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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화생방실 같아서요"…흡연자도 등돌린 흡연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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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11개 자치구 13억 투입해 거리 흡연시설 43곳 설치

직접 관리 흠연시설 관리 소홀로 흡연자들 마저 외면해

흡연시설 늘리고 관리 강화해 흡연권·협연권 보호 지적

서울시 "흡연시설 설치는 흡연조장..추가 설치 고려 안해"

이데일리

[이데일리 한정선 기자] 서울시내 거리 흡연시설은 총 43곳. 설치에 13억원이 들었다. 한 곳당 3000만원 꼴이다. 그러나 흡연자들의 외면을 받아 거리의 흉물로 전락한 곳이 적지 않다. 서울시와 11개 자치구들이 흡연시설을 설치만 해놓고 관리는 방치한 탓이다. 특히 흡연자 흡연권, 비흡연자의 혐연권 보호를 위해서는 금연구역을 확대하는 것 못지 않게 흡연시설을 늘리고 이용하기 쉽도록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서울시는 흡연시설 확대에 부정적이다. 흡연시설 설치가 결과적으로 흡연을 조장하는 행위라는 이유에서다.

◇ ‘화생방실’ 흡연부스에 흡연·비흡연자 모두 불만

흡연시설의 관리는 자치구에 따라 해당 구청에서 직접 관리하거나, 민간에 위탁한다. 민간에 위탁한 경우에는 관리업체가 흡연시설에 광고를 게재하는 등의 방식으로 수익을 내기 때문에 흡연자들이 편히 사용할 수 있도록 관리에도 적극적이다. 반면 자치구가 직접 관리하는 곳은 관리소홀로 흡연자들에게 외면 받기 십상이다.

광진구는 지하철 2호선 건대입구 2번 출구 옆에 3평(10㎡)짜리 폐쇄형 흡연부스를 운영 중이다. 2호선 건대입구역의 하루 유동인구는 6만 4866명. 서울의 지하철역 307개 역사 중 유동인구 수로는 15위에 해당한다.

많은 유동인구를 수용하기엔 지나치게 좁을 뿐더러 환기가 잘 안 된다. 바닥의 타일은 깨져 있고 좁은 흡연부스 안에 청소도구까지 쌓아 놓았다. 이 곳을 이용하는 흡연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흡연자들은 흡연부스 뒷 편에 위치한 야외공연장인 ‘청춘뜨락’으로 간다.

청춘뜨락에서 담배를 피고 있던 직장인 심모(23·여)씨는 “지하철 출구 옆 흡연시설은 좁은데다 환기가 안 돼 화생방 훈련장 같다”고 했다. 청춘뜨락은 공식적으론 금연구역이다. 흡연금지 표시가 곳곳에 붙어 있다. 하지만 담뱃재를 버릴 수 있는 쓰레기통이 비치돼 있고 단속도 없어 흡연자들이 즐겨 이곳에서 담배를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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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2호선 신촌역 부근에는 아예 거리 흡연시설이 없다. 신촌역은 하루 7만 1424명이 오고 가는 곳이다. 서울 전체 지하철역 중 유동인구가 11번째로 많다. 하지만 관할구인 서대문구는 실효성이 없다는 이유로 흡연시설 설치에 부정적이다. 흡연시설을 설치해도 어차피 흡연자들이 사용하지 않는 만큼 예산낭비라는 것이다.

지난 주말 찾은 신촌 지하철역 4번 출구 부근. 금연구역 표식 아래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남배를 피우고 있었다.

직장인 임모(36)씨는 “금연구역인 것은 알지만 신촌역 부근에는 마땅히 담배를 피울 만한 곳이 없다. 어쩔수 없이 이 곳에서 담배를 피운다”고 말했다.

또 연세로 부근의 술집 앞이나 골목 사이사이마다 담배를 피우는 흡연자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비흡연자인 장모(39·여)씨는 “흡연자들은 골목 구석에서 핀다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앞을 지나쳐야 할 때는 담배연기 때문에 너무 괴롭다”며 고개를 저었다.

◇흡연시설 부족한데 설치 안 늘린다는 서울시

서울시가 지난해 5월 지하철 출입구 10m이내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했다. 3개월간의 계도기간을 거쳐 지난해 9월부터 지하철 출입구 앞 흡연행위 단속을 벌인 결과 7개월만에 7105건을 적발했다. 한달 평균 1000여건이다. 서울시가 단속보다는 계도에 중심을 뒀다는 점에서 지하철 출입구 흡연행위가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흡연자와 비흡연자 모두 흡연시설을 늘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현재 서울시는 조례로 금연구역내 흡연시설 설치를 금지하고 있다. 흡연을 조장할 수 있는 이유에서다.

지난해말 몇몇 서울시 시의원들이 이 조례를 개정하려 했다. 법제처는 국민건강증진법상 금연구역 내 흡연시설 설치에 대해 별도의 제한이 없는 만큼 하위법인 조례가 이를 제한할 경우 상위법과 충돌할 수 있어 조례를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그러나 서울시가 기존 조례 개정에 반대한데다 시의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려 사실상 무산됐다.

시 관계자는 “금연구역을 확대하는 것은 비흡연자의 협연권 보장도 있지만 담배를 피우기 쉽지 않도록 해 흡연자를 줄이기 위한 차원”이라며 “앞으로도 시 차원에서 흡연시설을 설치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 거리나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피는 흡연자들을 계도해 비흡연자의 간접흡연 피해를 줄이는데 집중할 계획”이라고 덧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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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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