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AI는 클래식음악에서도 인간을 대체할까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AI가 자동 연주하거나 작곡하는 시대... "창작 최종 결정은 인간 몫"

한국일보

지난해 인공지능 작곡가 에밀리 하웰이 작곡한 ‘모차르트 풍의 교향곡'을 연주하고 있는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경기문화의전당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해 3월 이세돌(34) 9단과의 대결에서 4대 1로 승리를 거뒀던 구글 자회사 딥마인드의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가 바둑 세계 랭킹 1위인 중국의 커제(柯潔ㆍ20) 9단과의 1국, 2국에서도 이겼다. 이세돌 9단의 1승이 알파고를 상대로 거둔 인간의 마지막 승리가 될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온다. 바둑뿐만 아니다. 인간의 고유한 창의성과 감성을 AI가 모방할 수 없을 것이라는 예상에도 불구하고 AI의 활약상은 예술분야에서도 두드러진다. AI가 예술가를 대체할 수 없을 것이란 말은 인간의 희망일 뿐일까?

기술이 가져다 준 청사진

연주자 없이 피아노가 연주되는 건 더 이상 공포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이 아니다. 서울 도심의 건물 로비에서 한국인 최초 쇼팽콩쿠르 우승자인 조성진의 연주가 흘러 나오는 피아노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을지 모른다. 단,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연주자가 없을 뿐이다.
한국일보

스타인웨이앤드선스의 자동 연주 피아노 스피리오는 연주자들의 연주를 녹음으로 남기는 차원을 넘어 실연으로 감상할 수 있게 한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미국의 클래식 악기 제조사인 스타인웨이앤드선스에서 2015년 선보인 ‘스피리오’는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재현하는 자동 연주 피아노다. 아이패드를 이용해 피아노를 제어하는데 음과 리듬뿐만 아니라 연주 뉘앙스까지 재현한다는 게 특징이다. 지금까지 자동 연주 피아노가 단순히 건반의 움직임을 재현하는 데 그친 데 비해 보다 정교해졌다. 피아노의 해머가 현을 두드리는 위치와 속도를 초당 800회, 페달 동작은 초당 200회 기록한다. 스타카토와 레가토로 대변되는 미묘한 차이까지도 표현할 수 있다.

이런 기술을 활용할 때 예상되는 인간의 미래는 혁신적이다. 자신의 연주는 녹음, 녹화된 게 아닌 한 직접 들어볼 방법이 없었던 연주자들은 자신이 방금 전 연주한 음악을 피아노로 직접 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없는 위대한 연주자들의 협연도 상상할 수 있다. 스피리오가 쇼팽의 피아노 연주를 저장할 수 있다면 조성진과 쇼팽의 협연이 한 피아노에서 가능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미 독자적으로 발전한 로봇의 연주와 창작

기계는 더 이상 인간이 활용할 때만 의미를 갖지 않는다. 스스로 연주하고 심지어는 창작도 한다. 연주나 작곡 기능이 탑재된 AI와 로봇이 전자음악 분야가 아닌 클래식 음악 분야에서도 매년 능력이 향상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한국일보

그림 2지난해 성남문화재단에서 열린 인간과 로봇의 피아노 연주 대결에서 로봇 테오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연주를 선보였지만 사람들의 공감을 자아내지는 못했다. 성남문화재단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해 성남문화재단에서는 인간과 로봇의 피아노 연주 대결이 펼쳐졌다. 이탈리아의 피아니스트 로베르토 프로세다와, 엔지니어 마테오 수지가 2007년 처음 개발한 로봇 테오트로니코가 무대에 올랐다. 테오는 53개의 손가락을 가지고 1,000곡 이상의 곡을 연주할 수 있는 로봇이다. 테오의 장기는 악보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연주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아직 인간은 무미건조한 정확성보다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음악에 더 감동을 받는다는 사실이 이 대결로 다시 한번 확인됐다. 프로세다가 인간과 로봇의 피아노 대결이라는 주제로 전 세계적인 공연을 펼치고 있는 이유도 “기계가 따라올 수 없는 인간 예술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기 위해서”다.

작곡하는 AI도 점점 발전 중이다. 지난해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경기필)는 인공지능 작곡가 에밀리 하웰이 만든 곡을 연주했다. 하웰은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UCSC)의 데이비드 코프 교수진이 개발한 AI 작곡 프로그램이다. 첫 앨범은 2009년 발매됐다. 하웰은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박자와 구조를 자료화한 뒤 이를 조합해 작곡을 한다. 수학적인 분석을 통해 각 곡의 유사성을 찾아내고, 바로크부터 현대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풍’의 음악을 만든다. 경기필은 ‘모차르트 풍 교향곡’ 중 1악장을 연주했다. 당시 연주를 함께 했던 경기필의 한 단원은 “음악 분야는 AI가 넘볼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했기에 ‘이러다 일자리를 뺏기는 거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들었다”며 “인공지능이 작곡한 모차르트 풍의 작품은 어색한 부분도 있었지만 생각보다 모차르트 음악의 특징을 잘 묘사하고 있었다”고 평했다.

당시 경기필은 실제 모차르트가 작곡한 교향곡 제34번 1악장도 연주한 뒤 관객들에게 어느 음악이 더 아름다운지 고르게 했다. 결과는 514대 272로 모차르트의 압도적 승리였지만 인공지능의 손을 들어준 관객도 3분의 1 이상이었다.
한국일보

지난해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인공지능 작곡가 에이미 하웰이 작곡한 곡을 연주했다. 당시 무대에 올라 관객들에게 인사한 하웰. 경기문화의전당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더 진화한 AI는 인간을 따라잡을까

바둑과 달리 클래식 음악에서는 인간이 승리했다. 아직까지는 로봇이 인간을 따라잡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구글은 음악을 연주하는 피아노 로봇인 ‘AI 듀엣’을 공개했다. 인공신경망을 활용한 기계학습 기술인 딥러닝을 활용한 AI다. 인간이 연주한 음악을 입력하면 AI 두엣이 연주법을 훈련한다. 멜로디의 패턴을 익히면 스스로 멜로디도 만들 수 있다. 지난해 룩셈부르크와 영국 런던에 설립된 아이바(Aiva) 테크놀로지의 AI ‘아이바’는 딥러닝을 통해 작곡하는 인공지능이다. 아이바가 작곡한 클래식 음악은 이미 영화, 광고, 게임 음악 등으로 쓰였다.

AI가 연주와 창작까지 하는 시대, 예술가들은 ‘과연 예술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은 잊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진은숙 서울시립교향악단 상임작곡가는 “작곡을 할 때 컴퓨터의 도움을 받는 작곡가들도 있는데 어디까지나 기계의 도움을 받는 것일 뿐 예술적 결정은 인간의 몫”이라고 잘라 말했다. 성시연 경기필 예술단장은 “인공지능은 사람의 감성과 창의력을 표현하고 다루기에는 여전히 미흡하다”며 “인공지능이 언젠가 기술적으로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도 있겠지만 왜 음악을 하는지의 본질에는 접근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