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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건강한 가족] 털 나는 여자, 털 빠지는 남자 병 때문에 그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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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소 종양 있으면 굵은 콧수염 북미·유럽 국가 신속 허가

스테로이드 부작용 탓 다모증

갑상샘 기능 저하로 심한 탈모

털이 보내는 이상 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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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과정을 거치며 인간의 몸에서 가장 먼저 없어진 것은 털이다. 몸의 일부에 남은 털은 바람·먼지를 걸러 주거나 체온을 유지하고 마찰을 줄이는 용도로 역할이 대폭 축소됐다. 현대에선 기능적인 역할보다 미용상의 역할이 부각된다. 파마·염색으로 자신을 연출하고, 면도·제모를 통해 깔끔한 인상을 남기려고 한다. 털이 나고 빠지는 데 민감한 이유다. 미용상의 이유 말고도 털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간혹 건강 이상 신호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털이 지나치게 많이 나거나 빠지는 것은 종양을 비롯한 다양한 질환이 원인이다.

1년 전 이맘때쯤이었다.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권희연(33·여·가명)씨는 거울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 사춘기 남학생처럼 코밑이 거뭇거뭇해졌기 때문이다. 처음엔 신경 쓰이는 정도에 그쳤지만 날이 갈수록 수염은 굵어졌다. 레이저 제모를 위해 찾은 동네 피부과 의원에선 제모 대신 산부인과 진료를 권했다. 산부인과 의사는 난소에 생긴 종양 때문에 콧수염이 자란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성처럼 털 많은 여성은 몸속 혹 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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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보다 털이 많아졌다면 한 번쯤 건강 이상을 의심하는 게 좋다. 특히 여성이 남성처럼 코·턱·가슴·팔다리에 굵은 털이 나기 시작한다면 단순히 제모로 끝낼 문제가 아니다. 남성호르몬 분비에 관여하는 내분비계 기관(난소·부신)에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 가장 흔한 원인은 다낭성 난소증후군이다. 가임기 여성 10명 중 1명이 겪을 정도로 흔하다. 생리불순·무월경·여드름·비만 같은 증상을 동반한다. 털이 비정상적으로 자라는 ‘다모증’ 역시 주요 증상이다. 백인의 경우 환자 10명 중 6~7명이, 한국을 포함한 동양인은 10명 중 1~2명이 다모증을 동반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난소 또는 부신에 생긴 종양이 원인일 수도 있다. 신장 옆에 붙어 있는 부신은 남성호르몬을 만드는 스위치 역할을 한다. 난소 역시 비정상적으로 증식했을 때 남성호르몬이 과다 분비된다. 종양은 악성이든 양성이든 세포가 필요 이상으로 증식하는 것을 말한다. 부신이나 난소 세포가 과도하게 늘어나면 남성호르몬인 안드로겐이 더 많이 생성되고 결국 여성의 다모증으로 이어진다. 고대구로병원 피부과 전지현 교수는 “여성이 남성처럼 털이 많이 난다면 가장 먼저 내분비계 종양을 확인해야 한다”며 “몸 어딘가에 혹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약의 부작용 때문에 털이 나기도 한다. 약에 의한 다모증은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 대표적인 것은 스테로이드다. 연고 형태의 스테로이드를 바르면 종종 털이 자라는 부작용이 생긴다. 먹는 스테로이드 중에서는 아나볼릭 스테로이드가 몸속에서 남성호르몬과 비슷한 역할을 해 문제가 된다. 일부 면역억제제도 같은 부작용이 있다. 사이클로스포린이란 약은 몸속의 면역반응을 억지로 낮추는 역할을 한다. 이식 수술 후뿐 아니라 일부 자가면역질환, 건선·아토피 같은 피부질환에도 사용된다. 이 밖에도 경련·간질에 쓰이는 페니토인이라는 약을 오래 복용할 경우 남녀를 불문하고 털이 많아지는 부작용이 나타난다. 분당서울대병원 피부과 허창훈 교수는 “약을 끊으면 2~3개월 안에 자연스럽게 털도 사라진다”며 “부작용이 나타나면 같은 계열의 다른 약으로 바꿔 약효를 유지하면서 제모시술로 털을 없애면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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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균·곰팡이 감염으로 머리카락 빠져


