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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비즈 인터뷰] 유일호 "극단적 상황 없으면 한국경제 완만한 회복세 보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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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만난 유일호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논문을 읽고 있었다. 후임자인 김동연 부총리가 인사청문회를 하던 날이다. 유 전 부총리는 “30년쯤 된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의 논문을 우연히 찾아 다시 보게 됐다”면서 “지금 봐도 대단한 논문”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월 경제부총리에 취임한 유 전 부총리는 경제학자 출신 정치인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정부의 싱크탱크인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오래 근무했으며 조세연구원장을 지낸 이력이 있다. 그는 2008년 18대 국회에 입성해 19대에 재선한 정치인이다. 19대 국회 임기 중 국토교통부 장관을 맡았고, 이어 한국의 경제정책을 이끄는 경제부총리에 올랐다. 퇴임을 앞둔 지난 7일 최흡 조선비즈 취재본부장이 유 전 부총리를 만나 한국 경제의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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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호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지난 1년 반동안 백병전도 불사한다는 각오로 일했다”며 소회를 밝혔다./조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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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재임 기간 한국 경제는 많은 위기 상황을 겪었다. 지난해 초 취임하자마자 세계 경제는 중국 경제의 경착륙 우려로 심하게 흔들렸다. 이어 미국이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커지더니, 국내에서는 곪을 대로 곪은 해운과 조선 산업을 구조조정 수술대에 올리는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한진해운은 파산했고, 대우조선해양은 어렵게 회생 절차를 밟는 중이다. 여름에는 영국이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하는 브렉시트(Brexit)를 결정하면서 세계 경제는 또 한차례 위기감이 감돌았다.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는 이변도 일어났다. 국내에서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정국이 이어지며 소비와 투자심리가 꽁꽁 얼어붙었다. 올해 들어서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우방이라고 믿었던 일본은 연초부터 한일 통화스와프 협정을 중단했고, 중국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도입을 이유로 한국에 경제보복을 단행했다.

그간의 소회를 묻자 그는 “지난 1년 반 동안 한가지 이슈에 대응하면 다른 하나가 연달아 터지는 일이 반복될 정도로 한국 경제는 숨 가쁘게 돌아갔다”면서 “백병전도 불사한다는 각오로 일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최근 경기 회복세가 나타나고 있지만, 내수 회복세가 미흡해 경기 회복의 온기를 더 많은 국민께서 체감하지 못하고 있어 아쉽다”고 덧붙였다.

연초 한국 경제는 수출이 회복되고 소비와 투자도 살아나며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기대비1.1%로 예상을 뛰어넘는 성적을 기록했다. 폭풍우 속에서 난파선이 될 위기에 처했던 한국경제를 잔잔한 바다까지 이끌고 자리를 물려준 선장이 된 셈이다. 하지만 그는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고도 했다. 보호무역주의가 확산하는 세계 경제의 흐름이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까 걱정이 되고, 북핵 위기도 여전하다는 것이다.

유 전 부총리는 “극단적인 상황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는 완만한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면서 “그런 일(극단적인 상황)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유 전 부총리는 후임 경제팀에 부담을 줄까봐 수차례 인터뷰를 고사했다. 하지만 경제 이야기를 할 때 그는 정치인이 아닌 그저 한국 경제를 걱정하고 고민하는 책임 있는 관료이자 경제전문가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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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반등하는 모양새다. 전망은.
“최근 세계 경제 개선, 설비·건설투자 호조 등으로 수출과 투자가 회복하며 1분기 경제성장률이 6분기만에 1%대로 올라섰다. 주가도 역대 최고 수준이다. 다만 소비 등 내수가 여전히 부진하고 미국의 금리 인상과 보호무역 기조 확산 같은 불확실성이 여전히 있어 회복세가 계속될지 장담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청년 실업난이 계속되고 저소득층 소득 부진에 따른 분배여건 악화로 민생이 매우 어렵다. 앞으로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통해 민생을 조기에 회복하고 수출과 투자 중심의 경기 회복세를 경제 전반으로 확산할 필요가 있다.”

