 20일 한씨가 심은 모들은 모두 고사했다. 최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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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가물어 간척지인 땅에서 염분이 올라오는 거쥬. 끌어다 쓴 부남호 물도 비가 오지 않아 염도가 높은디 논바닥에서 염분까지 올라오니 모가 살 수가 없는 거지유.”

한씨가 모내기를 하는 논에 염도 측정기를 넣으니 계기판이 6220ppm을 가리켰다. 영농한계치인 2800ppm의 배가 넘는다. 지난 15일 재이앙했지만 모가 다시 말라버린 논의 염도는 1만6800ppm에 이르렀다. 염기가 오른 논에선 썩은 내가 진동했다. 한씨는 “충남 서부 지역 가뭄은 해마다 반복되지만 모내기철에 올해처럼 비가 안 온 적은 처음이다. 재이앙은 처음”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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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산 부석면에서 간척지를 임대해 벼농사를 짓는 한만록(47)씨가 19일 다시 모를 심을 논의 염도를 측정하고 있다. 이 논의 염도는 영농한계치인 2800ppm을 훨씬 넘은 6220ppm이었다. 최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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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씨가 16만평 논에 한번 모내기하려면 1억원이 든다. 벌써 두 번째 모내기이니 2억원을 쓴 셈이다. 게다가 땅 주인인 현대건설에 줄 임대료(1억8000만원)에 못자리값, 비료값 등 수억원의 빚이 눈앞에 떨어졌다. 열흘 안에 비가 오지 않아 이대로 벼농사를 망치면 올해 수입은 없는 셈이다. 작년에도 가을 가뭄으로 1억원 넘는 손해를 봤다.

“속이 타유, 사람할 짓이 못 돼유. 염기가 빠지려면 내년에도 농사를 못 지을 가능성이 높쥬. 지자체에서 가뭄에도 모내기 거의 다 했다고 하는 것은 거짓이유. 다시 모내기 하는 데가 이리 많은디.”

간척지인 천수만 A·B지구의 사정은 비슷하다. 모가 말라 죽어 새로 모내기가 필요한 서산 지역 농지는 전체(1만8208㏊)의 16%인 2900㏊에 이른다. 천수만 간척지를 중심으로 부석·인지·해미·고북면에 집중됐다. 서산시는 재이앙을 위해 확보한 예산 16억2000만원을 바로 쓰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천수만 B지구와 인접한 태안의 상당수 농경지도 염해를 본 것으로 조사됐다.

천수만 A지구 50㏊에서 농사를 짓는 이우열(74)씨도 마찬가지다. 모 70%는 이미 말라 죽었고 나머지도 시들시들하다. 이씨는 “대체 못자리를 마련했지만 열흘 이내에 비가 오지 않으면 올핸 모든 모내기를 접어야 한다. 물이 없는데다 염도가 높아져 모를 심을 수 없다”고 말했다. 서산천수만 A·B지구 경작자 연합회장을 맡고 있는 이씨는 가뭄에 인재까지 겹쳐 피해가 커졌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농어촌공사 천수만 사업단이 궁리 양수장 공사를 하면서 농업용수를 너무 많이 방류했기 때문에 지금 물이 말랐다. 지난 1월 방류한 날짜, 방류량 등 자료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농민들은 20일 오전 농어촌공사 천수만 사업단을 항의 방문할 참이다.

농민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곳곳에서 하늘에 비를 빌고 있다. 충북 음성군 농업인단체연합회는 19일 오전 가섭산(해발 710m) 정상 봉화대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지난 14일 백마산(해발 464m)에서 기우제를 지냈지만 비가 내리지 않자 하늘과 더 가까운 곳에서 치성했다. 김영호 음성군 농업인단체협의회장은 “농민들의 바람이 하늘에 닿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지난 17일 충남 보령 봉화산, 당진 상록초, 14일 천안 구미산 등에서도 기우제가 열렸다. 경기도 내에서 가뭄이 가장 심한 안성시 금광면 기관사회단체협의회와 이장단협의회도 지난달 26일 금광저수지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한달이 다 돼가지만 비는 오지 않고 가뭄은 더 심해졌다. 금광면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금광·마둔 저수지의 저수율은 1~2%로 운동장처럼 변했다. 금광면 지역에서 모내기를 한 논 30%인 130여㏊에서 논물 마름 현상이 발생했고, 절반 가까운 60여㏊는 거북등처럼 논이 쩍쩍 갈라져가고 있다.

이젠 시민들의 목도 타들어가고 있다. 충북 영동군 학산면 범하리는 지난달 29일부터 하루 2차례 운반 급수로 연명하고 있다. 식수원이던 계곡이 마른데다 파 놓은 관정마저 가뭄으로 불소 성분이 높아지면서 식수로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마을 송인숙 이장은 “먹는 물은 그런대로 이어가지만 생활용수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강원 강릉시는 식수원 오봉저수지 저수율이 31.5%까지 떨어지면서 사상 첫 제한 급수를 코앞에 두고 있다. 30% 이하로 떨어지면 고지대부터 제한 급수를 해야 한다.

서산 수원 춘천 청주/최예린 홍용덕 박수혁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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