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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이시바 시게루 “日, 한국 납득할 때까지 위안부 사죄해야 마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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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아베’ 이시바 시게루 前자민당 간사장 인터뷰

《 ‘아베 1강(强)’ 체제하의 일본 자민당에서 거의 유일하게 반(反)아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있다. ‘포스트 아베’로 꼽히는 이시바 시게루(石破茂·60) 전 지방창생상은 이달 3일 헌법기념일을 기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밝힌 개헌구상에 대해서도 정계에서 가장 먼저 반대 의견을 냈다. “자민당에는 10년간 준비해 2012년에 내놓은 초안이 있다. 여기서부터 출발해 당내에서 하나의 안을 정리하고 국민도 설득해야 한다. 졸속으로는 안 된다.” 아베 개헌안은 현행 헌법 9조 1항(전쟁 포기)과 2항(군대 보유 금지)을 그대로 둔 채 3항에 자위대의 존재를 명기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에 대해 그는 “2항에서 군대 보유를 금지한다고 하면서 3항에서 자위대의 존재를 명기한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이시바 의원을 19일 그의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만났다. 》

동아일보

이시바 시게루 전 지방창생상은 일본 정계에서도 논리정연한 정책통으로 꼽힌다. 과거 ‘네오콘’이라 불릴 정도로 일본의 군비 강화를 주장하면서도 대아시아 외교와 과거사 문제에는 전향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외상과 함께 ‘포스트 아베’ 주자로 꼽히는 그는 최근 부쩍 ‘아베 1강’ 체제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가 19일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2012년 자민당 초안은 전문에서 일왕을 ‘국가원수’로 규정하는 등 너무 보수적이라는 지적이 많은데….

“국가원수 안에 대해서는 나도 반대한다. 지금의 덴노(일왕)도 절대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것까지 포함해 논의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아베 총리가 1항, 2항을 그대로 두고 3항을 추가하겠다는 것은 연립여당인 공명당의 반대를 뛰어넘기 위한 궁여지책이다. 명색이 헌법인데, 논리적 정합성은 갖춰야 하지 않나. 그는 ‘자신의 손으로 개헌한다’는 생각에 너무 빠져 있다.”

―사실 최근의 아베 총리는 너무 무리가 많고 궤변이 두드러진다. 모리토모(森友) 학원 부당 지원 논란에 이어 가케(加計)학원 수의학과 신설 지원 논란 등 본인이 관련된 스캔들이 연달아 터지는 탓인지….

“그를 대표로 선택한 자민당 사람들은 총리가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할 책임이 있다. 지금은 아무도 ‘이상하다’거나 ‘잘못됐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이건 심각한 문제다.”

과거 자민당은 내부에 정책과 입장이 다른 파벌들이 있어 견제가 이뤄지고 정책 논쟁이 활발했다. 자민당 1당 체제라 해도 파벌 간에 정권 교체가 이뤄지면서 물갈이도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의 자민당은 아베 찬성 일색으로 이견이 나오지 않는 폐쇄적 분위기가 강하다. 여기에 더해 관료사회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휘어잡고 있다. 이 현상에 대해서는 일부 언론에서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개헌과 관련해 한국에선 일본이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가려 한다는 우려가 크다.

“일본이 전쟁 가능한 국가로 가려면 태평양전쟁에 대한 철두철미한 반성이 전제돼야 한다.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1945년 히로시마 원폭과 패전…. 200만 명이 희생됐다. 왜 그 전쟁을 시작했을까. 왜 도중에 그만두지 못했나. 제대로 검증하고 반성해야 한다. 당시 정부, 육해군 수장들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분위기에 휩쓸려 전쟁에 돌입했다. 당시 언론을 비롯해 누구도 반대하지 않은 것도 큰 죄다.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를 하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인가. 우익들의 공격이 심하던데….

“젊었을 때는 멋모르고 참배했다. 그런데 15년 전쯤 야스쿠니신사의 진짜 뜻을 알고부터는 못 가겠더라. 국민을 속이고 덴노도 속이고 전쟁을 강행했던 A급 전범들의 분사가 이뤄지지 않는 한 야스쿠니는 갈 수 없다. 덴노가 참배할 수 있게 되면 그때 가려고 한다.”

히로히토(裕仁) 일왕은 1975년 11월까지 야스쿠니신사를 8번 참배했으나 A급 전범들이 합사된 1978년 이후에는 참배하지 않았다. 1989년 즉위한 아키히토(明仁) 일왕도 한 번도 참배하지 않았다.

―일본회의 등 우익세력들은 패전을 인정하지 않고 전전(戰前)으로 회귀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강하다. 현재 나타나는 역사수정주의적 성향들도 이 기반 위에 있다. 같은 보수라 해도 이시바 의원은 이런 점에서 다른 것 같다.

“난 생각이 다르다. 일본은 패전에 대한 철저한 반성 위에 독립주권국가, 민주국가로서 길을 찾아 나가야 한다고 본다.”

―위안부 갈등 등으로 한일 관계가 어렵다.

