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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짜장면으로 꽃피운 40년 세월, 이제는 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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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SC 창간 10돌 기념호]

2007년 ESC 등장 이연복 요리사···아재 식도락가 노중훈, 페이스트리 셰프 성현아와 야식토크

지난 10년, 요리사 스타 등극

중식 요리사 이연복 대표적

식품 아닌 의류 광고까지 찍어

여러 세대 공감 능력이 매력


한겨레

왼쪽부터 이연복, 성현아, 노중훈, 박미향. 홍종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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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쿡방’ ‘먹방’ ‘치느님’ ‘면스플레인’. 10년 전만 해도 세상에 없던 말이다. 음식업계야말로 지난 10년간 신조어 탄생의 격전지였다. 요리사들은 ‘스타’라는 이름을 달고 방송에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유명 배우 못지않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스타 셰프 최현석과 강레오의 ‘요리사 논쟁’은 실시간 인터넷 세상을 달구기도 했다.

그 중심에 중식 요리사 이연복(58)씨가 있다. 포털의 실시간 검색 순위에 여러 번 오른 그는 이제 유명인사다. 10년 전 ESC의 ‘칼의 노래’(2007년 5월31일치)에 등장할 때만 해도 늦깎이 무명배우에 가까웠다. 열세 살, 중식 요리사의 길에 들어선 그에게는 추억 가득한 까만 춘장 냄새가 난다. 지난 7일 밤 9시, 그를 만나 ESC 10돌 축하 야식토크를 했다. 장소는 중식포차인 ‘건일배’. 여행작가 겸 아재 식도락가인 노중훈씨, 페이스트리 셰프 성현아씨가 야식토크에 동참했다.

이연복(이하 이)‘ 성현아’씨가 온다고 해서 영화배우인 줄 알았어요.

성현아(이하 성) 제가 낫죠.(웃음) <냉장고를 부탁해>(이하 냉부), 잘 보고 있어요.

심리학을 전공한 성 셰프는 외국계 항공사에서 근무하다가 20대 후반 뜻한 바가 있어 미국 요리학교 시아이에이(CIA)에서 수학했다. 4년 뒤 귀국해 디저트 카페 ‘소나’를 열었다.

(성씨의 경력을 듣고) ‘디저트의 심리’를 잘 아시겠네요. (아재 개그다)

네, 잘 알아요.(웃음) 방송과 요리일 하기 힘드시죠?

노중훈(이하 노) 쉬는 날은 촬영하신다고요. 사부님의 몸은 ‘한 번도 쉰 적이 없는 몸’이군요.

노씨는 요리사 이씨를 ‘사부’라고 부른다. 소림사가 연상되는 중식업계에서는 ‘셰프’라는 말을 안 쓴다. 대신 ‘스승’을 의미하는 ‘사부’로 통한다. 이씨가 말을 떼기도 전에 건일배의 신메뉴가 나왔다. 돼지 귀를 먹기 좋게 잘라 간장소스에 무친 안주였다.

방송을 하면 주방을 떠난 것만으로 약간 힐링 되는 느낌입니다. <강호의 대결 중화대반점>, <쿡가대표>, <냉부>는 촬영이 12시간이 넘기도 해 힘들지만 재밌어요.

<냉부>처럼 제한 시간이 있고 경쟁시키는 방송은 힘들죠. 지면 사부님에게도 (나쁜) 영향 가잖아요.

맛을 심사하고 평하는 방송은 차라리 나아요. 승부에서 지면 받아들이면 돼요. 음식 예능이 억울할 때가 있죠. 맛보다는 감성을 건드려 평하니까.

2007년 이에스시에 사부님이 소개되었을 때는 방송 모르셨죠?

<생방송 투데이> 같은 정보프로그램에 나갔지만 지금과는 달랐지요. 요리사가 아니라 ‘음식’이 주인공이었어요. 이제는 말을 재미있게 하는 요리사들이 섭외 1순위예요.

사부님이 방송에 자주 나오는 이유가 있군요. 말을 구수하게 하시잖아요. 결정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방송이 뭔가요?

<냉부>죠. 시청률 확 오르면서 알려졌죠. 한 달에 검색어 1위, 한두 번이 아니에요. 오죽하면 농담 삼아 검색어 시상식 없나 했어요.(웃음)

10년 전을 생각하면 요리사가 스타가 될 거라는 걸 누가 상상했겠어요.

디저트 카페도 10년 전에는 없었잖아요. 돈 주고 먹는 음식이 아니었죠.

시간이란 게 유행을 만들잖아요. 중식이나 디저트, 요즘 뭐가 인기예요?

요리처럼 코스로 나오는 ‘플레이팅 디저트’를 만드는데 그게 유행이죠.

코스로 나간다고요? 놀라운데요. 중식은 ‘진진’, ‘건일배’ 같은 중식포차가 인기죠.

중식의 변화가 크군요. 예전(1970년대)에는 간단한 안주류는 없었죠. 고급 재료로 만든 수십가지 요리가 나왔다면서요.

메뉴도 뭔가가 꽉 짜여 있었지만 선후배 군기도 셌어요. 선배가 간장 놓고 “이거 식초다”라고 하면 “식초구나” 해야 했죠, “이거 간장인데” 했다가는 난리가 나요.

1970년대는 손님에 따라 ‘야당집’, ‘여당집’이라고 불렀다면서요. 김대중 전 대통령 등이 자주 가는 중국집은 야당중국집인 거죠. 17살에 들어간 사보이호텔의 ‘호화대반점’은 여당집인가요?(웃음)

그런 것보다 처음 생긴 호텔 중식당이라서 매우 유명했어요.

