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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특파원 리포트] 사드의 진짜 고비, 지금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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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이길성 베이징 특파원


"민심의 바다는 배를 뒤엎는다."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을 지낸 탕자쉬안은 15일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에 참가한 한국 대표단을 향해 그렇게 말했다. 베이징 조어대 오찬에서였다. 그의 발언은 중국 고전 정관정요(貞觀政要)의 '민심의 바다는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엎기도 한다'에서 따온 것이다. 사드 때문에 성난 중국 민심이 한·중 우호를 뒤엎을 수 있다는 협박성 경고였다. 한국 대표단은 한 시간 동안 그의 강변을 들은 뒤에야 숟가락을 들 수 있었다.

그 전날 밤 시진핑 국가주석은 박병석 한국대표단장과 예정에 없던 면담을 했다. 10분도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그는 "한·중 관계는 고도로 중시돼야 한다"며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강한 호감을 내비쳤다. 시 주석이 미소 지으며 박 단장을 맞는 사진도 공개됐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중국 외교 원로가 '민심의 바다' 운운하며 압박을 한 것이다. 박 단장은 "탕자쉬안이 작심하고 나왔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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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일로 포럼의 우리 정부 대표단 단장인 더불어민주당 박병석 의원이 15일 주중대사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어제 늦은 저녁에 시진핑 주석을 만났다"고 전했다. 박 단장은 지난 14일 일대일로 정상포럼 환영 만찬에 앞서 중국 측으로부터 시 주석과 면담을 통보받았고 환영 만찬이 끝난 뒤 10여 분 정도 인민대회당에서 별도로 면담했다. 사진은 시 주석과 만난 박 단장 모습. /연합뉴스


시진핑의 미소에 이은 탕자쉬안의 경고는 한·중 간 사드 이슈가 본질 면에선 달라진 게 없다는 점을 일깨운다. 중국 정부는 작년 7월 한·미의 사드 배치 결정 이후 노골적인 보복을 하면서도 한 번도 이를 인정한 적이 없다. '중국인들의 자연스러운 민의'를 앞세워왔다. 중국은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중국의 반(反)사드 민심에 한국 민심이 동조하길 기대했을지 모르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사드를 비판하는 여론보다 한국인들의 안보 불안감이 깊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그런 한국 민심을 보복으로 흔들려다 한국민 여론조사에서 중국이 북한보다 아래에 놓이고, 시 주석에 대한 반감이 치솟는 역풍을 맞았다.

한국 새 정부와의 협상에서도 중국은 자국 민심을 앞세울 게 틀림없다. 그런 중국을 상대로 한 문재인 정권의 사드 해법 찾기는 "한·미 동맹의 바탕 위에 실질적인 한·중 전략 관계 복원이라는 틀 속에서 진행될 것"이라고 박 단장은 말했다. 미·중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중국을 오래 상대해 본 전문가들은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며 "한·중 관계에 몇 차례 고비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벌써부터 "사드 보복 해빙"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중국 관련주가 들썩거리는 한국은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문 대통령과 새 정부에 대한 시 주석의 호감과 환대는 긍정적 신호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때로는 미소가 채찍보다 무서운 법이다. 시 주석의 웃음, 최근 사드 보복이 느슨해지는 듯한 느낌을 주는 중국 내 분위기는 결국 '사드 철회'를 겨냥한 것이다.

'협상은 발목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한국처럼 체면 때문에 목부터 시작하는 건 순진한 짓이다.' 한 외교관이 전해준 중국의 협상 마인드다. 시 주석은 웃음을 짓고 있지만 사드 보복으로 인한 우리 교민들과 기업의 어려움에 대해 중국은 아무런 실질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시진핑의 미소, 보복의 본류가 아닌 간 보기식 해빙 기류에 한국이 김칫국부터 마신다면, 먼저 약점을 잡히고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것과 같다. 중국 네티즌은 '사드철수(撤走薩德), 이 넉 자(四字)가 아니면 특사도 소용없다'며 기세등등하다. 사드 고비,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이길성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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