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19 (화)

“가뭄 걱정 말라더니…‘4대강 탓’ 물 말라 농사꾼만 죽어나”

댓글 24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르포] 남한강 지류 여주 청미천 사막화

경기도 남부 농업용수 공급해온 청미천

마구 준설로 바닥 드러내고 모래 쓸려가

2km 밖 넘실거리는 남한강 물 그림의 떡

농민들, 봄엔 가뭄, 여름엔 홍수 걱정

농업용수 확보 대책 요구에 당국 팔짱


“코앞에 병원이 있어도, 아픈 아이 안고 병원에 갈 수 없는 심경을 아십니까?”

지난 19일 오후 경기도 여주시 점동면 장안리 삼합교에서 만난 농민 주경옥(63)씨는 다리 아래 거북등처럼 갈라진 하천 바닥을 바라보며 한숨만 내쉬었다. 불과 2㎞ 남짓한 곳에 물이 넘실대며 흐르는 남한강이 있지만, 정작 농업용수로 사용해온 삼합교 아래 청미천은 바싹 말라 타들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겨레

경기도 용인시 원삼면에서 발원해 안성시 일죽면~이천시 장호원읍을 지나 경기·강원·충북 등 3도가 접하는 지점인 여주시 점동면 장안리를 거처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청미천. 경기도 남부 지역의 주요 농업용수 공급원이지만, 4대강 사업 이후 급속히 물이 빠져 하천 바닥까지 바싹 말라붙어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물 한 방울 없이 바닥까지 쩍쩍 갈라진 하천 옆에 자라던 이름 모를 수풀은 탈곡을 끝낸 볏짚처럼 허옇게 변해 있었고, 먹잇감을 찾아 날아든 백로는 사막처럼 변한 하천을 기웃거리다 금세 날아가 버렸다.

바싹 마른 하천 바닥은 농민들이 물을 찾기 위해 중장비를 동원해 긁어놔 밭이랑처럼 변해 있었고, 군데군데 고여 있는 물은 어김없이 간이 양수기가 빨아들이고 있었다.

불과 7~8년 전만 해도 청미천 바닥에 2~3m 쌓여 물을 한가득 머금고 있던 모래는 몇 년 사이 모두 남한강 쪽으로 쓸려내려 갔다. 이 때문에 길이 200여m의 삼합교 다릿발은 하천 바닥에 박힌 콘크리트 말뚝처럼 밑동까지 송두리째 드러나 있었다.

한겨레

4대강사업으로 지나친 남한강 준설로 인해 지류인 청미천과 수위차이가 심해졌다. 수위차이로 조그만 가뭄에도 청미천은 바닥을 보인다. 25일 오후 바닥까지 드러낸 경기 여주시 점동면 청미천 하류 삼합교. 여주/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청미천은 경기도 용인시 원삼면에서 발원해 안성시 일죽면~이천시 장호원읍을 지나 경기·강원·충북 등 3도가 접하는 지점인 여주시 점동면 장안리를 거처 남한강으로 흘러든다. 이 하천은 길이 37.56㎞, 유역 면적 399.42㎢에 이르는 경기도 남부 지역의 대표적 농업용수 취수원이었다.

한겨레

물 부족으로 바닥까지 드러난 청미천에서 농민들이 농업용수를 찾기 위해 하천 바닥을 파헤치고 양수기를 동원해 물을 얻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농민의 젖줄인 청미천이 이처럼 ‘사막화’된 이유에 대해 농민 주씨는 “모든 게 4대강 사업 때문”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명박 정권이 4대강 사업을 하면서 청미천과 이어지는 본류인 남한강 바닥을 마구잡이로 파헤치며 준설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홍수 조절과 농업용수 확보 등을 내세웠던 4대강 사업이 오히려 농업용수를 고갈시켜 농사꾼들만 죽어나고 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4대강 사업이었는지 꼭 따져야겠다”고 울분을 토했다.

