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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수술 자세 때문에 다리 마비?…병원은 ‘쉬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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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는 사과 한마디 없네요."

경기 의왕시에 거주하는 김 모(29, 여) 씨는 감정을 억누르며 이같이 말했다. 김 씨는 지난 4월 10일, 경기도의 한 대학병원에서 자궁의 혹을 제거하는 복강경 수술을 받았다. 수술 직후 오른쪽 다리가 움직이지 않아 의료진에게 수차례 문의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회복될 것"이라는 대답만 들을 수 있었다.

수술 뒤 2주가 지났지만, 여전히 오른쪽 다리와 발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제야 병원 측은 김 씨에게 신경 검사를 받을 것을 권했다. 검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좌골 신경 중 오른발을 드는 신경의 90% 정도가 손상됐다는 판정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신경이 완전히 회복되는 데 통상 8주에서 10주 정도 걸린다고 본다. 김 씨 사례는 어떨까. 김 씨의 의무기록을 살펴본 김덕경 삼성서울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신경세포를 둘러싼 막뿐만 아니라 신경세포 자체도 손상됐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도 회복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수술 자세는 수술 외적인 문제" vs "자세도 수술의 일부"

두 달이 지난 지금, 프리랜서로 일하는 김 씨는 사실상 바깥 활동을 할 수 없다. 오른쪽 발을 들어 올리지 못해 신발을 신어도 자꾸만 벗겨지기 때문이다. 김 씨의 어머니는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딸 아이가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걸 보면 마음이 미어진다"며 하소연했다.

김 씨는 병원 측에 왜 이런 부작용이 생겼는지 따져 물었다. 하지만 병원의 입장은 확고하다. 복강경 수술로 인해 다리 신경이 손상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수술을 집도한 주치의는 김 씨에게 "수술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수술 외적인 문제"라고 잘라 말했다. 다만 수술 자세로 인해 신경이 눌렸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일부 인정하고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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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산모들이 아이를 낳을 때 취하는 쇄석위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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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치의가 언급한 수술 자세는 광부가 돌을 부수는 자세라는 의미를 가진 이른바 '쇄석위 자세'다. 흔히 산모들이 아이를 낳을 때 취하는 자세로 수술대에 다리를 벌리고 눕는 자세를 말한다. 김 씨는 전신 마취를 받은 뒤 수술실에서 해당 자세로 3시간 가까이 수술을 받았는데 이 과정에서 신경이 눌리거나 무리가 갔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병원 측이 주장한 것처럼 수술 자세는 '수술 외적인 문제'일까? 전문가의 생각은 다르다. 김덕경 교수는 "마취와 수술 자세 역시 수술의 중요한 한 부분"이라고 반박했다. 또 그는 "의료진이 환자 오금 주변에 패드를 깐다거나 고관절에 너무 무리가 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고 말했다. 박호균 의학전문 변호사도 "수술을 받지 않았더라면 김 씨가 다리를 못 쓸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병원 측의 해명을 비판했다.

석연찮은 의무기록 수정...가족 항의에 바로잡기도

이상한 점은 또 있다. 병원 측은 김 씨가 수술 직후부터 지속적으로 다리의 불편을 호소했음에도 수술 다음날인 4월 11일 작성한 의무기록과 간호기록일지에 환자의 상태를 '보행 가능'이라고 적었다. 뒤늦게 이를 발견한 김 씨의 어머니가 항의하자 병원 측은 실수를 인정하며 '보행 불가'로 최초 기록을 수정했다.

의료법 22조 3항에 따르면 의료인은 진료기록부 등을 거짓으로 작성하거나 고의로 사실과 다르게 추가기재 또는 수정해서는 안 된다. 만일 이를 위반할 경우 의료법 88조에 의해 형사처벌까지 받는다. 하지만 일부 의료기관은 관행적으로 의무기록을 수정하고 수정 전 기록을 은폐하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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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의무기록에는 김 씨의 상태가 ‘보행 가능’이라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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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측은 취재진의 의료 과실 여부, 의무기록 수정 등에 대한 질문에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추후 의료 소송으로 이어졌을 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김 씨가 의료 소송을 제기하려면 6개월~1년의 시간이 걸린다. 신경 손상이 '회복 불능 상태'라는 판정을 받아야만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중재를 신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씨가 병원 측에 바라는 점은 '책임 있는 사과'와 '재활 치료 지원'이다. 김 씨는 "수술 도중 문제가 생겼다는 건 분명한 사실인데 병원에서는 나를 짐짝처럼 취급해 눈치가 보였다"고 말했다. 현재 김 씨는 집 주변 병원에서 신경 치료를 받고 있다. 김 씨는 축 처진 오른발을 바라보며 고개를 푹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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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락규기자 (rockyou@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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