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8 (목)

생산성 향상 없는 소득주도 성장론은 ‘세금주도 성장론’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재정으로 소득·소비 늘리자는 논리

지속적 성장 이끌어내기엔 한계

“정부, 규제 풀어 민간투자 유도해야

고급 일자리 생기고 불평등도 해소”

포용적 성장론, 세계적으로 주목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현재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 건 소비 부진이다. 올 1분기 경제성장률이 전 분기 대비 0.9% 늘었지만, 소비는 0.4% 증가에 그쳤다. 수출 증가율(1.9%)을 소비가 갉아먹었다. 소비가 부진한 건 가계의 지갑이 얇아져서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은 전년 대비 2.8% 늘며 2년 연속 2%대 성장에 그쳤다. 그런데 소득 증가율은 이보다 낮다. 지난해 2인 이상 전국 가구의 명목소득(평균)은 0.6% 증가하는 데 그쳤다. 사상 최저 수준이다.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1%)을 반영하면 실질소득은 0.4% 줄어든 셈이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소득 정체는 소비 정체로 이어지고 기업 투자 부진, 경제 성장 둔화의 악순환에 빠진다. 19대 대통령선거에서 ‘소득 주도 성장’ 담론이 다시 등장한 이유다. 정체된 가계 소득을 늘려야 소비가 늘고 기업의 투자가 증가해 지속적인 성장도 가능하다는 논리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대표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

문재인 후보는 정부 주도 일자리 창출을 주장했다. ‘공공부문 81만 개 일자리 창출’이 그의 대표 공약이다.

심상정 후보의 방식은 문 후보와는 다소 다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및 복지 향상 등을 통한 ‘불평등 해소’가 주 해법이다. 최저임금 인상도 주장한다.

문제는 이런 공약이 구호에 그친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비용을 마련하고,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마련할지에 대한 청사진이 부족하다. 세금으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포퓰리즘이 앞선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문·심 두 후보의 성장론을 비판하지만 세 후보가 내놓은 성장론 역시 두루뭉술하기는 마찬가지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소득 주도 성장론은 국제노동기구(ILO)가 2010년부터 제기한 논리다. 저성장의 원인을 임금 격차 등 불평등에서 찾았다. 임금을 비용이 아닌 소비의 원천으로 봤다. 미국·일본·독일 등에서 임금 인상을 추진한 것도 이런 논리에 영향을 받았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최저임금 인상을 추진하면서 2015년 의회에서 “1년 내내 일해 받는 임금 1만5000달러(약 1700만원)로 가족을 부양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어디 한번 해보시오”라고 한 연설은 잘 알려져 있다. 박근혜 정부 때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도 소득 주도 성장을 추진했다. 그 방편 중 하나가 가계소득증대 3대 패키지 세제(근로소득 증대세제, 배당소득 증대세제, 기업소득환류세제) 도입이다. 기업이 투자를 덜하거나 임금을 일정 기준보다 덜 올리면 세금을 물리는 제도다. 대기업이 쥐고 있는 부를 가계로 흐르도록 하기 위한 장치였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경환 전 부총리의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은 당시 경기 부진을 관리하기 위한 측면에 치중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문 후보는 정부 지출을 통해 성장 잠재력을 확대하고 중산층 및 저소득층의 가처분소득을 늘려 소비 여력을 만든다는 계획이라 이론적으로는 한 발 더 나갔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 주도로 일자리를 만들고 복지를 늘려 가계에 소득을 쥐여주는 방식이 지속가능하겠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임금을 더 주거나 복지 수준을 늘리려면 결국 경제가 성장해 비용을 충당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 주도 일자리로 성장을 꾀하겠다는 건 국민 세금으로 임시 대책만 세우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중앙일보

성태윤 교수는 “결국 민간이 투자하고 생산성을 향상시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내용이 담겨야 성장모델인데 이를 실현할 구체적인 공약이 보이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규제개혁 및 기업 투자 확대 없이는 일자리도 소득도 늘어날 수 없다고 지적한다. 표학길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소득 주도 성장과 이윤 주도 성장’ 논문을 통해 “(임의로) 실질임금을 올리면 한국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구조에서 수출기업의 이윤이 줄어 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표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투자가 주도하는 성장이 이뤄져야 하는데 투자의 주체인 기업에 대한 얘기가 공약에 없다”며 “규제를 없애 기업이 투자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그렇게 해서 생긴 이윤을 재투자해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도록 독려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양극화 해소 및 중산층 복원은 차기 정부가 이뤄야 할 주요 과제다. 그 해법으로 제시되는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은 이미 전 세계적인 화두다. 고품질 일자리 공급과 기회균등 확대를 위한 복지 확대로 불평등을 완화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자는 의미다. 올 2월 미국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의가 펴낸 ‘대통령 보고서’에서도 포용적 성장을 핵심 주제로 삼았다.

백웅기 한국개발연구원(KDI)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도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양극화를 줄이고 포용적 성장을 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며 “기업이 혁신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하남현·장원석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하남현.장원석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SNS에서 만나는 중앙일보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포스트]

ⓒ중앙일보(http://joongang.co.kr) and JTBC Content Hub Co., Lt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