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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국정교과서 파동 사과 않고 퇴임한 교육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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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저는 ‘어공’(어쩌다 공무원)이었지만 ‘늘공’(늘 공무원·관료)처럼 일하고자 했습니다.”

박춘란 서울시교육청 부교육감(행시 33회)이 문재인정부 첫 교육부 차관으로 임명된 31일. 이영 교육부 차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담담한 어조로 이 같은 이임사를 읽어 내려갔다. 그는 교육부 차관으로 재임한 지난 1년7개월이란 기간이 “힘들었지만 보람있는 시간”이었다고 자평했다.

이 전 차관은 재임 기간 성과로 자유학기제와 ‘2015 개정 교육과정’의 현장 착근, 특별교부금 조기 집행, 중등 직업교육 개선 등을 꼽았다. 박근혜정부 집권 기간 크게 후퇴했다고 평가받는 대학의 자율성, 교육청과의 소통, 심지어 누리과정(만 3∼5세 무상교육)까지 성과로 치부됐다.

하지만 박근혜정부의 최대 ‘교육적폐’라고 평가받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이임식에서 ‘국정’이나 ‘역사’, ‘교과서’라는 단어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는 다만 “아쉬움이 남는 정책도 많이 있었다”며 “새 정부에서 관련 정책들이 개선되고 국민들의 공감을 얻게 되길 기대한다”고 갈음했다.

이 전 차관은 국정 역사교과서 파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는 박근혜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공식 발표(2015년 10월12일)한 지 일주일 뒤 차관에 임명됐다. 김재춘 당시 교육부 차관(현 한국교육개발원장)이 교수 시절 발표한 논문에서 “국정 교과서는 독재국가나 후진국가에서만 주로 사용되는 제도”라고 비판한 게 차관 전격 교체의 직접적 이유라는 소문이 돌았다.

교육부 최종 결재권자 중 한 명이었던 그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을 총괄지휘하기도 했다. 이 전 차관은 국회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한 지 두 달쯤 지난 1월31일 이준식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대신해 국정교과서 최종본 공개 언론브리핑을 주재하면서 ‘개인적으로는 사과하겠지만 교육부 차관으로서는 사과할 수 없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이 전 차관은 ‘국정 교과서 때문에 빚어진 논란과 혼란에 대해 사과할 뜻이 있느냐’는 기자들 질문에 “교육부가 중요한 결정을 하는 데 포함돼 있던 ‘사람’으로서 사과 드린다는 말을 하고 싶다”면서도 “미래 세대에게 역사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역사관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교육부 한 관계자는 “이 전 차관도 사석에선 국민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교과서 정책을 강행했던 것에 대해 매우 가슴 아파했다”며 “하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같은 입장을 밝히기에는 임명직 공직자로서 감안하고 챙겨야 할 요소가 너무 많았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이준식 부총리 또한 비슷한 이유에서 자리에서 물러날 때 국정 역사교과서 강행 문제와 관련해 공식 사과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내다봤다.

다음은 이영 전 교육부 차관의 이임사 전문.

교육부 가족 여러분!

감사 드립니다.

외부에서 예고 없이

갑자기 차관직을 맡은 저를

믿어 주시고 성심으로 함께 일을 하여 주심에

깊이 감사 드립니다.

저는 지난 1년반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사심이나 다른 목적과 의도 없이

우리 학생들의 꿈과 끼를 살릴 수 있는

행복 교육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진심으로

함께 일을 해 주신 덕분에

여러 성과도 있었다고 자부합니다.

1. 자유학기제가 현장에 착근하고 있으며

학교 만족도 향상, 학업성취도 향상, 인성 개선 등

여러 성과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학생중심으로 수업이 이루어지고

학생이 미래를 꿈꾸며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여러 교육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특수학교에서도 자유학기제가 잘 시작되어,

전면 실시가 내년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대선 과정에서

모든 후보들이 자유학기제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해 주었고

제도의 확대가 예견됩니다.

2.누리과정 예산에 대한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유아교육지원 특별회계법 입법을 통해

당분간은 학부모의 불편을

끼치지 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3. 2015 개정교육과정이 잘 준비되어

시행되고 있습니다.

