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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문재인 정부의 첫 미션…‘청문정국’ 돌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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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정치BAR_이승준의 핑퐁_인사청문회 사용설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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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_김승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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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청문제도의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현 정부 출범 이후 1년 4개월 만에 무려 3명의 총리 후보자가 낙마했다. 지금까지 낙마한 총리·장관 후보자는 노무현 정부 2명, 이명박 정부 10명이었고, 박근혜 정부에서 현재까지 7명이 낙마했다. 인사청문 검증이 지나치게 가혹하다.” (윤영석 새누리당 원내대변인 2014년6월29일 현안브리핑)

“국가 최고 인사권자와 새누리당의 기억상실, 자기부정이 심각하다. 인사청문회제도를 적극 도입한 것은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05년 4월 국회에서 “최근 우리는 4명의 장관급 고위공직자가 줄줄이 불명예 퇴진하는 것을 봤다. 청문회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 인사청문회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라고 발언했고, 법 개정으로 인사청문 대상 고위공직자의 범위가 대폭 확대되었다. 두 가지 팩트 모두 역사의 기록에 남았다. 인제 와서 인사청문회 과잉론을 들고나오는 이 황당하기 짝이 없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박범계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변인 2014년6월29일 현안브리핑)


3년 전인 2014년 6월 국회에서는 때아닌 ‘인사청문회 무용론’이 불거졌습니다.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명한 문창극(역사관 논란)·안대희(전관예우) 두 국무총리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도 열지 못하고 낙마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청와대는 2014년 6월26일 정홍원 국무총리의 유임을 결정했습니다. 여당인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은 인사청문회가 “정치 공세, 망신주기”라며 인사청문회 무용론을 제기했습니다. 급기야 새누리당은 인사청문회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까지 만들었습니다. 이는 역설적으로 박근혜 정부의 불통·무능 인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이 후보자로 지명한 7명의 총리 후보자(김용준·정홍원·안대희·문창극·이완구·황교안·김병준) 가운데 3명(김용준·안대희·문창극) 청문회도 열어보지 못한 채 낙마했기 때문입니다. 국민들의 정서와 눈높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인사라는 평가가 잇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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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대희·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낙마로 유임된 정홍원 전 국무총리의 상황을 빗댄 한 누리꾼의 영화 포스터 패러디. 출처: 트위터 @irhietin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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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인사청문회는 고위 공직 후보자들에게 엄격하고 가혹합니다. 인사청문회 때마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기만큼 어렵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합니다. 이는 인사청문회에서 정책 검증만 이뤄지는 게 아니라 본인, 배우자, 자녀 등 직계가족의 모든 정보가 공개되기 때문입니다. 청문회 탓에 고위공직자를 맡는 것을 꺼리는 인사들도 꽤 많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고위공직자에겐 정책능력은 물론, 국민 눈높이에 맞는 도덕성도 요구됩니다. 국민을 대신해 국회가 고위공직자를 검증하는 것이죠.

24~25일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시작으로 문재인 정부의 초대 국무위원들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이어질 예정입니다. ‘인사청문회 정국’이 시작되면 해당 인사청문특별위원회(청문특위)나 해당 소관 상임위 의원실엔 산더미 같이 쌓인 서류 더미와 그 서류를 밤새 검토하느라 눈이 충혈된 보좌진들의 풍경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기자들도 토지 등기부등본, 과거에 썼던 논문 등의 자료 더미에 코를 박습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을 거치고 인사청문회에서 공수가 뒤바뀐 여야의 표정도 궁금하네요. 정치BAR에서 인사청문회의 역사와 현실태를 짚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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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청문회의 역사는 230년, 한국은 17년

인사청문회는 미국이 1787년 헌법제정의회에서 고위공직자에 대한 의회 인준권을 규정하면서 세계에서 제일 처음 시작했습니다. 당시 인사청문회가 도입된 배경에는 주요 공직자 임명권한을 두고 대통령과 상원 의회 사이의 갈등이 자리 잡고 있었다고 합니다. 누가 임명권한을 가질지 놓고 대립하다 공직자 지명은 대통령이, 검증과 인준은 상원 의회에서 하는 절충안이 도출된 것이죠. 결국은 삼권분립의 정신에 따라 국민을 대표하는 의회가 대통령의 인사권을 견제한다는 취지로 실시된 것입니다.

