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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실업률 떨어지는데 임금은 제자리… '日本의 수수께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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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근로자 임금을 올려 새 수요를 창출해 생산·투자 활성화로 이어지게 하겠다는 '소득 주도 성장'을 추구하고 있다. 하지만 소득 주도 성장론은 아직 세계적으로 성공 모델을 찾기 어렵다. 이웃나라 일본 아베 정부도 소득 주도 성장을 기대하며 몇 년 전부터 기업에 임금 인상을 촉구해 왔고, 일부 기업이 이에 호응했다. 그 결과 근로자 임금이 반짝 상승하기도 했으나, 최근 다시 주저앉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소득 주도 성장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는 29일 일본의 임금 정체 수수께끼에 대한 최신 가설이 일본은행 내에서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임금 정체가 근로시간 단축 및 낮은 생산성과 관련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일본 최대 광고회사 '덴쓰'의 신입 사원이 살인적인 업무량에 시달리다 우울증에 걸려 자살한 후 많은 기업이 근로시간 단축 등 개선 방안을 내놓고 있다. 일본 정부도 법정 근로시간 단축을 추진 중이다. 근로시간이 줄면 시간당 임금이 상승하더라도 전체 임금은 제자리에 머물게 된다. 또 일본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1인당 생산성이 낮은 국가여서, 직원 임금을 올려주는 대신 생산성 낮은 업무를 포기함으로써 노동력 부족에 대응할 수 있다. 일본은행 관계자는 "기업의 영업시간 단축이 노동력 수요를 낮추고 임금 상승을 억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중앙은행이 임금 정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골머리를 앓는 이유는 임금 상승이 아베노믹스의 핵심 퍼즐이기 때문이다. 아베노믹스의 당초 구상은 '정부와 중앙은행의 돈 풀기→기업의 투자·고용 증가→임금·가계소득 증가→소비·내수 진작→물가 상승'으로 이어지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연결고리가 중간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2013년 아베노믹스 시행 이후 일자리가 증가하며 일본의 실업률은 지난 4월 2.8%로 22년 8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그런데 실질임금은 2013~2015년 오히려 감소하다가 지난해 0.7% 증가율로 반등하는 듯하더니 올 들어 지난 3월엔 전년 동기 대비 -0.3%를 기록하는 등 다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조선비즈



임금 정체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그동안 몇 가지 가설을 제시해왔다. 첫째는 질 좋은 고임금 일자리가 질 나쁜 저임금 일자리로 대체됐다는 설이다. 일본의 경우 '단카이 세대'(1947∼49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가 빠져나간 빈 일자리를 대부분 여성이나 비숙련공, 비정규직 등이 대체했다. 이런 근로자의 숫자와 임금이 늘더라도 전체 근로자 평균임금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가령 지난 4월 일본의 시간제 일자리 근로자의 임금은 2.6% 올라 2007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전체 근로자 임금은 오히려 줄었다.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은 "아베 정부가 성장 전략의 하나로 여성의 사회 진출을 촉진하면서 여성의 노동 참여율이 높아졌지만 대부분 비정규직이나 시간제 근로자이고, 정규직 일자리는 아베 총리 취임 전보다 오히려 줄었다"고 지적했다. 또 노동시장 개혁, 글로벌 경쟁 심화, 저성장 고착화 등으로 노동자들의 임금 교섭력이 약화되면서 임금 상승 동력이 예전만 못해졌다는 분석도 있다.

임금 정체는 비단 일본만이 아닌, 전 세계 선진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미국의 4월 실업률은 4.4%로 사실상 완전고용 상태를 유지하고 있고, 유로존의 3월 실업률은 9.5%로 2009년 4월 이후 최저치까지 떨어지는 등 고용 상황이 날로 개선되고 있다. 하지만 전 세계 22개 선진국의 임금 상승률은 1995~2007년 3.7%에서 2008년 이후 2% 미만으로 떨어졌다. 금융연구원 이광상 연구원은 "고용과 임금의 상관관계가 약해지는 것은 일자리 유형의 변화, 노동자들의 교섭력 약화, 기업 구조 조정 부진, 노동력 구성원의 변화 등 다양한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규민 기자(qmi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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