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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정상원의 탐식 수필] 피레네 산맥의 재래장터, 에스팔리옹 마르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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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적 식탁 위에 오른 보편적 삶의 이야기

정상원 셰프의 세계 여러 나라 미식 골목 탐방기를 연재한다. 정상원 셰프는 프랑스 가정식 레스토랑 '르꼬숑'의 오너 셰프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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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미디피레네주(Midi-Pyrénées)의 에스팔리옹(Espalion)은 산티아고 순례길에 있는 중세 마을이다. 오랜 역사를 품은 만큼 사람들의 호흡은 길고 여유롭다.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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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 김수경 에디터 = 강원도 정선의 오일장만큼 한국적인 것이 있을까. 경복궁이나 북촌 한옥마을도 한국적이지만 재래장터는 가장 서정적이며 우리 삶의 본디 타고난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 같다.

프랑스의 강원도, 미디피레네라는 지역 한가운데에 있는 에스팔리옹 마을에서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로(Lot) 강을 따라 두 번 장이 선다.

특히, 에스팔리옹 마르셰(Marché à Espalion)는 프랑스와 유럽 전역에서 유명한 재래시장이다. 피레네 산맥이 자랑하는 마늘, 양파를 비롯해 다양한 육가공 샤튀테리가 지역을 대표하여 가판에 놓여 있다.

재래시장답게 가판에서 팔고 있는 먹거리를 즐기는 재미가 쏠쏠하고 맛은 덤이다. 또 이색적인 풍경은 농사일에 편한 몸뻬 바지가 관광객들에 인기가 높다.

에스팔리옹 사람들의 친절함은 시골 인심을 느끼게 한다.

잠시 한눈을 팔고 시장을 두리번거리고 있으면 지나가던 에스팔리옹 할미의 피레네 지방 사투리를 뒤집어쓰게 되는데 수더분하기까지 한 정을 느낄 수 있다.

에스팔리옹에서는 ‘잠수부’라는 뜻을 가진 ‘스카퐁팔리에’라는 단어를 알아두면 좋다. 세계 최초의 잠수부가 이 마을 출신이라는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스카퐁팔리에를 모르면 마을 사람들로부터 끊임없이 잠수부의 역사에 대한 강의를 듣게 되니 아는 척하는 것이 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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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팔리옹 마르셰(에스팔리옹 시장) 화요일과 금요일 오전 아홉시에 장이 선다. 화요일은 지역 특산품이 주를 이루는 작은 장이 선다. 금요일 장은 재래시장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폐장은 낮 열두시.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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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레네 산맥의 땅이 품은 자색 마늘


에스팔리옹 장터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상품은 카도로(Cadours) 마을의 자색마늘(L’Ail violet)이다. 자색마늘은 피레네의 땅을 가장 잘 표현한 작물로 씨알도 크거니와 알싸한 향기는 어느 곳의 마늘에도 뒤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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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피레네 카도르산 자색 마늘(L’AiL violet de Cadours). 카도르는 유럽 최고 품질의 마늘 생산지로 유명하다. 프랑스의 지리적 표시제 AOC를 취득했다.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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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피레네 카도르산 자색 마늘(L’AiL violet de Cadours). 카도르는 유럽 최고 품질의 마늘 생산지로 유명하다. 프랑스의 지리적 표시제 AOC를 취득했다.

자색 마늘은 허기를 채울 수 있는 향신료에 비유할 수 있다. ‘밀당’이 한참인 연인들 같은 알싸함과 눈빛으로만 대화가 가능한 오래된 연인들의 편안함을 모두 가지고 있어서이다. 익숙하지만 지루하지 않은…

마늘 가판 옆에는 프랑스인들이 가장 아끼는 채소인 조그만 적양파 샬롯(Shallot)이 있다. 한국인의 체취가 마늘과 고추에서 온다면 프랑스인의 체취는 타임과 샬롯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알싸한 마늘향과 들큼한 양파향은 이곳 음식의 밑간을 짐작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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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색 마늘과 적양파 샬롯. 거의 모든 음식에 들어가는 마늘과 양파는 소스나 육즙의 보디감을 결정한다. 알알한 마늘은 풀 보디, 들큰한 양파는 라이트 보디의 소스를 만든다. 손님을 배려하는 식당에서는 테이블에 놓인 와인에 따라 마늘과 양파의 비율을 달리해 바디감의 섬세한 마리아주를 맞춘다.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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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롱식 크레페 파스 카드(Pascades)


피레네 산맥의 밀가루와 계란으로 만드는 전병 파스 카드는 에스팔리옹 특산품이자 백미 먹거리다.

아베롱의 크레프(les crêpe de l’Aveyon) 혹은, 아베롱식 파스카드(Les Pascades averonnaises)라고 부르며, 파리지엥에게는 피레네의 향수를 한껏 느끼게 해준다고 한다.

까실까실한 식감으로 강원도 절로 생각난다. 맛 또한 제법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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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카드는 피레네 산맥의 땅이 선사하는 별미다.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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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레네의 식사는 땅의 향기가 가득하다. 능선의 볕을 머금은 버섯과 아스파라거스가 주는 담백함이 골짜기의 사람들 손에서 즐거운 리듬으로 풀이된다.

피레네의 아스파라거스는 굵기가 상당해 겉은 아삭하면서도 속은 부드러워 조리하기 안성맞춤이다. 특히 피레네의 흰색 아스파라거스는 소고기 맛이 난다.

시장은 땅과 삶을 이어주는 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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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팔리옹 언덕 위의 아이들. 시장은 농부 아버지와 요리사 어머니가 만나 삶을 잉태하는 공간이다.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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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 살아가는 일은 농부와 요리사가 만나고, 땅과 삶이 쉴 새 없이 교차하는 이야기로 잉태된다.

샤퀴테리(Charcuterie, 고기가게), 브로셔리(Boulangerie, 빵가게), 푸아소너리(Poissonnerie, 생선가게)에서는 목청 높여 호객을 하고, 장바구니에는 땅과 바다가 담겨 주방으로 향한다.

아무렇지도 않은 그들의 이야기가 모여 역사가 되고 문화가 만들어진다. 더욱이 요리사에게는 이런 시장이 언어를 배우는 학교다.

재료는 낱말이고, 레시피는 문장이다. 그들은 길어 올린 문장들을 역어 식탁 위에 글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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