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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지금 여성들은 이런 취급 받으며 방송을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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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 평가와 언어·신체적 성폭력 위협 일상화

CBS노컷뉴스 김수정 기자

노컷뉴스

지난달 24일, tvN 신입 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가 서울 마포구 상암동 CJ E&M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식사과와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사진=황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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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8일, tvN 드라마 '혼술남녀'의 신입 조연출 고 이한빛 PD가 살인적인 노동 강도와 비인격적인 대우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사람을 갈아 넣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방송업계의 어두운 면이 다시 한 번 조명됐다.

그 어느 업계보다 견고한 '관행' 때문에 변하지 않는 드라마 제작현장은, 특히나 여성에게 더 가혹했다. 외모 평가와 성폭력적 농담은 일상이었고, 감정노동과 가사노동이 전가됐으며, '여자'라는 이유로 더 많은 무게가 지워졌고, 언어·신체적 폭력을 피할 수 없었다.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미디어 내 성평등을 위한 연속토론회 2부 '#GO_미디어_내_성평등'이 열렸다.

이날 패널로 참석한 tvN 신입 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의 시한 씨는 지난달 18일부터 24일까지 받은 설문조사 내용(총 106건)을 바탕으로, '여성'이기에 겪었던 각종 피해 사례를 발표했다.

드라마 제작 종사자는 촬영 중 최소 12시간, 최대 23시간, 평균 19.18시간 동안 일했고 제작기간 중 평균 휴일은 월 4일, 주 0.9일에 불과했다. 혹독한 노동환경이 남녀 모두가 겪는 어려움이었다면, '여성' 스태프이기에 피할 수 없는 상황도 있었다.

우선 일상적인 외모 평가와 성폭력적 농담이 '문화'처럼 자리잡혀 있었다.

"여자 스태프, 특히나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어린 친구들을 향한 성희롱이 엄청나다. 다리가 두껍다, 살 빼라는 애교 정도다. (…) 일과 전혀 연관성이 없는 일로 트집과 훈계하는 일이 너무 많다."

"지금 드라마 제작환경은 비단 신체, 언어적 폭력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일단 드라마 제작환경 자체가 스태프들에게는 신체적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경험이 많지 않은 어린 스태프들 게다가 그 스태프가 여자라면 더욱 더 심해진다. 흔한 일로는 수많은 남자 스태프들 속에서 어린 여성 스태프를 희롱하듯이 이야기하고 현장 여성 스태프 외모 순위를 매긴다든지 같이 일하는 동료가 아닌 매 프로마다 생기는 관심거리에 불과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여성 스태프들은 하루 24시간 내내 일하는 고된 상황에서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감정노동과 가사노동까지 도맡아야 했다.

"일하는 중간에 불려가서 기분이 상했으니 '웃어라'라는 말도 들었다."

"보조작가를 '밥해주는 애'라고 묘사하기. 다시는 이 바닥에 발 못 붙이게 하겠다고 협박하기. 보조작가들에게 개인적인 가사노동까지 요구하기"

노컷뉴스

(사진=황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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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라는 꼬리표는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됐다. 여자니까 더 감정적이다 등 차별적인 발언이 아무렇지 않게 오갔다.

"여자 작가니까 감정적이고, 남자 작가니까 이야기를 잘 짠다는 편견이 있다. 같은 말이라도 여자가 하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고 남자가 하니 역시 이야기는 남자가 짜야 한다고 했다."

"마음에 안 든다면 수십 미터짜리 모니터라인을 던지고 몇 초 안에 감으라고 함. 감고 다시 주면 다시 던지고 다시 감고의 반복. 못 감으면 언어폭행을 당함. 뒤통수를 친다든가 소리를 지르는 건 기본이고 과도한 노동시간에 체력적으로 지치면 현장에서 분냄새 나는 것이 질색이라며 차별적인 발언도 자주 들었음."

"회식 자리에서 역시 술은 여자가 따라야 제 맛이라고 하는 건 다반사였고, 연출부에 여자 뽑을 때 이쁘기만 하면 되지 뭘 보냐고 했다."

스태프들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는 결국 실질적으로 위해를 가하는 언어·신체적 성폭력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남자친구 있니? 그럼 처녀 아니겠네?'부터 시작해서 '너랑 자고 싶다', ,결혼만 안 했으면 내가 확 자빠트리는 건데', '벗으면 내가 잘 핥아줄 수 있어'까지 상상초월한 멘트들. 이런 말을 하는 자들의 대부분은 유부남이라는 사실. 이 바닥은 쓰레기구나, 더럽다 라는 말로 합리화시키면서 그냥 물 흘러가듯이 지나보내고 버텼던 것 같다."

"십년 차 위의 선배가 조연출에게 일을 시킬 때 과한 스킨십을 이용한 성추행"(무릎에 앉히고 신체 부위를 쓰다듬는 행위)

시한 씨는 "현장 내에서의 성폭력 해결 방안을 고민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과연 바뀔 수 있을까' 하는 당사자들의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도적 개선에 대한 고민도 필수적이지만 중요한 것은 현장 속에서 어떻게 '서로에게 용기'가 되고 성폭력적 상황에 문제제기하는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묻히지 않을 수 있을지 집단적으로 고민하는 데에 있지 않을까"라고 전했다.

한편, 고 이한빛 PD의 유가족과 청년유니온·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 30여 개에 달하는 단체가 함께하고 있는 tvN 신입 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는 현재 CJ E&M에 △공식 사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 등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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