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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김진표 “종교인 과세 전혀 준비안돼”… 내년 시행 무산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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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기획委 ‘정책 뒤집기’ 논란

역대 정부에서 여러 차례 추진돼 온 종교인 과세가 새 정권 출범 직후 뒤집힐 가능성이 커져 논란이 예상된다. 현행법대로라면 2018년 1월 1일부터 종교인에 대해 과세가 시작되지만,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도입 유예 방침을 밝히면서 과세 자체가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국민개세(皆稅)주의 원칙에 따라 추진된 정책을 종교계 등 일각의 반발만을 의식해 철회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익집단 등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힐 때마다 정부가 이런 식으로 정책을 포기하면 정책 추진 동력은 갈수록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 종교인 과세, ‘실세 의원’ 한마디에 뒤집힐 판

국정기획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8일 서울 종로구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기자들을 만나 “전혀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종교인 과세를 내년부터 시행하면) 불 보듯이 각종 갈등과 마찰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종교인 과세 법안이 종교계에 큰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과세를 2020년으로 2년 늦추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만들어 현재 의원 서명을 받고 있다. 여당의 실세 의원인 김 위원장이 과세 유예 방침을 분명히 밝히면서 새 정부가 종교인 과세를 원안대로 추진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졌다.

종교인 과세는 50여 년 전부터 정부에 의해 추진됐다가 종교계 반발 등으로 철회되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1968년 이낙선 초대 국세청장은 “목사, 신부 등 성직자에게 갑종 근로소득세를 부과할 것”이라며 과세 의사를 밝혔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한동안 잠잠하던 종교인 과세 논의는 2000년대 들어 다시 불붙었다. 2012년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민 개개인이 세금 부과 대상이라는 관점에서 예외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과세 의지를 밝혔다. 기재부는 이듬해 다시 종교인 과세를 포함한 소득세법 개정안을 국회에 냈지만 종교계 반발로 처리가 무산됐다.

이후 2015년 12월 종교인의 개인소득에 6∼38% 세율로 세금을 물리는 세법 개정안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처리되며 약 50년 만에 종교인 과세가 현실화되는 듯했다. 이 개정안은 당시 일반 국민과 정책 전문가 등이 평가한 ‘2015년 기재부 최고의 정책’에 선정되기도 했다.

새 정부 역시 원안대로 과세를 추진할 거라는 예상이 많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부터 증세를 통한 복지재원 마련보다는 비과세·감면 제도 손질과 세원 확대 등을 우선 검토하겠다는 방침을 밝혔기 때문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후보자 역시 지명 직후인 21일 “조세감면 혜택을 다시 들여다보고 분리과세를 종합과세로 한다든지 세정 측면에서 실효세율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먼저”라며 비슷한 의사를 밝혔다.

○ “국정 동력 약화될 우려”

하지만 여당 핵심 의원이 새 정부 출범과 동시에 과세 방침을 뒤집으면서 적잖은 논란이 예상된다. 무엇보다 공평 과세 원칙을 포기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정부는 2014년 종교인 과세를 추진하면서 연 100억 원가량의 세수 증대 효과를 기대했지만 이 역시 실현할 수 없게 됐다. 당시 기재부는 문화체육관광부에 등록된 종교인 23만 명 가운데 20% 정도인 4만6000명이 과세 대상이 될 것으로 추산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재정 당국이 종교인 과세를 반복해서 추진한 것은 세수 확보는 물론 국민개세 원칙을 확립하기 위해서였다”며 “과세가 2년 뒤로 또 미뤄질 경우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종교계 내부에서는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한국천주교는 1994년부터 성직자들의 성무활동비와 생활비, 수당, 휴가비 등에 대해 근로소득세를 납부하고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도 종교인 납세에 원칙적으로 찬성 입장을 고수해왔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은 “법적 강제성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세금을 납부하도록 해야 하며, 종교인 과세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이들은 “종교인 과세를 법제화하면 종교활동을 근로행위와 동일시하게 된다”며 “종교활동을 법의 테두리 안에서 강제하려는 시도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장로교에서는 기독교장로회(기장)가 처음으로 2015년 9월 총회에서 종교인 납세 찬성 입장을 공식화했다.

세종=천호성 thousand@donga.com / 전승훈·황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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