역사가 긴 만큼 미국의 인사 검증 기준은 혹독하기로 유명합니다. 글렌 라우리 하버드대 교수는 1989년 교육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뒤 청문회 과정에서 20년 전 대학교 시절에 등록금 대출을 받고 갚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 사과와 함께 후보자직에서 사퇴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백악관 사전검증에서 부적격자를 걸러내기 때문에 청문회에서 낙마하는 인사는 드뭅니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미국은 백악관 대통령 인사실에서 후보자를 추천하고 대통령 법률고문실과 연방수사국(FBI), 국세청, 정부윤리처, 해당 부처 윤리담당관실 등이 나서 탈세와 범죄 경력 등 233개 항목에 비춰 3개월 이상 후보자에 대한 사전검증 작업을 벌입니다.

한국은 2000년 6월에 인사청문회제도가 도입됐습니다. 16대 총선에서 인사청문회 도입을 공약으로 내세운 한나라당은 다수당이 되면서 이를 법 제정으로 관철했고 이한동 총리 후보자가 헌정 사상 처음으로 청문회장에 섰죠.

이후 한나라당은 2002년 인사청문회에서 장상·장대환 국무총리 후보자의 위장전입과 부동산 투기 의혹을 집중 제기해 국회 본회의 표결에서 이들 두 총리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잇달아 부결시켰습니다. 또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 직후 여소야대였던 2003년 2월엔 ‘4대 권력기관장'(국정원장·국세청장·검찰총장·경찰청장)을 인사청문 대상으로 확대됐습니다. 2005년 7월엔 장관 등 모든 국무위원 내정자도 인사청문회를 거치도록 법이 개정됐습니다.

◇인사청문회 대상(인사청문회법 2조, 국회법 제46조의3제1항 등)

1. 국회의 임명 동의가 필요한 고위공직자

-대법원장 및 대법관·헌법재판소장·국무총리·감사원장
-국회에서 선출하는 헌법재판소 재판관·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2. 인사청문회는 진행하나 국회 임명동의를 거치지 않는 고위공직자

-대통령이 각각 임명하는 헌법재판소 재판관·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국무위원·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국가정보원장·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금융위원회 위원장·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국세청장·검찰총장·경찰청장·합동참모의장·한국은행 총재·특별감찰관 또는 한국방송공사 사장의 후보자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 제5조제1항에 따라 지명하는 국무위원 후보자
-대법원장이 각각 지명하는 헌법재판소 재판관 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의 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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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동의안이 제출되면 서류 더미에 파묻히는 국회

청와대가 국회에 임명동의안(국회 임명동의를 거쳐야 하는 고위 공직자)이나 인사청문요청안(국회 임명동의를 거치지 않는 고위 공직자)을 제출하면 국회는 제출된 날부터 20일 이내에 그 심사 또는 인사청문을 마쳐야 합니다. 이때 청와대는 국회로 보내는 임명동의안(또는 인사청문요청안)에는 요청 사유서와 함께 증빙서류를 첨부해야 합니다. 인사청문회법 제5조(임명동의안 등의 첨부서류)에서 규정하는 제출 서류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직업·학력·경력에 관한 사항
2. 공직자 등의병역사항신고및공개에관한법률의 규정에 의한 병역신고사항
3. 공직자윤리법 제10조의2제2항의 규정에 의한 재산신고사항
4. 최근 5년간의 소득세·재산세·종합토지세의 납부 및 체납 실적에 관한 사항
5. 범죄경력에 관한 사항


법에 따라 제출된 임명동의안은 보통 200여쪽에 달하는 두꺼운 서류입니다. 국회 사무처로 접수된 임명동의안은 인사청문특별위원회(청문특위)나 해당 상임위원회 소속 의원실로 바로 전달됩니다. 인사청문회는 여야 의원들로 구성된 청문특위(국무총리, 감사원장, 대법원장 및 대법관, 헌법재판소장 등 국회 임명 동의가 필요한 고위공직자에 대한 인사청문)에서 진행하는 경우와 소관 상임위원회(기획재정부 장관, 국무위원, 국가정보원장, 검찰총장, 국세청장, 경찰청장 등 국회 동의를 거치지 않는 고위공직자에 대한 인사청문)에서 진행하는 경우 등 두 가지로 나뉩니다.