서울 관악구에 사는 이용권(42·가명)씨. 얼마 전부터 머리 속이 가렵더니 부쩍 베개에 남은 머리카락이 많아졌다. 머리를 감을 때도 평소보다 머리카락이 더 많이 빠졌다. 눈썹과 속눈썹도 적잖이 빠졌다. 직장 동료가 복용하고 있다는 탈모치료약을 몇 주간 받아서 먹었지만 효과는 전혀 없었다. 탈모클리닉을 찾은 결과 의사는 자가면역질환이 원인이라고 했다.

털이 너무 심하게 빠지는 것도 건강 이상 신호다. 이마가 M자형으로 깊어지거나 정수리 숱이 줄어드는 전형적인 ‘남성형 탈모’가 아니라면 증상을 유심히 살피는 게 좋다. 세균 감염, 자가면역질환, 피부질환, 호르몬 분비 이상, 영양 불균형이 원인일 수 있다.

황색포도상구균 같은 세균이 두피에 침투하면 모낭에 염증이 발생한다. 모낭염은 주로 후두부(뒤통수)에 생긴다. 겉으로 보기엔 커다란 여드름과 비슷하다.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모낭이 망가지고 흉터가 생긴다. 이 자리엔 다시 털이 자라지 않는다. 곰팡이도 탈모를 유발한다. 강아지·고양이를 키우는 집에선 무좀을 일으키는 곰팡이가 두피에 옮을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두피 무좀(두부 백선)은 영유아에게 잘 발생한다. 모낭염과 마찬가지로 흉터를 남길 수 있다. 세균·곰팡이 감염에 의한 탈모는 해당 부위에 열감·부기·각질을 동반한다.

자가면역질환이나 피부질환에 의한 탈모도 비슷하다. 건선, 아토피 피부염, 지루성 피부염, 전신홍반성 루푸스가 대표적이다. 모낭염과 비슷하게 가렵고 부어오르거나 각질·홍반이 생기는 증상을 동반한다. 고대안암병원 피부과 계영철 교수는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모낭을 적으로 인식해 파괴하는 질환”이라며 “원형 탈모처럼 나타나지만 대부분 원상태로 돌아가는 원형 탈모와 달리 흉터가 남아 회복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호르몬 분비에 이상이 생겨 탈모가 올 수도 있다. 갑상샘 질환이 대표적이다. 갑상샘 호르몬은 우리 몸에서 기초대사를 조절하는 기능을 한다. 이 기능이 지나쳐도, 저하돼도 문제다. 절반이 넘는 갑상샘기능항진증 환자에게 탈모가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증상은 남성형 탈모와 비슷하다. 머리카락이 가늘어지다가 탈모로 이어진다. 갑상샘기능저하증은 여성 갱년기 탈모의 주요 원인이다. 만성피로·생리불순이 동반되고, 눈썹이 바깥쪽부터 빠진다. 머리카락이 끊어지는 경우도 흔하다. 갑상샘기능저하증 환자 10명 중 2~3명에게 탈모가 나타난다.

스트레스도 탈모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다. 정신적 스트레스뿐 아니라 수술·출산·고열같이 몸이 받는 스트레스도 포함된다. 대부분 특정 부위의 털이 집중적으로 빠지는 원형 탈모로 나타난다. 스트레스가 심하면 머리와 몸의 털이 동시에 빠지기도 한다. 과도한 다이어트와 빈혈 때문에 탈모가 진행되기도 한다. 특히 구리가 부족하면 털이 쉽게 끊어진다. 스트레스나 영양 불균형에 의한 탈모는 상황이 회복되면 다시 털이 자란다. 서울시보라매병원 피부과 박현선 교수는 “남성형 탈모 치료제가 모든 탈모에 효과를 보이는 건 아니다”라며 “남성형 탈모가 아닌 다른 원인이 있다면 그 원인을 먼저 치료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구 기자 kim.jin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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