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3 (화)

[NEWS&VIEW] 韓美동맹 뒤흔드는 '트럼프의 입'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취임 100일, 한반도 '트럼프 리스크']

"좌충우돌 트럼프, 무모한 김정은… 한반도 불확실성 커졌다"

사드 비용 10억달러 내라는 건 국무·국방부도 모른 돌출 발언

美안보보좌관 "美가 사드 비용 부담"… 한국에 트럼프 발언 해명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현지 시각) 취임 100일을 맞았다. 그가 과거 미국 대통령들과 전혀 다른 스타일로 좌충우돌한 지난 100일은 미국민뿐 아니라 전 세계가 당혹스러운 시기였다.

트럼프는 취임 전 대만 차이잉원 총통과 통화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연일 "좋은 사람"이라고 극찬하고 있다. "친하게 지내겠다"고 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는 스스로 "최악의 관계"라고 할 정도로 멀어졌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폐기를 공언하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중단을 선언해 세계 자유무역 기조를 뒤흔들었고, 미국 내에서는 '반(反)이민' 정책으로 법원·의회와 잇달아 충돌했다.

한국은 지난 100일간 '트럼프 리스크'에서 한발 비켜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과 북한을 압박하는 데 집중했다. 그러나 취임 100일을 코앞에 두고 '사드 비용 10억달러 한국 부담'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발언을 던지면서 한국도 '트럼프 리스크'에 휘말려 들고 있다.

허버트 맥매스터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30일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의 전화 통화에서 주한 미군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비용 부담에 대한 한·미 양국 간 기존 합의 내용을 재확인했다고 청와대가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에 사드 비용을 내라고 통보했다'는 발언을 사실상 정정한 것이다.

맥매스터 보좌관은 이날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언급은 동맹국들의 비용 분담에 대한 미국 국민의 여망을 염두에 두고 일반적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며 "한·미 동맹은 가장 강력한 혈맹이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최우선순위이며, 미국은 한국과 100% 함께할 것"이라고 했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다만 맥매스터 보좌관이 '동맹국의 비용 분담에 대한 미국 국민의 여망'을 언급한 것을 볼 때 트럼프 발언은 내년부터 이뤄질 주한 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우리 측 비용 부담을 높이겠다는 뜻에서 나온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이날 전화 통화는 맥매스터 보좌관의 요청으로 오전 9시부터 35분간 이뤄졌다.

워싱턴 외교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의 사드 비용 발언이 처음 나온 지난 28일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갑자기 7.8원이나 오른 것(원화 약세)은 한국이 외교·안보 문제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북한 김정은의 핵·미사일 도발로 한반도가 불안한 상황에서 미국 대통령의 돌출 발언은 위기를 증폭시킬 수 있다"고 했다. 한국 안보에서 한·미 동맹이 차지하는 비중과 미국 대통령이라는 위치를 감안할 때 트럼프 대통령의 좌충우돌 발언은 우리에게 큰 타격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걱정스러운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국무부와 국방부 등 공식 외교·안보 라인과 조율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워싱턴 외교 소식통은 "취임 100일을 맞아 국무부가 백악관으로 넘겨준 자료에는 사드 비용과 관련한 내용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인터넷 매체 버즈피드도 여러 국방부 관계자를 인용해 "국방부에선 누구도 한국에 보낼 (사드 비용) 청구서를 만들고 있지 않았다"고 했다. 이는 한·미 실무진이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도 트럼프 대통령의 귀를 잡고 있는 '누군가'에 의해 한·미 관계가 출렁거릴 수 있다는 뜻이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백악관의 외교·경제정책이 출렁거린 사례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는 시리아 문제와 관련해 과거 "개입해서 얻을 것이 없다"고 했지만, 아사드 정권이 화학무기를 쓰자 전격적인 미사일 보복 공격을 단행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대해선 취임 전 "시대에 뒤떨어진 쓸모없는(obsolete) 기구"라고 했다가 최근에는 "나토는 국제 평화와 안보를 지키는 방어벽"이라고 말을 바꿨다. 워싱턴포스트 기자 출신인 케이스 B 리치버그 홍콩대 교수는 29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인터뷰에서 트럼프 100일에 대해 "고속도로 한복판을 비틀거리며 걷는 눈먼 주정뱅이를 보는 것 같다"고 했다. 우리 외교 소식통은 "트럼프 행정부가 큰 틀의 외교적 가닥은 어느 정도 잡아가고 있으나 한반도 문제는 김정은의 무모한 도발과 엮이면서 불확실성이 더 커지고 있다"고 했다.

한국의 '트럼프 리스크'는 탄핵 정국이 미국의 새 정부 출범과 겹치면서 미·일 정상처럼 우리 정상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한반도 문제를 '직접' 입력하지 못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으로부터 '한국은 중국의 일부'라는 취지의 얘기를 듣기도 했다. '트럼프 멘토'인 에드윈 퓰너 헤리티지재단 전 회장은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한국의 리더십을 빨리 세우는 것이 트럼프 행정부와 소통하는 데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정녹용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