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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애매한 비정규직 범위…정규직 전환 논의 걸림돌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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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계약직·사내하청·특수고용 등 곳곳서 논란

"15년된 '노사정' 비정규직 정의 수정해야"

뉴스1

지난 12일 인천공항공사에서 열린 비정규직 간담회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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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이준규 기자 = 문재인 정부가 출범 직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기치로 주요 국정과제로 내세우면서 비정규직 범위를 둘러싼 사회 각계의 시각차가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비정규직에 대한 명확한 법률적 정의가 없는 데다가 그 범위를 노동계와 산업계가 입맛에 맞춰 규정하고 있어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정규직화 움직임이 벽에 부딪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8일 정부 등에 따르면 현행 법률 중 비정규직을 정의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조문은 없으며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준도 없다. 다만 노사정위원회가 2002년 7월 합의한 비정규직에 대한 정의가 비정규직을 규정하는 근거로 사용되고 있다.

노사정 합의에 따른 고용형태별 정의는 Δ특수형태근로종사자 Δ재택/가내근로자 Δ파견근로자 Δ용역근로자 Δ일일근로자 Δ단시간근로자 Δ기간제근로자 Δ기간제근로자가 아닌 한시적 근로자를 우선 규정한 후 나머지는 모두 정규직근로자로 보고 있다.

이렇다 보니 비정규직의 범위가 제한적이고, 이 8가지를 벗어난 새로운 형태의 비정규직은 사실상 비정규직에 가까움에도 불구학고 정규직으로 분류된다.

최근 금융권과 대기업을 중심으로 정규직화가 이슈가 된 무기계약직은 대표적인 논란의 대상 중 하나다. 무기계약직은 기한을 정해놓지 않고 근로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고용기간에 따른 고용 안정 측면에서는 사실상 정규직과 같다. 노사정 합의를 기계적으로 따르는 정부는 이를 정규직으로 분류한다.

그러나 같은 직렬에서 일을 하더라도 건강검진, 학자금 등 복리후생에 있어 정규직과 다른 대우를 받기 때문에 사실상 비정규직이라는 주장도 있다. 업무의 종류와 계약 형태에 따라 지위 등이 엄격하게 구분되는 서구사회와 달리 우리나라는 아직 연공제와 직무중심제의 과도기에 놓여 있어 무기계약직이 논란의 대상이 되기 쉽다.

영세 사업장처럼 안정적인 운영이 예측되지 않아 사내 관행상 계약기간이나 정년 등을 특정하지 않은 근로자들도 있다. 이들은 계약기간이 정해지지 않아 특별한 사유가 없을 경우 계속해서 근무할 수 있다는 이유로 정규직으로 분류된다.

자동차 완성차 공장에서 일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도 정부는 정규직 근로자로 보고 있다. 통계상 사내하청 근로자의 하청업체 소속 여부를 가려낼 문항이 없기 때문이다.

산업계는 사내하청 근로자는 이미 해당 협력업체에 소속돼 근로계약을 맺은 만큼 무턱대고 비정규직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쪽인 반면 노동계에서는 비정규직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화물차 운전기사, 골프장 캐디, 학습지 교사 등 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한 비정규직 포함 여부도 여전히 논란 중이다. 정부 통계에서 이들은 아예 자영업자로 분류돼 근로형태별 조사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부가 파악하는 비정규직 규모는 노동계보다 적을 수밖에 없다.

노사정 합의안에 따라 통계를 작성하고 있는 통계청과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기준 정규직은 1318만명으로, 비정규직은 644만명으로 집계하고 있다. 전체 근로자 중 비정규직 비중은 32.8%다.

그러나 노동계나 연구단체의 생각은 다르다. 한국비정규직노동센터는 정규직 1093만명, 비정규직 870만명으로 비정규직이 44.3%를 차지한다고 집계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경우는 정규직 1089만명, 비정규직 874만명으로 비정규직 비중이 44.5%까지 높아져 있다고 분석했다.

노동계가 추산한 비정규직 수치에 지난해 7월 정부 고용형태공시로 발표된 300인 이상 사업장의 사내하청 92만명,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집계한 특수고용 노동자에는 있지만 정부 통계에는 없는 179만명만 합해도 비정규직 근로자수는 1145만명에 달한다. 추산치 2142만명의 근로자 중 53.5%에 달하는 수치다.

일각에서는 비정규직의 개념을 노동시장 문제 대입한 이유가 격차해소를 통해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을 지원하기 위함인데 통계상 단순하게 '정규직-비정규직'으로 이분해 접근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일례로 상시 5인미만 사업장의 경우 영세 사업주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휴업수당, 가산임금, 연차유급휴가, 생리휴가 등에 대해서는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사업주에게는 부담의 해소지만 근로자의 경우에는 권리가 보전되지 않는 셈으로 이런 경우 해당 사업장의 근로자가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 여부보다는 실질적인 권리 보장이 중요하다.

업종별로 임금격차가 다른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다. 금융업 종사자의 경우 임금수준이 높기 때문에 비정규직 근로자라 해도 임금이 숙박음식업 정규직 근로자보다 높은 경우가 많다. 때문에 단순히 업종 내 정규직-비정규직 격차해소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정책적으로 지원을 해야 하는 대상이 누구인지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정부 내에서도 나오고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당초 비정규직의 개념을 정의하려고 했을 때의 목적은 단순한 정규직-비정규직의 개념 정립이 아니라 보호할 필요성이 있는 근로자가 누구인지를 파악하려 했던 것"이라며 "15년이 지나 노동시장의 상황이 그때와는 많이 달라진 만큼 목적에 맞게 비정규직의 개념 또한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노동계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가 이전 정부와 달리 노동현안을 적극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려면 노동시장이 안고 있는 문제를 실질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비정규직에 대한 올바른 개념 확립은 그 시발점의 하나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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