청문특위가 꾸려질 경우 13명으로 구성되며 정당별 배분은 교섭단체 등 의원 수의 비율에 따라 정해집니다. 이낙연 총리 후보자의 경우 청문특위는 더불어민주당 5명, 자유한국당 5명, 국민의당 2명, 바른정당 1명 등으로 구성됐습니다. 각 당의 인사청문회 위원 소속 의원실 보좌관들은 임명동의안이 도착하는 순간부터 청문회가 끝날 때까지 서류 더미에 파묻혀 ‘열공모드’를 이어갑니다. 이들에게 ‘임명동의안’은 기본 교재일 뿐입니다. 후보자가 제출한 자료 외에도 봐야 할 내용이 많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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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 제출된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 공직후보자의 기본 신상 정보는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서 열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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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후보자가 이전에도 공직자였던 경우에는 업무추진비 내역을 요청해 검토해볼 수 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인 2013년 1월 헌법재판소 후보자로 지명됐다가 사퇴한 이동흡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경우 30가지에 가까운 의혹이 제기됐지만 결정적으로 문제가 된 건 업무추진비 부당사용이었습니다. 청문회 검증과정에서 업무추진비를 개인적 용도로 부적절하게 사용한 의혹에 드러난 것이죠. (관련기사: 이동흡 업무추진비 주말·휴일 집 근처에서 45차례 부당사용 의혹…30~40만원 고액결제도)

공직후보자가 법조인의 경우에는 변호사 시절 수임내역도 살펴봅니다. 2014년 5월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는 대법관 퇴임 뒤 5개월 동안 16억의 수임료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 국민들의 지탄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자신이 벌어들인 수입의 일부를 기부한다고 밝혔지만, 총리 지명 사흘 전에 3억원을 “세월호 참사에 써달라”고 유니세프에 기부한 사실이 드러나 진정성까지 의심받았습니다. 결국 그는 사퇴를 선택했습니다. (관련기사: 안대희, 총리 물망 시점에 세월호 3억 기부)

언론 역시 후보자들이 소유한 땅의 등기부등본을 열람해서 투기성이 있는지, 토지 취득 당시 불법성 여부가 있는지를 따져봅니다. 후보자의 과거 강연이나, 논문, 신문 기고 등도 주요한 검증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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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 황교안’ 왜…반복되는 자료제출 논란

이 과정에서 자료제출을 둘러싸고 국회 청문특위 위원들과 후보자 간의 힘겨루기가 빈번히 이뤄집니다. ‘공격수’인 야당 위원들과 ‘수비수’인 여당 위원들도 공방을 벌입니다. 후보자들은 “법적 근거가 없다. 과도한 신상털기다”는 이유로 특정 자료의 제출을 거부하고, 청문특위 위원들은 “자료제출을 안 할 경우 ‘깜깜이 청문회’가 된다”고 맞섭니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황 전 총리는 2015년 6월에 진행된 청문회에서 자신의 금융상품 거래 내역은 물론 부인과의 통장 거래 내역, 그리고 법무법인 태평양의 변호사로 재직하던 시절의 수임 내역 등을 일절 공개하지 않아 당시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현 민주당) 청문특위 위원들이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미제출 자료들은 대부분 ‘전관예우’ 의혹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었죠. 특히 황 후보자의 변호사 시절 수임내역 119건 중 ‘자문 사건’이라는 이유로 상세 내용을 지운 채 제출된 ‘19건’이 문제가 됐습니다. 새정치연합은 “19금 사건”이라고 규정하며 자료 공개를 압박했지만, 당시 새누리당은 “변호사법에 따라 공개할 수 없다”고 맞섰죠. 결국 여야 합의로 ‘19금 자료’를 청문특위 위원들이 비공개로 열람했습니다.