한겨레

4대강사업으로 지나친 남한강 준설로 인해 지류인 청미천과 수위차이가 심해졌다. 수위차이로 조그만 가뭄에도 청미천은 바닥을 보인다. 25일 오후 바닥까지 드러낸 남한강과 만나는 경기 여주시 점동면 청미천 하류. 여주/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여주시 점동면 일대에서 청미천을 기반으로 농사짓는 농가만 어림잡아 450가구. 올해는 봄 가뭄까지 겹쳐 하늘만 바라보는 처지다. 청미천에서 자전거로 고작 10분 거리에 있는 남한강에는 이날도 물이 넘쳐났지만, 농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었다. 농민들은 ‘청미천이 물을 머금을 수 있도록 해달라’, ‘농업용수 확보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정부 당국에 수년째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아무런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4대강 사업 당시 남한강에는 이포·여주·강천 등 3개의 보가 건설됐다. 이 과정에서 남한강 전역에서 15t트럭 234만대분인 3524만㎥의 모래를 퍼올렸다. 이 때문에 남한강 바닥은 평균 4m가량 낮아졌다. 남한강 본류가 지류보다 훨씬 낮아졌고, 장마나 홍수로 지류의 물이 불어나면 지류의 모래는 빠르게 침식돼 본류로 흘러들어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겨레

4대강 사업이 진행된 남한강의 과도한 준설로 수량이 급속히 줄어든 청미천 삼합교 아래에 설치된 유량계. 청미천은 최소 2~3m의 모래가 쌓여 물을 머금고 있었으나, 4대강 사업 이후 모래까지 쓸려내려가 지금은 다릿발 밑동까지 모래와 물이 내려간 상태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백경오 한경대 교수(토목안전환경공학과)는 “4대강 사업 당시 낙동강은 6m, 남한강은 4m가량을 준설했다. 이런 인위적 작업 때문에 본류와 지류 하천의 높낮이 차가 생겼다. 모래와 물이 본류 쪽으로 급격히 이동하면서 지류의 수위가 떨어져 하천 바닥이 깎이고 파이는 일은 4대강 사업 당시부터 예견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4대강 사업 직후 이런 역행침식이 심해져 여주 연양천의 신진교가 붕괴한 적이 있었다. 농민들이 요구하는 용수 확보를 위한 구조물 설치도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현재로서는 지류의 물 부족 현상을 해결할 뾰족한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신진교는 2010년 9월 집중호우로 붕괴했다. 당시 남한강 본류의 지나친 준설로 연양천 하류의 유속이 급속히 빨라졌기 때문으로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4대강 범국민대책위원회’ 상황실장을 지낸 이항진(여주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 경기도 여주시 의원은 “이 정도 봄 가뭄으로 청미천이 바닥까지 드러나지는 않는다. 남한강의 과도한 준설 때문에 지류의 수위가 급격히 낮아져 가뭄 피해가 도를 넘고 있다. 이처럼 남한강과 연결된 지류의 수량 감소는 여주 전역에서 나타나므로 철저한 조사를 통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또한, “현재는 남한강 지류의 물 부족이 큰 문제지만, 장마철에 큰비가 내릴 경우, 이들 하천에 놓인 다리 등 구조물의 안전도 장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앞서 2010년 10월11일 대한하천학회와 ‘4대강사업 중단을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는 기자회견을 열어, “미군 공병단 홍수분석 프로그램에 20년 빈도의 홍수량을 기준으로 한 하천기본계획, 여주·우만 수위관측소 관측 수위를 넣어 분석했다. 그 결과 본류인 남한강의 과도한 준설로 물그릇이 커졌고, 상류인 지천의 유속이 빨라져 홍수 피해가 커졌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국토교통부 서울지방국토관리청 관계자는 “본류(남한강) 준설이 지류의 물흐름이나 수량에 영향을 주는 것은 맞다. 하지만, 현재 청미천의 수량 문제는 봄 가뭄 영향이 더 크다. 모든 원인이 남한강의 준설 때문인 것은 아니다. 농업용수가 부족한 이유는 현재 파악하고 있고, 용수 확보 방안은 농어촌공사와 협의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여주/글·사진 김기성 기자 player009@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주주신청]
[▶ 페이스북] [카카오톡] [위코노미] [정치BAR]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전체 댓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