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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Why] 푸아그라 같기도 하고, 아귀 간 같기도 한 곱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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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현의 허름해서 오히려] 서울 청담동 '삼성원조양곱창'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옷을 갈아입는다는 것일까? '편하게 입고 나오라'고 문자를 보냈다. 별 답이 없었다. 곱창 먹는데 뭘 차려입나 싶었다. 배포 큰 사내답게 그러려니 하고 개운치 않은 기분을 지워버렸다. 택시를 타고 청담동으로 향했다. 삼성동이 아니라 청담동 '삼성원조양곱창'에 가는 길이었다. 이 곱창집은 청담동이라고 해서 금박을 발라 놓은 것처럼 휘황찬란하거나 통장 잔액을 확인해야 할 정도로 비싸지 않다. 고만고만한 술집과 밥집들이 간판 하나 걸고 차 한 대 아슬아슬 지나갈 만한 이면 도로에 자리 잡은 식당 중 하나다. 한낮엔 반팔을 입어도 좋을 5월 중순, 뿌연 연기가 가득 찬 식당에는 초저녁부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사람들이 빼곡히 앉아 있었다. 연기가 뿌옇게 피어오르는 실내 한구석에서 맑게 웃고 있는 이를 찾았다.

"일찍 왔네요?" 인사하며 위아래를 쓱 훑으니 청바지에 셔츠 차림이었다. '왜 옷을 갈아입어야 했을까' 물으려다 물부터 한 모금 마셨다. "그런데 어제 내 생일이었던 거 알아요?" 아뿔싸. 어제가 생일인데 연기 나고 냄새 배는 곱창집으로 온 것이다. 그제야 머리가 돌아갔다. 분위기 좋은 곳일 줄 알고 입었던 옷을 곱창집용으로 바꿨던 것이다. 어떤 이는 생일 맞은 애인을 푸드코트에 데리고 갔다는 일화가 떠올랐으나 그다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이미 다른 곳으로 옮길 사정도 되지 않았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손을 들었다. "여기요!"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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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소의 첫째 위인 양과 곱창을 섞은 양곱창(1인분 2만2000원·사진). 주방에서 다 익어 나오는 시스템이기에 불 앞에서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다. 돌판 위에 튀긴 듯 황금빛으로 익은 곱창이 놓이는 것은 금방이요 입속으로 없어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곱창은 굵지 않으나 속에 찬 곱은 일부러 밀어넣은 것 같은 밀도였다. 바삭거리는 듯 쫀득거리는 곱창을 입에 넣으면 쌉쌀하면서도 고소한 곱이 쭉 하고 빠져 입속에 듬뿍 퍼졌다. 그 맛은 세계 3대 진미로 꼽는다는 푸아그라 같기도 했고 아귀찜 집에서 단골들한테만 몰래 준다는 아귀 간 같기도 했다. 쫄깃거리는 양은 씹을수록 다시마를 씹는 것 같은 감칠맛이 났다. 곱창(1인분 2만원)을 추가했다. 나의 화통한 주문 덕분인지 맞은편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나도 흥이 올랐으나 점잖게 맥주만 홀짝였다. 서로를 알아가는 단계에서 굳이 알코올 선호도를 밝힐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오래전 안면을 튼 '이모'가 도와주지 않았다. 테이블을 오가며 이모는 "오늘은 소주 안 마셔?" "오늘은 술 많이 안 마시네?" 하고 자꾸 말을 걸었다.

이모 말을 얼버무리며 "볶음밥 드실래요?" 하고 화제를 바꿨다. 내친김에 청국장도 추가했다. 볶음밥에서는 물기를 찾아볼 수 없었고 걸죽한 청국장은 벼가 익어가는 시골 공기를 퍼 담은 듯 담백하고 구수했다. 청국장 한 숟가락을 떠먹었을 때는 '잘 왔다'는 칭찬도 들었다. 그 후 1년 만에 다시 이 집에 들렀다. 이모는 여전히 "오늘은…" 하고 말을 걸었다. 식당은 여전히 만원이었다. 1년 전 앞자리에 앉았던 이는 나를 남편이라고 불렀다.

[정동현 대중식당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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