24일 이낙연 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도 시작부터 자료제출을 두고 여야 공방이 벌어졌습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이 후보자의 아들 병역면제 의혹 관련 자료, 화가인 배우자의 그림 판매 실적 자료 등을 제출하라고 요구했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 후보자의 자료 제출률(청문특위 요청 대비 제출 비율)은 82%로, 박근혜 정부 총리 후보자였던 정홍원 전 총리(65%), 이완구 전 의원(53%), 황교안 전 총리(78%)와 비교했을 때 이 후보자는 성실히 자료제출에 임했다”고 맞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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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오른쪽)가 2015년 6월9일 오후 국회에서 자신의 자료제출 미비를 문제 삼아 야당 의원들이 인사청문회를 거부해 회의가 열리지 못하는 동안 추경호 국무조정실장한테서 여야 협의 내용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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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여야 힘겨루기’ 넘어야

청문특위는 인사청문회가 끝나면 3일 안에 청문회 결과를 담은 인사청문 심사경과보고서를 국회의장에게 제출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여야 청문특위 위원들이 회의를 열고 인사청문회 결과를 담은 심사경과보고서를 채택할지 논의합니다. 의장에게 심사경과보고서가 제출되면 국무총리처럼 국회의 동의가 필요한 공직후보자의 경우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을 부칩니다. 표결은 비밀투표로 진행되며 국회 본회의에서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이 있을 경우 임명동의안이 인준됩니다. 사실상 여당이 의석수의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을 경우 임명동의안의 인준을 야당이 막을 수는 없습니다.

이에 야당은 공직후보자가 큰 결격사유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청문특위에서 △인사청문 심사경과 보고서를 채택하는 회의에 불참하거나 △심사경과보고서에 ‘부적격’ 의견을 남기거나 △국회 본회의에 불참하는 방법을 고민합니다. 총리 인준을 막을 수 없지만, 공직후보자에게 흠결이 있다고 기록을 남기는 것이죠.

2015년 2월 이완구 전 총리의 경우 새누리당이 청문특위에 불참한 야당을 제외하고 단독으로 심사경과보고서를 채택해 본회의에 부의 했습니다. 당시 이 전 총리는 아들의 병역면제 의혹과 분당 땅 투기 의혹에 시달렸고, 결정적으로 기자들과의 점심 자리에서 언론 보도 개입을 시사하는 말을 한 것이 드러나 야당과 시민사회의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결국 본회의에서 281명의 의원이 참여해 찬성 148표, 반대 128표, 무효 5표로 가결 처리됐지만 ‘반쪽총리’라는 오명을 얻었죠.

본회의 표결을 거치지 않는 국가정보원장, 검찰총장 등은 청문회만 진행하고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심사경과보고서를 채택합니다. 만약 국회가 “후보자가 부적격하다”며 심사경과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을 경우 대통령(임명권자)은 채택 시한 다음날부터 10일 이내에서 기간을 정해 보고서를 보내달라고 재요청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해당 기간까지 보고서가 오지 않아도 대통령은(임명권자) 후보자를 임명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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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도덕성 검증은 비공개하자 vs “명예는 결코 밀실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에서 ‘수첩·불통인사’로 공직후보자들이 잇따라 낙마하면서 미국처럼 도덕성 검증을 비공개로 하자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습니다. ‘신상털기’식 인사검증을 정책 검증으로 바꾸자는 취지죠. 인사청문회가 자질 검증보다 여야 공방으로 치우친다는 비판도 많습니다. 24일 청문회에서 이낙연 총리 후보자가 아들 병역면제 의혹에 “뇌종양 수술을 받았다”고 털어놨는데, 가족들의 신상정보까지 공개되는 것은 가혹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에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은 인사청문회를 도덕성 검증(비공개)과 정책·자질검증(공개)으로 이원화시키자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2월에도 윤한홍 자유한국당 의원이 공직후보자의 사생활 검증을 비공개로 하는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의 주장대로 미국의 경우 공직후보자에 대한 도덕성 검증은 업무능력 검증과 분리해 상원에서 비공개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새정치민주연합(현 민주당)은 인사청문회가 문제가 아니라 청와대의 사전검증 시스템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앞에서도 다뤘지만 미국의 경우 인사청문회 전에 백악관에서 철저하게 사전검증을 합니다. 이러한 사전검증 없이 도덕성 검증을 축소할 경우 입법부의 행정부 견제가 약화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것이죠. 20번 넘는 인사청문회를 경험한 이춘석 민주당 의원은 지난 2013년2월에 낸 <인사청문회와 그들만의 대한민국>이란 책에서 청문회 비공개론에 대해 “이미 대한민국은 범죄가 곧 특권이 되는 사회가 됐다. 명예는 결코 밀실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여야는 19대 국회에서 앞다투어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보면 19대 국회에서만 42건의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이 발의됐습니다. 도덕성 검증을 비공개로 하자는 것부터, “인사청문회 기간을 기존 20일에서 30일로 늘리자”, “신상과 관련된 제출 서류 항목을 강화하자”는 등의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하지만 논의가 진전되지 못한 채 개정안 모두 19대 국회 종료와 함께 폐기됐습니다.