<사부의 요리> 읽어보니 당시 거의 ‘의리소년’이셨던데요.

철이 없었지요. 의리만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하지만 혼자 의리 있으면 뭐 해요. 배신 많이 당하고. 혼자 짊어지고 책임질 때가 많았어요. 그러다 보니 취직도 안 됐어요. 중국집 주인 눈에 사고뭉치였던 거지.

힘드셨겠네요. 그래서 일본 가서 일하시고, 오신 후에는 창업하셨군요.

재밌는 얘기 해줄까요? 그때 박찬일 사는 집에 들어가게 됐어요. 요리사 박찬일이 이탈리아 가면서 살던 연희동 집을 내놨는데 제가 전세로 들어간 거죠. 그런데 잔금이 모자랐어요. 너무 어려웠으니까. 곡금초(동탄 ‘상해루’ 주인) 형님이 1000만원 빌려주고 남은 잔금은 이자부터 내겠다 하고 했어요. 그 인연으로 박찬일과는 지금도 가족 같죠. 2005년 압구정 ‘목란’ 시절이네요.

그러고 보니 성공이라고 할 만한 시간이 지난 10년 안팎이군요.

인생, 많이 달라지셨나요?

저는 매일 슈퍼마켓에 진열된 라면 봉지에서 사부님을 만나요.(웃음)

이연복씨는 3년째 한 라면회사의 광고모델이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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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두고 광고모델 경쟁이 좀 있었지요. 뒷돈 더 얹어주겠다는 데도 있었죠. 하지만 절대로 안 될 말이죠.

홈쇼핑에서 칠리새우 등을 파셨잖아요.

이제는 안 할 생각입니다. 홈쇼핑도 황금시간이 있어요. 저는 판매가 잘되니깐 매출이 잘 안 나오는 시간에 넣는 거예요. 청문회, 야구 결승전 하는 시간 말이죠. 최근에는 인기 많은 유명 셰프 홈쇼핑 방송 시간과 맞붙이기도 했어요. 그런 경쟁이 싫어요.

그래도, 사부님 판매 기록을 깰 사람이 없다던데요.

처음 동파육, 칠리새우를 팔았는데 16분 만에 완판됐어요. 연속 16회 매진된 적도 있고.

광고모델이 지난 10년, 큰 변화네요.

식품이 아니라 의류 광고 찍었을 때 정말 뿌듯했어요. 톱스타만 사진이 걸린다는 명동에 제 사진도 걸리고. 요리사의 위상이 그만큼 올라갔다는 거니까요.

파란만장한 인생 스토리가 있고, 중식은 우리들의 역사잖아요. 졸업식, 입학식에 먹은 짜장면 추억이 다 있잖아요. 사부님은 상징 같은 거죠. 솔직한 면도 대중을 사로잡은 듯해요.

냄새 못 맡는 거 얘기군요. 26살부터예요. 정말 숨기고 싶었어요. 요리사가 냄새를 못 맡는다는 게 말이 돼요? 어느 날 기자가 동석한 술자리에서 그 얘기를 농담 삼아 했어요. 다음날인가, 인터넷에 뜨는 겁니다. 차라리 내가 빨리 터트리는 게 낫겠다 했어요.

유명해지니 겪은 일이군요. 또 어떤 일이?

손님 입장에서 섭섭할 일이 생길 수도 있어요. 그러면 거칠게 “이연복 나오라고 해” 하는 거예요.

성현아 셰프는요? 이에스시 지면에 나와 유명해지셨죠.(웃음)

실수를 이해해주는 손님이 있고, 아닌 이가 있죠. 한번은 너무 놀란 적 있어요. 한 음식평론가가 왔는데 서비스가 마음에 안 든다면서 큰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음식문화가 지난 10년간 급성장하는 바람에 제대로 정립이 안 된 부분이 많아요. 과정이라고 봐야죠. 음식을 만드는 이나 먹는 이나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문화가 필요합니다.

유학할 때 제일 먹고 싶은 음식이 짜장면이었어요. ‘짜장 디저트’ 개발해볼까도 생각했죠.

춘장 잔뜩 바른 디저트요?(웃음) 요즘 대만의 디저트 펑리쑤도 인기던데. 대만 하니 최근 <먹거리 엑스(X)파일>의 ‘대만 카스텔라’ 사건이 생각나요.

제 이름이 떠서 깜짝 놀랐어요. ‘이연복은 튀길 때 식용유 쓰는데 카스텔라는 왜 안 되냐.’ 관련 없는 나를 말이죠. 곧 저와 레오 강이 <먹거리 엑스파일> 후속 방송을 해요. ‘착한 농부’를 찾아 떠나는 내용입니다.

앞으로 10년은 어떤 계획이신가요?

10년은 모르겠고요, 곧 만두집 ‘교자란’을 열어요. 새우만두, 오징어만두, 매콤한 사천만두 등이 메뉴죠.

일동 맛있겠다.

배가 두둑하게 불러올 때쯤 이씨는 어린아이처럼 휴대폰을 열어 함께 찍은 연예인들을 보여줬다. ‘갓세븐’ ‘씨엔블루’ ‘헬로비너스’ 같은 발랄한 청춘도 있고 이덕화, 싸이 같은 중후한 이들도 있다. 누구와도 어깨동무할 수 있는 여유와 넉넉함이 그를 ‘사부’라 부르게 한다. 그가 말을 남겼다. “김중혁이 이에스시에 잘해줘서, 엄청 고마웠지. 사진도 잘 나왔잖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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