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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인간과 AI, 팀워크 이루면 공생의 길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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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알파고 복식 바둑대국

롄샤오ㆍ알파고B 팀 220수 만에

구리ㆍ알파고A 팀에 백 불계승

후반부서 구리 팀 각자 수에 집중

파트너 수에 방해돼 지고 말아
한국일보

26일 중국 저장(浙江)성 우전(烏鎭) 국제인터넷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바둑의 미래 서밋’ 행사에서 구리 9단ㆍ알파고A 팀(오른쪽)와 롄샤오 8단ㆍ알파고B 팀이 페어대국을 펼치고 있다. 우전(중국 저장성)=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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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에일리언’에서 나온 인공지능(AI) 로봇 ‘애쉬’는 인류를 위해 일하는 척하지만 결국 인간을 위기에 몰아넣는 음흉하고 위험한 존재이다. 반면 ‘아이언맨’의 AI비서 ‘자비스’는 사람보다 기계가 더 잘하는 업무에만 집중하며 철저히 주인에게 복종한다. 인간과 AI의 공존이 ‘공생’ 또는 ‘공멸’이란 극단적 결말로 끝나는 영화 속 이야기가 현실에선 어떻게 구현될까.

26일 중국 저장(浙江)성 우전(烏鎭) 국제인터넷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바둑의 미래 서밋’에서 구글 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 인간이 함께한 복식 바둑대국은 제한적이나마 이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는 경기였다. 중국 구리(古力ㆍ34) 9단과 롄샤오(連笑ㆍ23) 8단이 각각 알파고와 팀을 이뤄 서로 겨뤘다. 흑돌을 쥔 구리 9단이 첫 수를 놓으면 상대편인 롄샤오 8단이 두고, 다시 구리 9단팀의 알파고A, 롄샤오 8단팀의 알파고B가 차례로 다음 수를 놓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220수까지 이어진 대국은 ‘롄샤오-알파고B’팀의 백 불계승으로 끝났다.

승패를 결정지은 건 AI와 인간 기사의 팀워크이었다. 앞서 지난 23일과 25일 연이어 바둑 세계 랭킹 1위인 커제(柯潔ㆍ20) 9단을 꺾은 알파고는 어느 위치에 돌을 놓아야 승률이 올라가는지를 스스로 계산한 값에 따라 바둑을 뒀다. 이번에는 상대편뿐 아니라 함께 수를 이어가는 팀원의 결정도 반영해야 해 알파고에겐 연산이 더 복잡해졌다. 결국 서로가 두는 수의 의도를 이해하고 최선의 방향으로 같은 전략을 공유해야 이길 수 있는 게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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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대국에서 초반에는 환상적인 호흡을 맞춘 구리 9단팀이 경기를 주도했다. 이날 현장에서 대국을지켜본 김성룡 9단은 “구리 9단의 81번째 수(참고도1)는 백의 약점을 파고드는 듯 보이지만 실제 목적은 알파고A 차례인 83번째 수(참고도1)에서 우측 흑 모양의 경계선을 크게 완성하기 위해서였다”며 “알파고A가 이를 제대로 꿰뚫어 보면서 판을 우세하게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승리는 후반 알파고B의 묘수를 간파해 그대로 결정타를 던진 롄사오 8단팀에게 돌아갔다. 김 9단은 “알파고B의 144번째 수(참고도2)는 대국을 끝낼 수 있는 ‘힌트’였다”며 “이 수의 의미를 이해한 롄샤오 8단의 154번째 수(참고도2)로 사실상 승부는 끝이 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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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워크의 중요성은 패자인 구리 9단팀이 둔 바둑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서로 보조를 맞추기 보다 각자가 생각하는 최선의 수에만 집중하는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현재 상황에서 확률에 기반한 수를 두는 알파고A에게 구리 9단의 수는 오히려 이를 방해하는 수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가장 빠른 길만 선호하는 알파고가 인간의 개입으로 오히려 미로에 빠진 격이다.

김 9단은 “알파고와 호흡이 맞으려면 계산적이고 냉정하게 바둑을 둬야 한다”며 “구리 9단은 대국 흐름에 몸을 맡겨 좀 더 인간적으로 두는 기사이기 때문에 알파고와는 방향성이 계속 어긋났다”고 평가했다.

이미 알파고와 인간의 경쟁이 의미가 없다는 사실은 여러 차례 입증됐다. 커제 9단뿐 아니라 중국 프로기사 5명으로 구성된 ‘드림팀’도 이날 알파고에 무참히 깨졌다. 이들은 모두 세계대회 우승 경력이 있는 실력자들이지만 인간의 집단 지성도 AI의 벽을 넘지 못했다.

알파고 개발사인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하사비스 최고경영자(CEO)는 “알파고가 인간을 위협하는 적수가 아니라 조력자”라고 강조했다. 알파고 개발 책임자인 데이비드 실버 딥마인드 수석 과학자는 “이번 복식 바둑대국도 사람과 AI가 각자 두는 돌의 움직임을 활용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마련했다”고 밝혔다. 하사비스 CEO는 “앞으로도 AI는 에너지 효율화, 질병 진단 등 다양한 산업에서 인간이 내리는 과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도구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김진호 서울종합과학대학원 빅데이터 MBA학과 주임교수는 “사실 알파고는 자신이 바둑을 두는 지도, 같은 팀이 누구인지도, 편이 나눠져 있다는 것도 모른다”며 “연산과 예측으로 최선의 값을 찾아내는 기술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AI는 사람이 하는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적용될 것”이라며 “AI의 특성을 잘 파악해 이를 적용할 수 있는 산업에 발 빠르게 활용하느냐가 국가나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우전(중국 저장성)= 프로기사 김성룡 9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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