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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민주주의가 가야 할 길 / 송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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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송태경
경제민주화를 위한 민생연대 사무처장

문재인 대통령이 6·10민주항쟁 30주년 기념사를 통해 경제영역에서 차별과 불평등을 경험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었다. “이제 우리의 새로운 도전은 경제에서의 민주주의”라며, 경제민주주의를 국가와 시민사회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구체적인 과제로 격상시킨 것이다.

경제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 경제적 관계에서 차별과 불평등을 시정하거나 해소하는 것 또는 평등을 도모하는 것이다. 큰 틀에서 보면 경제적 관계란, 자본과 임노동 관계, 채권 채무 관계, 부동산 소유 및 임대차 관계, 국민과 국가 사이에 형성되는 조세 재정관계, 유통영역의 거래관계(대자본과 중소자본 및 소비자와의 거래관계) 등 다섯 범주로 구분된다. 결국 경제민주화란 이들 관계에서 발생하는 차별과 불평등을 시정 해소하거나 평등을 도모하는 일이다. 부동산 소유 및 임대차 관계의 예를 들면,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은 대표적인 경제민주화 법안이다. 법률은 일반적으로 경제적·사회적 약자인 상가건물 세입자들이 겪고 있는 각종 형태의 불이익과 차별 및 불평등을 시정하려 하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 사회에서 비중 있게 논의되어온 분야가 주주민주주의 영역이다. 이는 장하성 등이 자신들의 소액주주운동을 경제민주주의로 포장하고 대기업집단을 장악한 대주주 일가 등의 권한 남용과 횡포에 대립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주요 내용은 소수주주권 강화, 사외이사제 도입 등으로 나타났고, 최근 이슈는 모회사의 주주가 자회사의 이사에 대해 책임 추궁할 수 있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등이다. 주주민주주의는 우리 사회에서 지배적인 기업형태가 주식회사이고, 따라서 대주주와 소수주주들 사이의 불평등을 시정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일정한 유의미성은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자본과 임노동 관계의 불평등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경제민주주의의 핵심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미시적 분야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경제민주화를 국가와 시민사회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구체적인 과제로 격상시키고 이를 추진하는 것은 과연 온당한가. 이는 이미 대한민국 헌법 제119조 2항이 해결해주고 있다. 헌법은 제119조 1항에서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하되, 2항 중에 “국가는”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하나 중요한 문제는 경제에서의 평등의 도모가 자유를 기초로 하는 시장경제와 상충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만일 시장경제와 상충하는 것이라면, 시장경제의 교란, 더 나아가 경제적 파국의 결정변수가 될 수도 있고, 도덕적 선의가 거꾸로 지옥으로 가는 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우려할 필요가 없다. 평등을 배제하고 오직 “시장의 자유”만을 말하는 극단적인 시장자유주의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자유뿐만 아니라 평등도 시장경제의 기본적인 요소이자 행동양식이기 때문이다. 시장경제는 자유와 꼭 같은 비중으로 평등에도 기반을 두고 있다. 우리는 매일 판매자나 구매자로 “대등하게 만나” “준 것만큼 받는, 받은 것만큼 주는” 평등을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반대로 자본의 횡포에 대항하는 노동자들의 파업을 예로 보면, 시장에서의 평등에 반한 차별과 불평등은 갈등을 증폭시키고 시장경제 질서를 교란한다. 경제민주화의 요구는 시장의 자유에 대한 지나친 강조의 결과 나타난 차별과 불평등의 심화를 시정하려는 것으로, 시장경제와 상충하는 것이 아니라 교란된 질서를 정상화하려는 시장경제 자체의 요구이기도 한 것이다.

결국 남는 문제는 하나다. 문재인 대통령이 경제의 거의 전 영역에 걸쳐 있는 차별과 불평등을 과연 어느 정도 수준까지 시정 또는 해소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드러난 것만을 종합하면, 대통령 문재인의 경제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은 경제의 전 영역에 걸쳐 있지는 않다. 그것은 주로 자본과 임노동 관계에서의 차별의 개선, 미시적 영역인 주주민주주의 영역에서의 제도개선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경제민주화 조처가 비정규직 영역만큼이나 절실히 필요하나 아예 공백이다시피 한 영역도 있다. 개인보증제 폐지, 일부 채권소멸시효 완성채권의 소각 등이 눈에 띄기는 하나, 고금리 대출과 부당한 빚 독촉을 조장하는 법제들, 채권자에게는 편파적이게 유리하고 채무자를 경제 폭력적으로 구속하기도 하는 기괴한 공증제도 등 수많은 차별과 불평등이 난무하는 채권 채무 관계의 영역은 사실상 경제민주화 조처가 전무하다.

아울러 우리의 현재 조세체계는 불로소득인 자산소득에 대해서는 매우 관대하다. 비과세 대상마저 광범위하게 있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은 노동소득의 최고세율에 비해 세율도 터무니없이 낮다. “종합소득세율이 적용되는 최선의 경우조차” 불로소득인 자산소득은 유리알 세금이라 불리는 노동소득세(근로소득세)와 아무런 구별 없이 꼭 같은 세율이 적용된다. 한마디로 우리의 조세체계는 불로소득인 자산소득과 노동소득의 “질적 차이를 감안한 형평에 맞는 평등”은커녕 기계적 평등 수준에도 올라와 있지 않다.

그러므로 문재인 대통령에 의한 경제민주주의 진전은 설령 비정규직 차별이 시정되고 핵심 분야인 기업민주주의 영역에서 노동이사제가 확산하는 최선의 경우조차도 “반의반 걸음의 진전 수준”에 멈춘다. 물론 현실은 고정이 아니라 운동 변화이므로 이상의 평가와 무관하게 앞으로의 운동 변화에 따라 경제민주주의는 더욱 진전될 수도 있고 퇴보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사정은 분명하다. 역사 진보의 변곡점에 해당하는 모든 시기에는 그 흐름에 동참하는 모두가 반의반 걸음의 진보를 이루어내지만, 결정적인 변화가 시작되는 시점은 리더의 한걸음에서부터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란다. 경제의 거의 전 영역에 걸쳐 있는 차별과 불평등을 추가로 점검하여 경제민주주의 진전을 위한 보폭을 한걸음 수준으로 끌어올려 주시라는 것이다. 그리해주시면 분명히 대통령의 말씀대로 “민주주의가 밥이 되고 밥이 민주주의”가 될 것이며, 바로 지금 현재가 새로운 시대로 접어드는 역사 진보의 변곡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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