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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한국 사회] 인문학 정부의 미래학 / 김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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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점쟁이가 우리를 속이는 전형적인 방식이 있다. 인간의 심리를 이용하는 건데, 문명이 태동한 이후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 원리는 이렇다. 일단 어떤 예측을 한다. 맞으면 상관없다. 하지만 예측이 틀리면 그 예측이 실현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정당화를 시도한다. 사람들은 바로 그 틀린 예측이 두려워 돈 주고 부적을 산다. 혈액형 성격을 믿는 사람들과 대화를 해본 적이 있는가? 단 한 번도 필자가 A형이라는 걸 맞히는 사람을 못 봤지만, A형임을 밝혔을 때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필자가 A형이 아니거나, A형 중에도 좀 특이한 사람이 있다는 ‘사후정당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사후정당화, 바로 그 인간의 심리가 21세기에도 점쟁이가 당당하게 돈을 버는 이유다.

커즈와일이라는 미래학자가 있다. 그는 기술적 특이점을 주장하는데, 기술의 발전이 가속화되면 어느 순간 필연적인 변곡점이 올 것이라고 한다. 기술발전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그에게도 배울 점은 있다. 하지만 그 주장에서 온갖 현란한 물리학 이론과 복잡한 테크놀로지를 벗겨내고 나면, 결국 압구정동의 점쟁이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사람은 죽고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이 정도가 과학이 밝혀낸 절대적 진리들이다. 언젠가 사람들은 뇌를 연결해 의사소통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게 커즈와일이 예측한 방식일 가능성은 매우 적다. 이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100년 전 미래학자들이 내놓은 황당한 예측들을 읽어보면 된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존치될 모양이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현 정부의 과학기술정책도 계속될 모양이다. 미래부 장관 후보자, 유영민씨는 몇몇 대기업 임원을 거쳐, 전경련 소속 교육원 교수를 지내고, 국회의원에서 낙선했던, 대표적인 산업계 인사다. 그가 창조과학자로 의심되는 인물과 책 한권을 공저했다는 사실이 논란인데, 사실 그건 큰 문젯거리가 아니다. 저자가 두 명뿐인 책이라, 공저자의 정체성을 몰랐다는 변명만 하지 않는다면, 미래기술에 대한 책을 저술한 건 흠잡힐 일은 아니다. 더구나 그 책은 창조과학 저술이 아니다.

문제는 책의 제목과 내용이다. <상상, 현실이 되다>는 커즈와일류의 서양 미래학 저술들과 대동소이한 내용이다. 6장으로 구성된 책은, 다양한 기술발전의 역사와 현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짤막한 소개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쉽게 인터넷으로도 검색이 되는 내용들이다. 이런 부류의 책은, 융합이 대세로 자리잡던 시절 쏟아져 나왔던 그저 그런 책 중 하나다. 바로 이런 점들을 문제 삼아야 한다.

현 정부가 생각하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 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창업이나 모험 같은 것과는 상관도 없이, 유행을 좇아 대기업에서 승승장구하던 사람의 리더십으로 이루어지는 혁명이라면,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또다시 선진국의 유행이나 좇다가 헛돈을 쓰고 말 것이다. 실리콘밸리를 주름잡고 있는 최고경영자(CEO)들의 면면을 살펴보라. 젊은 시절 안전을 도모한 이들은 한 명도 없다. 누가 혁명을 주도할 수 있겠는가?

한국에도 그런 창업형 시이오들이 있었다. 김대중 정부의 벤처 기업 지원하에 성장했던 아이티(IT) 기업의 임원들이다. 4차 산업혁명의 신기루라도 잡고 싶다면 그들을 중용하면 된다. 문제는 그들이 젊고, 현 정치권과 결이 다르다는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현 정부의 몫이다.

문재인 정부는 훌륭한 최초의 인문학 정부다. 인문학은 역사학을 골격으로 한다. 그래서일까. 인문학 정부의 미래학은 왠지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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