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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단독]14세기 고려불화 ‘관음보살내영도’ 최초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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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대 교수 日서 돌아온 그림 정밀 감정… 6월 논문 발표

동아일보

최근 일본에서 한국으로 넘어온 고려 불화 ‘관음보살내영도’. 고려시대 내영도 가운데 아미타불 대신 관음보살을 그린 불화는 처음이다. 금가루로 칠한 관음보살의 보관과 목걸이, 팔찌, 옷자락이 더없이 화려하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14세기 초반 고려시대 불화(佛畵)인 ‘관음보살내영도(觀音菩薩來迎圖)’가 최초로 발견됐다. 아미타불(阿彌陀佛) 대신 관음보살이 등장하는 내영도는 지금껏 알려진 적이 없는 새로운 형식이다. 이 작품은 일본으로 반출됐다가 최근 국내 한 사립박물관장이 올 2월 우연히 구입했다. 불화를 감상한 학자들은 세계 불교 미술사를 새로 써야 하는 획기적인 발견이라고 평가한다.

○ 왜 관음보살만 그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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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미술 권위자로 문화재위원을 지낸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77·한국미술사연구소장·사진)는 “해당 고려불화를 정밀 감정한 결과 1300∼1319년경 그려진 관음보살내영도로 확인됐다”고 21일 밝혔다. 그는 “고려시대 내영도는 우리나라와 일본, 유럽 등에 총 30점가량 남아 있는데 아미타불이 아닌 관음보살만 등장하는 그림은 이것이 유일하다”고 덧붙였다. 통상 관음보살의 보관(寶冠)에 그리는 화불(化佛)이 연꽃 위에 표현된 것도 전례가 없다는 설명이다.

내영도란 서방 정토(淨土)에 사는 아미타불이 죽은 사람을 극락으로 맞아들이는 장면을 묘사한 불화다. 내영도는 아미타불이 혼자 등장하거나 관음보살, 대세지보살과 함께 나타나는 삼존도(三尊圖) 혹은 25보살이 함께 서는 형식이 일반적이다. 관음보살만 홀로 그린 내영도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문 명예교수는 “6세기 삼국시대에 시작된 관음신앙이 고려시대에도 유행하면서 아미타불 대신 관음보살만 독존(獨尊)으로 그려졌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 지상으로 내려온 ‘금빛 관음’


금실로 수놓은 화려한 천의(天衣) 자락을 휘날리며 관음보살이 구름을 타고 내려온다. 천의를 휘감은 투명한 비단도 바람에 나풀거린다. 극락으로 들어가길 갈구하는 중생의 염원이 전해졌을까. 아직 지상에 닿지도 않았는데 관음의 오른손은 이미 죽은 이를 향해 손짓하고 있다. 부드러운 표정으로 사자(死者)를 맞아들이는 관음이 속삭이는 듯하다. “그동안 고생 많았네. 이제 편히 쉬시게.”

이번에 확인된 관음보살내영도는 가로 34.5cm, 세로 83cm 크기의 비단에 관음이 구름(飛雲)을 타고 극락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는 장면을 극적으로 표현했다. 마치 귀부인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얼굴의 관음은 오른손을 내밀어 왕생자를 인도하는 동시에 왼손으로 붉은색 연꽃을 받쳐 들고 있다. 연꽃 위로 앙증맞게 그려진 아미타 화불을 특히 주목할 만하다. 김창균 동국대 교수(불화 전공)는 “고려불화 가운데 보관이 아닌 연꽃 위에 화불이 그려진 전례가 없다”며 “매우 특이한 도상(圖像)”이라고 말했다.

관음이 머리에 쓴 보관을 비롯해 목걸이, 팔찌, 옷자락 등을 화려하게 물들인 금빛도 보는 이의 눈길을 잡아끈다. 특히 천의를 장식하고 있는 세밀한 식물무늬는 금 선묘(線描)의 진수를 보여준다. 관음의 옷자락에 연꽃과 당초(唐草), 보상화, 모란 잎의 4가지 무늬가 한꺼번에 그려진 것이 독특하다. 문 명예교수는 “하나의 옷자락에 4가지 식물무늬를 함께 묘사한 고려불화는 처음 본다”고 말했다.

○ 일본서 고국으로 돌아온 관음

관음보살내영도의 제작 시기는 치밀한 금 선묘와 전체적으로 역동적인 도상, 독특한 ‘모란 잎’ 표현기법을 감안할 때 14세기 초로 추정된다. 고려불화는 말기로 갈수록 아미타불의 동적인 느낌이 점차 사라지고 정제된 도상으로 바뀐다. 이 그림에서는 관음이 딛고 있는 구름이 비스듬히 날고 있는 데다 앞부분이 용머리 형상으로 표현돼 역동성을 극대화했다. 문 명예교수는 “옷자락에 그려진 모란 잎이 세 갈래로 갈라진 뫼산(山) 형태에 줄기가 좌우 대칭을 이루는데, 이는 1300년 전후 고려불화에서 주로 나타나는 표현기법”이라고 설명했다.

관음보살내영도는 비단 테두리를 일본식으로 배접한 흔적이 남아 있어 과거 어떤 시점에 일본으로 유출됐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화기(畵記)가 없어 유출 시점을 알 순 없지만 고려불화들은 고려 말 왜구들에 의해 약탈됐거나 일제강점기 때 빼돌려진 게 대부분이다.

문 명예교수는 관음보살내영도의 역사적 의미를 분석한 논문을 다음 달 15일 학술지(강좌미술사 48호)에 게재할 예정이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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