“참 어려운 문제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내에도 여러 의견이 있지만 인간의 존엄, 특히 여성의 존엄을 침해했다는 점에 있어서는 안 될 일이며 사죄해야 마땅하다. 다만 여러 차례 역대 총리, 일왕까지 사죄의 뜻을 밝혔음에도 한국에서 수용되지 않는 것에 대해선 좌절감도 크다. 그럼에도 납득을 얻을 때까지 계속 사죄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는 한일병합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일본에서는 ‘당시 국제법상으로 위법이 아니었다’고 주장하지만, ‘위법이 아니었으니 됐다. 이상!’ 하고 끝낼 문제는 아니다. 나라를 잃는다는 것은 그 국가의 전통과 역사, 언어, 문화를 모두 잃는다는 뜻이고 그 나라 국민들의 자존심에 심한 상처를 주는 일이다. 죄송한 일 아닌가. 그런데 내가 이런 얘기 하면 즉각 ‘이시바는 한국 편이냐’는 공격이 들어온다(웃음).”

―한국에서는 일본 정치권이 북한의 미사일 위협과 관련한 위기의식을 너무 부채질한다는 비판이 많다.

“한미일이 철저한 공조로 대처해야 하지만 나라별로 북한 미사일에 대해 느끼는 위협도는 다른 것 같다. 당장 미국 본토에 미사일이 도달할 정도는 아니고 북한이 한국에 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도처에 미군기지를 가진 일본은 발등의 불처럼 느낀다. 각자 느끼는 위험의 정도가 다르니 반응도 다르다. 김정은의 가장 무서운 점은 그가 뭘 할지 모른다는 점이다. 형인 김정남도 죽이는 포악한 정권 아닌가. 다만 지금 아베 정권처럼 ‘북한 위협이 심각하다. 그러니 아베 정권을 지지해 달라’고 이용하는 것은 문제다. 대비는 조용히, 착실하게 진행하면 된다.”

―지난해 8월 개각에서 “아베 정권이 10년, 20년 이어지지는 않는다. 누군가가 그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며 농림수산상 제안을 뿌리치고 당으로 복귀했다. 무엇을 준비하고 있나.

“국민에게 진실을 말하는 게 정치라고 생각한다. 지방이 중앙에 의존하지 않고 자립할 수 있어야 하고, 국가는 스스로 방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납득시키고, 고령사회에서 소비세는 더 낼 각오를 해야 한다고 설득하고….”

―인기와는 거리가 먼 얘기들이다.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걸 말하는 게 정치다. 당대에는 인기에 영합하고 중요한 숙제들은 다음 세대로 넘기는 것은 올바른 정치가 아니다.”

‘군사 오타쿠(마니아)’란 별명이 있을 정도로 군사안보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는 그는 최근 지방창생상 2년의 경험을 살린 ‘일본열도 창생(創生)론―지방은 국가의 희망’이란 저서를 펴냈다. 현재 일본의 인구 문제야말로 ‘유사(有事) 상황’이라고 규정하고 지방을 살리는 것만이 일본의 미래를 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저서는 ‘포스트 아베’를 노린 정치적 메시지인가.

“별 관계 없다. 지금의 출산율이 계속되면 200년 뒤 일본 인구는 1400만 명 정도 남는다. 국민이 사라지면 국가는 존립할 수 없다. 어떤 안보 문제보다 심각하지 않은가. 책에서도 소개했지만 작은 마을들에서 일본의 희망이 만들어지고 있다. 산속의 작은 지자체지만 합계출산율이 2.2를 넘은 오카야마(岡山)의 마을, 섬마을 유학을 활성화해 일본 전역에서 아이들이 이주해 가는 시마네(島根) 현 오키노시마(隱岐の島)…. 이런 지역의 작은 노력들이 일본을 소생시킬 수 있다.”

그는 다음 일정으로 시간에 쫓기면서도 “일본이 미국만이 아니라 한국, 중국 등 이웃 국가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 한일 간에 국민끼리 서로 존경하고 신뢰할 수 있는 날이 오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시바 의원은 2012년 9월 자민당 총재 선거 당시 당원을 대상으로 한 1차 투표에서 아베 후보를 누르고 1위를 했으나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2차 투표에서 고배를 마셨다. 당시 이시바 의원을 지지했던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현 도쿄도지사는 이후 오랜 기간 아베 정권에서 찬밥을 먹다가 지난해 7월 당 지원 없이 도지사 선거에 출마해 화려하게 부활한 바 있다.

자치상 겸 국가공안위원장을 지낸 이시바 지로(石破二朗)의 장남으로 부친을 여읜 뒤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의 권유로 1986년 정계에 입문했다. 결혼식에서 다나카 전 총리가 아버지 역할을 대신했을 정도로 친밀한 관계였고 다나카의 ‘마지막 수제자’라 불렸다. 어린 시절부터 호위함과 잠수함 등 플라스틱 모형 제작에 빠져 지냈고 애니메이션과 철도 마니아로도 유명하다. 실제로 그의 사무실에도 플라스틱 전투기 모형이 장식품으로 놓여 있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이시바 시게루는…

▽1957년 돗토리 현 출생
▽1979년 게이오대 법학부 졸업
▽1979∼1983년 미쓰이은행 (현 미쓰이스미토모은행) 근무
▽1986년 당시 전국 최연소(29세) 중의원 당선
▽2002년 방위청 장관
▽2007년 방위상
▽2008년 농림수산상
▽2009년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2012년 자민당 간사장
▽2014년 지방창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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