저는 그간 여러 차례 밝힌 바와 같이

2017년 교육부의 가장 중요한 사업은

2015 개정교육과정의 안착이라고 생각합니다.

2015 개정교육과정은

교과서개발-연수-수업방식 개선-평가-교원양성-임용-대학입시제도 개선 등을 포함하는

하나의 교실개혁 패키지를 의미하는 것으로

우리나라 학교의 교실을 학생 중심으로 바꾸고

우리 학생들을 행복하게 만들며

시대에 부합하는 창의융합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기본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에듀넷-티클리어 사이트를 개통하는 등

수업?평가 개선을 위한 기반이 조성되고 있습니다.

4. 특별교부금과 각종 사업 지침을

시도교육청에 내려보내는 시기를

2달 정도 앞당겨 12월에 시행하고

특교사업에 있어서

교육청과 학교의 자율성을 제고함으로써

시도교육청과 학교가

보다 주도적으로 사업을 시행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올해에는 추가적인 제도 개선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보통교부금의 예정교부가 이루어지는 10월말에

특별교부금 사업 계획이 함께 내려가고

교육청에서도 바쁜 11월-12월을 보내

학교에서 3월 개학과 동시에

학생들의 교육에 몰입할 수 있는

제도로 정착되기를 기대합니다.

5. 중등 직업교육 개선과 관련하여

2016년 실무과목에 우선 적용된 NCS 교육과정이

내년 전면 적용을 앞두고 있습니다.

또한, 도제학교가 확대되고

작년에는 첫 졸업생을 배출하였으며

직업계고 학생 비중을

현재 19%에서 29%로 높이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최근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특성화고의 자율적 개선 노력에 대한

재정지원 사업인 매직사업은

당초 올해 100개교를 선정할 예정이었으나

현장의 높은 관심을 반영하여

50개교 추가 지원 계획을 발표하는 등

좋은 출발을 하고 있습니다.

6. 초중등과 비교하여 대학은

보다 자율성이 높아야 하는 분야로 판단합니다.

대학의 여러 학사제도를 유연화하기 위해

고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했습니다.

일선 대학에서

정말로 이렇게 해도 되냐는 질문을 받을 정도로

자율화의 폭이 큰 이번 대학 학사제도 개선이

현장에서 잘 자리 잡기를 기대합니다.

7. 교육청, 대학, 학교, 학생, 학부모와의 소통에 있어서 그리고 교육부 내부 소통에 있어서

큰폭의 개선이 있었다고 자부합니다.

교육부에서는

'찾아가는...' 시리즈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2016년 학부모 토크콘서트를 20회 개최하였고,

올해에도 9회를 이미 시행하였습니다.

시도교육청과의 찾아가는 정책협의회 이후에

교육청에서 교육부를 보는 시각이

변화하였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교육부 내부에서 정책토론회를 활성화하여서

차관실에서 개최한 정책토론회만도

지난 1년 동안 50회가 넘습니다.

보고를 받을 때에도

최대한 내용들을 상세히 보고 받고

여러 대안들을 점검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아쉬움이 남는 정책도 많이 있습니다.

새 정부에서 관련 정책들이 개선되고

국민들의 공감을 얻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교육부 가족 여러분

저는 '어공'이었지만

'늘공'처럼 일하고자 하였습니다.

소통을 중요시 여기고

교육부 내?외부를 가리지않고 끊임없이 소통하여

단단한 교육정책을 만들고

시행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현장도 중시하여

현장에서 앞으로의 방향을 찾고자 하였습니다.

어디에 가서 발표를 해야 하건,

토론을 해야 하건,

전화를 해야 하건

저에게 주어진 역할을

성심성의껏 수행하려고 했습니다.

저에게는 힘들었지만 보람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여러분들에게도 그랬었기를 기대합니다.

제가 혹시 상처를 드렸던 일이 있었다면

용서하시고 잊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교육부를 떠나지만

교육부의 일원이었던 저 자신을 잊지 않고

그에 부합하게 처신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동고동락하면서 함께 일하여 주신

교육부 모든 분들에게 감사 드립니다.

2017년 5월 31일

이 영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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