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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아이 둔 여성은 다 '맘충'인가…무차별 확산에 "또다른 여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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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여성의 몰상식 행위 일반화는 사회적 손실

"엄마들 짓밟는 사회"…미혼여성들도 "두려워"

뉴스1

(자료사진) © News1 이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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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권혜정 기자 = 엄마를 뜻하는 '맘(mom)'과 벌레를 뜻하는 '충(蟲)'이 결합해 낳은 '맘충'은 일부 여성의 몰지각한 행위를 일컫는 비속어다. 지극히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쓰이던 맘충이란 말이 최근 아이를 둔 여성을 향해 무차별적인 확산의 조짐이 보여 우려를 사고 있다. 덩달아 지극히 평범한 엄마들까지 '맘충' 손가락질에 떨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맘충'을 검색하면 수백개의 목격담이 게시돼 있다. 커피숍 커피잔에 아이의 소변을 받는 엄마, 손님들이 가득한 식당 한가운데에서 버젓이 아이의 기저귀를 가는 엄마, 갈고 난 기저귀를 식탁 위에 버리고 간 엄마들의 사진까지 각종 목격담과 '증언' 등이 넘쳐 난다.

'맘충에 데였다'는 글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비행시간 내내 우는 아이를 달래지 않는 맘충 때문에 비행을 망쳤다는 사람부터 "아이가 먹을거니 무료로 음식을 달라"고 말하는 엄마들에 황당했다는 음식점 업주까지 맘충과 연결시키는 사례는 다양하다.

그러나 맘충 논란의 칼 끝이 지극히 상식적인 엄마들까지 겨누면서 아이를 가진 엄마 모두가 혐오의 대상이 되는 분위기다. 평범한 엄마들은 혹시나 '내가 맘충이 되는 것은 아닐까'라고 걱정아닌 걱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

2번째 아이를 가졌다고 소개한 한 여성은 최근 인터넷 게시판에 '그냥 맘충 되려구요'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그동안 맘충이라는 단어가 너무 신경쓰였는데, 이제 놓기로 했다"며 "남들 눈치를 보다 내가 죽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는 맘충이라는 단어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자 "내 아이가 큰 소리로 울면 나도 맘충이 되겠지, 내 아이가 사지도 않을 물건을 만지작 거리면 나도 맘충이 되겠지라는 생각만 들었다"며 "심지어 아이와 손을 잡고 너무 천천히 걸어가 뒷사람에게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닐까 뒤를 돌아보기까지 하는 등 하루하루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살았다"고 마음고생을 털어놓았다.

최근 '아이가 떼를 쓰는 것만 봐도 암에 걸릴 것 같다'는 글을 봤다는 그녀는 "내가 노력해도 안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죄없는 엄마들까지 눈치 보기에 급급한 현실"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그는 "안그래도 아이 키우기 힘든 사회에서 (맘충 논란이) 엄마들을 짓밟고 있다"며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그냥 맘충하려고요"라고 밝혔다.

이 여성처럼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맘충' 손가락질을 피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한다. 한 엄마는 아이와 함께 외출했을 때 기저귀를 갈아야 할 경우 무조건 화장실을 찾는다고 말했다. 간이 기저귀갈이대가 없을 때에는 화장실 변기 뚜껑 위에 아이를 억지로 눕히고 기저귀를 갈 수밖에 없다고 경험을 들려준다. 혹시나 '맘충' 이야기를 들을까 우려해서였다.

6개월 아들을 키우고 있다는 한 여성은 "기저귀갈이대도 없고, 수유실도 없을 때는 어쩔 수 없더라"고 밝혔다. 또 다른 엄마도 "아이와 함께 외출할 때면 무조건 자동차를 가지고 간다"며 "기저귀를 차 안에서 갈기 위해"라고 귀띔했다.

맘충 논란이 이처럼 아이와 함께 있는 여성이면 대상을 가리지 않고 확산되자 '엄마들은 집에만 있어야 하는 거냐'라는 한탄까지 나온다. 한 엄마는 "맘충 논란을 보면 아이, 엄마 혐오증에 걸린 것 같다"며 "맘충이라 불릴 만한 엄마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렇지 않은 엄마들이 절대다수라는 사실을 생각해주기 바란다"고 안타까워했다.

아들 둘의 엄마 이모씨(30·여)는 "어쩔 수 없이 카페 등을 아이와 함께 가게 되면 '혹시나 사람들이 욕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그렇다면 대체 아이와 함께 어디를 가라는 것인지…라는 생각도 가끔 든다"며 "대체 이런 현실에서 어떻게 더 아이를 낳아 키우라는 것인지…"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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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방은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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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충 논란은 결혼을 앞둔 미혼여성이나, 곧 출산하는 기혼여성들에게도 무척 영향을 끼치고 있다. 맘충 논란이 또 하나의 여성혐오 현상으로 번지면서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미혼여성은 "여성과 아이가 더해지면 '맘충'이 되고 있다"며 "당연한 것을 요구하지도 못하고 마음 졸이며 눈치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된 것"이라고 분노했다. 그는 "맘충이라는 말은 여혐 단어가 맞다"며 "아이가 있는 일부 여성의 비도덕적인 행동을 봤을 때, 그 여성처럼 모든 이들이 비난의 대상이 돼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여성 개인의 문제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혼여성 권모씨(30·여)도 "맘충 논란이 앞으로 아이를 갖고, 출산을 하게 되는 모든 여성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사실"이라며 "지금 사회가 엄마를 바라보는 시선이, 미래에 엄마가 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라고 걱정했다.

벨기에를 유럽 대다수 국가에서는 '맘충'과 같이 여성을 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할 경우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젠더폭력을 처벌하는 법을 2년 전부터 세계 최초로 시행하고 있는 벨기에는 이 법에 따라 여혐을 의미하는 말로 젠더폭력을 저질렀을 경우 최대 징역 1년, 1000유로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맘충 등 각종 여성혐오 발언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며 "양성평등과 관련한 다양한 인식이 우리사회에 스며들 수 있도록 이미지 제고 등을 위한 각종 사업을 준비 중이다"고 밝혔다.
jung9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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