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 2차 9년 낙방… 34세 檢 첫 발 / “사람에 충성 안 해” 대표적 특수통 / ‘국정원 댓글’ 소신 수사하다 좌천 / 박영수가 최순실 수사팀장에 발탁
10번의 도전 끝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그는 검찰의 대표적 ‘특수통’으로 활약하다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로 좌천됐지만 원칙과 소신을 지킨 끝에 중앙지검장에 오르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윤 지검장은 이날 소감을 묻는 기자들 질문에 스스로도 전혀 예상치 못한 듯 “갑자기 이렇게 좀 너무 벅찬 직책을 맡게 됐다. 깊이 고민을 좀 하겠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승진 임명된 윤석열 대전 고검 검사가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특별검사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이재문기자 |
윤 지검장은 34세인 1994년에야 늦깎이로 검찰에 첫발을 내디뎠다. 서울대 법대 4학년 때 사법시험 1차에 합격했으나 이후 9년간 2차에서 줄줄이 낙방했다. 그러다 보니 검찰 내 동기들과도 많게는 9살이나 차이가 난다. 이 때문인지 한때 검찰을 떠나 1년간 변호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탁월한 수사력과 추진력으로 옛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연구관, 대검 범죄정보2담당관, 중수 1·2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까지 역임하는 등 요직을 거쳤다. 노무현정부 시절 대통령의 ‘오른팔’ 안희정 현 충남지사, ‘후원자’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을 각각 구속하는 등 현 정부와도 악연이 없지 않다.
‘잘 나갔던’ 그가 돌연 좌절을 겪은 건 박근혜정부 초기인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 특별수사팀장을 맡으면서다. 그는 수사 방향을 놓고 이견이 있던 조영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에게 보고하지 않고 국정원 직원들을 체포했다가 ‘항명 파동’의 중심에 섰다.
같은 해 10월 국정감사에서는 “수사 강도를 낮추기 위한 검사장의 외압이 있었다”는 폭탄발언과 함께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정직 1개월 징계를 받고 수사에서 배제된 윤 지검장은 대구·대전 등 수사권 없는 지방 고등검찰청을 전전했다. 이른바 ‘좌천’이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수사를 맡은 박영수 특별검사(오른쪽)가 수사팀장인 윤석열 검사와 만나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
그런 윤 지검장에게 손을 내민 사람은 과거 대검 중수부에서 함께 근무한 박영수 특별검사였다. 지난해 12월 임명된 박 특검은 특검팀 ‘영입 1호’ 파견검사로 대전고검에 있던 윤 지검장을 지목했다. 그는 특검팀 합류 당시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웃으며 “그냥 물병 하나, 건빵 한 봉지 들고 사막에 가는 기분”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당시 윤 지검장은 “정권 초기에 칼을 들어 대통령에게 상처를 낸 사람이 같은 대상을 향해 또 칼을 드는 건 좋지 않다”고 밝혔으나 이후 발군의 수사력을 발휘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이란 성과를 냈다.
장혜진 기자 jangh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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