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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프랑스 거대 정당의 몰락… 마크롱 신당 총선 압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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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결선투표 결과

집권 여당 350석 과반 확보

정치 신인 거물 꺾는 이변 속출

공화ㆍ사회당 합쳐 절반도 안돼

극우 르펜ㆍ극좌 멜랑숑도 당선
한국일보

프랑스 하원의원에 당선된 수학자 세드릭 빌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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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현지시간) 치러진 프랑스 총선 결선투표는 예상대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집권 ‘전진하는공화국(레퓌블리크 앙마르슈ㆍLREM)’의 압승으로 끝났다. 중도를 표방한 LREM과 민주운동당(Modem) 연합은 전체 하원의원 577석 중 350석(60.7%)을 차지해 여유있게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60년 넘게 프랑스 정치사를 양분해 온 우파 공화당 계열(137석)과 중도좌파 사회당 계열(44석)은 철저히 몰락했다. 미 뉴욕타임스는 “알프스산맥부터 북부 브르타뉴 해안, 파리에서 지중해까지 프랑스 전 지역이 마크롱 깃발 아래 놓였다”며 이번 총선 결과를 혁명적 변화로 평가했다.

프랑스 정치지형의 대격변을 몰고 온 만큼 승자와 패자의 명암도 뚜렷했다. 대권에 이어 의회권력까지 장악한 LREM은 단연 변혁의 구심점이다. 기성 정치권 타도를 목표로 공천자 절반을 정치 신인으로 채웠을 정도다. 세드릭 빌라니(44)는 마크롱표 정치실험을 대표하는 선두주자다. 빌라니는 2010년 수학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한 세계적 수학자. 70%에 가까운 지지율로 파리 남부 에손느 선거구에서 무난히 당선됐다. AFP통신은 “마크롱 당선에 힘입은 ‘코트테일(뒷자락)’ 효과”라고 표현했다.

모로코 이민자 가정에서 자란 정보기술(IT) 청년사업가 무니르 마주비(33)는 사회당 텃밭인 파리 제19선거구에서 사회당 거물 장 크리스토프 캉바델리 대표를 꺾는 이변을 연출했다. 그는 마크롱 정부에서 디지털 장관을 맡아 최연소 각료로 이름을 올린 인물이다. 공화당 출신인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는 “프랑스 유권자들은 분노보다 희망, 비관보다 낙관을 택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마크롱 대통령과 대선 결선에서 자웅을 겨룬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과 극좌 그룹 ‘프랑스 앵수미즈(굴복하지 않은 프랑스)’의 장뤽 멜랑숑 대표도 승자로 꼽힌다. 르펜은 3수 끝에 아성인 에넹보냉 지역구에서 의회 입성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FN도 현행 2석에서 8석으로 의석수를 늘리며 원내 교두보를 마련했다. 르펜은 LREM을 “기득권 세력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규정하면서 야성(野性) 회복을 기치로 내걸었다. 자신은 마르세유에서 의원 배지를 거머쥐고 당도 17석을 획득한 멜랑숑 역시 “정부의 시장친화적 노동개혁에 반대 목소리를 내겠다”면서 저항 의지를 분명히 했다.

두 거대 정당 공화당과 사회당은 회복 불능의 참패를 맛봤다. 특히 전 집권당 사회당은 생존을 걱정해야 할 기로에 놓였다. 차세대 리더 나자 발로 벨카셈 전 교육장관, 마리솔 투렌 전 보건장관 등 주요 각료들은 줄줄이 고배를 마셨다. 심지어 대선에 출마했던 브누아 아몽 전 교육장관은 결선투표에도 나서지 못했다. 캉바델리 대표는 “이념과 조직 등 원점에서부터 쇄신이 필요하다”면서 당권을 내려놨다.

공화당은 가까스로 제1 야당 지위는 유지했지만 험로가 기다리고 있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정부에서 대변인을 지낸 나탈리 코쉬스코 모리제가 보수 성향이 강한 지역에서 여당 기업가 출신 후보에게 패하는 등 분파별로 분열돼 정체성 혼란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발레리 파크레세 전 예산장관은 “이번 총선 결과는 한 시대의 종언을 의미한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모두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역사적인 총선 승리를 발판 삼아 노동시장 유연화 등 개혁 과제를 밀어붙일 전망이다. 하지만 역대 최저(43%) 투표율에서 보듯, 프랑스 국민의 정치 환멸은 한층 깊어졌다. 낮은 투표율을 고려하면 전체 유권자의 15%가량만 LREM을 지지한 셈이어서 마크롱 정부가 개혁의 공감대를 확보하지 못할 경우 야권과 여론의 반발을 부를 가능성도 충분하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유럽은 “최대 460석까지 기대했던 여당에 다소 못 미치는 결과로 볼 수 있다”며 “유권자의 열정이 식으면 이들은 언제든 반대 세력으로 돌아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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