여야 모두 공감하는 것은 인사청문회가 이뤄지기에 앞서 사전검증이 강화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청와대가 먼저 철저히 검증한 뒤 국민 눈높이에 맞는 인사를 내야 한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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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부 인사청문회 ‘위장전입’ 시험대

일단 새 정부의 이낙연 총리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위장전입을 인정했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 앞서 위장전입과, 자녀 이중국적문제를 인정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고위공직자 인사 배제 기준으로 △세금탈루 △병역면탈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논문 표절 5대 원칙을 제시했는데 현재 야당은 이 원칙을 가리키며 문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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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수 국민의당 의원(오른쪽)이 2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위원회에서 이 후보자가 <동아일보> 기자 시절 전두환 대통령에 대해 쓴 기사 스크랩을 들어 보이며 “언론자유를 위해 싸우다 해직기자가 양산된 시절 이런 기사를 써야만 했냐”고 비판하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왼쪽)가 이에 대해 답변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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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전입은 인사청문회의 ‘단골메뉴’입니다. “위장전입은 고위공직자 필수 코스”라는 따가운 비판도 이어졌습니다. 2002년 김대중 정부 시절 장상 국무총리 후보자는 서울 잠원 반포 목동 등에 부동산 투기 목적으로 위장전입을 했다는 이유로 인사청문회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이어 지명된 장대환 총리 후보자는 청문회 전 기자회견을 통해 위장전입 사실을 시인했지만 당시 기자회견에서 “애들을 좋은 곳에서 교육시키려고 했던 생각에서 한 일로 죄송하다”며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로 봐달라”고 해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았습니다. 결국 야당인 한나라당은 인준안을 부결시켰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이후 위장전입에 대한 검증 기준이 약화됐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자신이 위장전입 당사자였습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 2008년 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 2010년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가 낙마했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서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 홍용표 통일부 장관, 임종룡 금융위원장 후보자들은 위장전입을 인정하고도 청문회를 통과했습니다. 위장전입은 주민등록법 위반으로 3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되는 범죄이지만, 대부분의 고위공직자 후보자들에게서 위장전입 사실이 드러나자 “부동산 투기 목적이 아니라면 문제 삼지 말자”는 분위기가 형성된 거죠.

그래서 아예 위장전입 등 도덕성 검증에 대한 기준을 국회에서 마련하자는 주장이 야당에서 나와 눈길을 끕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25일 의원 전체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고위공직자 임명 불가 다섯 가지 원칙을 발표했고 거기 위장전입이 있다. 이낙연 총리 후보자가 부인 위장전입을 인정했는데, 이 상태로 여당이 인준을 강하게 요구하면 대통령 공약이 첫 단추부터 깨어지는 상황이 오고, 공약을 지키기 위해 이 후보자가 자진사퇴하거나 지명을 철회하면 정부의 첫 출범이 늦어지기 때문에 정부·여당이 매우 당혹해 하는 상황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인사청문회 때마다 여야가 입장을 달리해, 여당이면 위장전입이 임명 방해사유가 아니니 넘어가자고 하고, 야당이면 철저하게 태클 거는 일이 반복된다. 인사청문회 결과 승인·불승인 유형을 국회 규칙 또는 원내대표 간 합의를 해서라도 만들어 인준 기준을 정할 필요가 있다”며 “앞으로 남아있는 국무위원들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국회가 인사청문회 기준 마련을 위한 운영위원회 내 소위원회라도 만들어 논의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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