-재임 중 성과와 아쉬웠던 점을 평가한다면.
“세계 경기가 부진한 상황이었지만 한국은 그런대로 선방한 모양새다. 지난 2016년 한국의 GDP 순위는 3단계 상승해 역대 최고 수준인 11위를 기록했다. 성장률은 주요 20개국(G20) 중 5위에 달했다. 고용률도 역대 정부 중 사상 최고인 66.1%를 기록했다. 구조개혁 노력을 인정받아 국가 신용등급도 역대 최고 수준을 받았다. G20에서는 한국을 성장전략 분야에서 1위로, 이행평가에서는 2위로 평가했다. 하지만 노동개혁 등 일부 구조개혁 과제가 지연된 것은 아쉬운 점이다. 지난해 청년실업률이 9.8%까지 치솟은 것과 가계부채 규모가 많이 늘어난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한국 경제의 미래는 낙관적인가. 한국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
“우리가 노력하기에 따라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성장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기적으로는 대외 통상 현안, 가계부채 등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들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장기적으로는 저출산과 고령화에 대응하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 출산율 제고 정책을 강화하면서 청년과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를 늘리는 정책을 써야 한다. 또 주력산업 경쟁력이 약화와 서비스업 성장 정체 등에 대응하기 위해 규제를 개혁해 시장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 교육 개혁을 통해 4차산업혁명에 대비하는 것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기회균등과 성장 과실의 공정한 배분을 위해 인적자본투자 확대, 사회안전망 확충 등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 기반도 마련해야 한다.”

-앞으로 기재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은 어떤 것들인가.
“기재부는 경제정책의 콘트롤타워로 균형잡힌 시각을 갖고 정책이 한쪽에 치우치지 않도록 하는 적극적인 조정자가 돼야 한다. 우선 일자리 중심 성장전략을 추진하면서 중장기 성장잠재력을 확충하려는 공급자 측 대책을 함께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다양한 복지공약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자칫 무너질 수 있는 재정건전성을 유지하고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는 방안도 제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현안에 대응하면서도 한국 경제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4차산업혁명 대응 등 미래전략도 선제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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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창출이 당면한 최우선 과제인 것 같다. 새 정부도 공공 일자리를 늘리는 등 노력중이지만 결국 민간 일자리가 많이 필요하다. 무엇을 해야 할까.
“일자리 창출은 수요·공급 두가지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규제개혁 등을 통한 투자활성화로 일자리의 공급을 늘리는 것과 동시에 수요를 창출하는 노력도 역시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저임금근로자의 소득을 올리고 내수 기반을 확충해야 한다. 또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국내 레저산업 기반을 강화해 고소득자의 해외소비를 국내로 전환하는 것을 추진해야 한다. 이 밖에 외국인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규제 완화도 필요해 보인다.”

-복지는 계속 확대되는 추세다. 정부가 우선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정부는 적극적인 재분배 정책을 시행해 시장경제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청년 실업 등에 대응해 적극적인 일자리 대책을 시행하는 것이 좋은 예다. 또 사각지대를 없애 꼭 필요한 사람에게 맞춤형 복지가 제공되도록 해야 한다. 이 밖에 복지의 전달체계를 개선해 지출도 효율적으로 해야 한다. 복지재원의 누수를 막아야 더 선택적이고 집중적인 복지정책을 쓸 수 있다. 그게 국민의 복지체감도를 향상시키는 길이다.”

-기재부 직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먼저 지난 1년 반 동안 경제부총리로서 국가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열과 성심을 다해 부족한 저를 도와줘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특히 정치적인 이유로 국정운영이 어려웠던 시기에도 혼연일체가 돼 흔들림 없이 경제정책 운용의 중심을 잡아 준 모습은 언제까지나 제 마음속에 기억될 것 같다.”

이재원 기자(tru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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