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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제인을 연기한 게 아니라 제인을 만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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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영화 ‘꿈의 제인’에서 트랜스젠더 역 맡은 구교환

배우뿐 아니라 감독으로 독립영화계에서 이미 유명

“섣부른 위로 아닌 공존 말하는 작품으로 다가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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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구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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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제인을 연기한 게 아녜요. 시나리오를 통해 제인을 만났고, 그저 스크린에 제인을 옮겼어요. 마치 실존 인물 같았죠. 멋진 여인, 멋진 누나, 멋진 디바가 처음부터 거기 있었어요.”

25일 서울 동작구 사당동 아트나인에서 만난 배우 구교환(35)은 인터뷰 내내 ‘연기했다’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대신 “만났다”와 “옮겼다” 사이를 오갔다. 31일 개봉 예정인 영화 <꿈의 제인>에서 미스터리한 트랜스젠더 ‘제인’ 역을 맡은 그는 시나리오를 읽고 “어디엔가 진짜 있을 것 같은 제인이 궁금했고, 더 알고 싶어서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작품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영화 <꿈의 제인>은 늘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지만, 아무도 곁에 없는 외로운 소녀 소현(이민지)이 가출팸을 전전하며 겪는 이야기를 그린다. 그런 소현 앞에 마치 꿈결처럼 나타난 제인은 “우리 함께 ‘시시한 행복’을 꿈꾸자”며 손을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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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구교환.


주인공을 맡았지만, 영화가 꿈과 현실을 오가는 듯한 이중구조로 짜여진 탓에 상영시간 104분 중 정작 그가 출연하는 분량은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안녕, 돌아왔구나”라는 짧은 대사를 던지는 첫 등장 장면만으로도 그는 모두를 사로잡는다. 구교환은 영화 속에 폐부를 깊게 찌르는 제인의 명대사가 넘쳐나지만, 오히려 몽환적인 이 한 장면이 제인을 잘 표현해 주는 것 같아 가슴이 뛰었다고 했다. “시나리오를 읽을 때도 대사보다 제인의 동선과 분위기, 여백이 먼저 눈에 들어왔어요. ‘제인은 이렇게 당당히 걷는구나’, ‘제인은 여기서 호흡을 쉬는구나’라는 식으로. 그 사이 여백을 어떻게 메울까가 제 고민이었죠.”

제인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인이다. 클럽 ‘뉴 월드’에서 노래를 부르는 트랜스젠더 디바이자, 갈 곳 없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엄마며, 한 때 ‘뉴월드’에서 일했던 정호에 대한 사랑을 간직한 여자다.

“레퍼런스(참고자료)는 필요 없었어요. 완벽한 캐릭터라 어떤 식으로든 ‘연기’하려 들면 제대로 옮길 수 없다고 판단했어요. 대신 제 안에서 제인을 찾으려 했어요. 제스처나 목소리도 그냥 제 것이었지만, 꾸미지 않아도 스크린에서 제인으로 보일 거란 확신이 있었죠. 근처에 사는 감독님과 오며 가며 이야기를 많이 나눈 것(웃음)도 도움이 됐고요.”

극 중 제인은 트랜스젠더에다 섭식장애(거식증)까지 겪는 인물이다. 이 때문에 그는 난생 처음 하이힐을 신고 또각또각 걷는 연습을 해야 했고, 등뼈가 드러나는 장면을 위해 살도 10㎏ 넘게 빼야 했다. 어려움은 없었을까? “시나리오에 쓰여 있으니 했어요. 그게 제인이니까요. 물론 물리적 어려움이 있었죠. 살을 빼고 난 후 엄청난 요요에 시달리기도 했고요. 근데, 저한테 하이힐 신고 잘 걷는 ‘재능’은 있더라고요. 하하하.” 그가 얼마나 자연스럽게 ‘제인화’ 됐으면,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배우상’을 받을 당시, 일부 심사위원이 “진짜 트랜스젠더 아니냐, 여우상을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을 정도다. 정작 그는 “용기 내서 연기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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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꿈의 제인> 한 장면. 엣나인 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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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교환은 이 영화를 통해 섣부른 위로나 연민이 아닌 ‘공존’을 배웠다고 했다. “영화에 ‘어차피 불행한 인생, 혼자 살아 뭐하니? 그래서 다 같이 사는 거야’라는 제인의 대사가 있어요. 제인은 항상 ‘공존’에 대해 말하죠. 힘들 때 알량한 위로보다 함께 있어 주는 것이 더 큰 힘이 되잖아요? 때로는 그게 사람이 아니라 음악일 수도, 음식일 수도, 반려동물일 수도 있어요. 거대할 필요 없어요. 우린 ‘시시한 행복’ 때문에도 잘 살아요. 행복엔 상·중·하가 없으니까요.”

<꿈의 제인>으로 첫 연기상을 받았지만, 구교환은 독립영화계에서 이미 감독으로 유명하다. <왜 독립영화 감독들은 디브이디(DVD)를 주지 않는가>(2013)로 미쟝센영화제 희극지왕 부문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고, <오늘 영화>(2014), <연애다큐>(2015), <플라이 투 더 스카이>(2015) 등에서 연출과 주연을 맡아 1인 2역을 충실히 해냈다.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 속에서 한 명의 구성원이 되는 것이 좋아 감독이든 배우든 주어진 역할을 열심히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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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작품을 묻자 시나리오를 쓰는 중이라 연출작이 될 것 같다면서도 “지금 당장 계산해 값을 구할 수 없는 산수에는 목매지 않는 타입이라, 제인처럼 궁금증이 이는 역할이 있으면 또 어찌 될지 모르겠다”고 여지를 둔다.

어쨌든 그는 제인이 그랬듯 불쑥 다가와 “안녕, 돌아왔구나”라며 인사를 건넬 거라고 했다. 어느 쪽으로 가든 결국 ‘뉴 월드’에서 만나는 <꿈의 제인>처럼, 관객들은 감독으로든 배우로든 결국 구교환과 다시 만나게 될 터다.

유선희 기자duck@hani.co.kr, 사진 엣나인 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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