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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사랑의 세밀함은 놓쳤어도 겹겹의 선택 ‘삶의 울림’ 묵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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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세계일보

용두사미(龍頭蛇尾)가 아니라 오히려 사두용미(蛇頭龍尾)였다.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사진)는 시작은 밋밋한 듯했지만 마음에 큰 울림을 남기며 끝을 맺었다. 두 남녀의 나흘간의 사랑에 초점을 맞췄던 작품은 후반으로 갈수록 시야를 넓혀 인생을 관조했다. 이 뮤지컬은 ‘그 후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대신 ‘그 후로 행복하게 살지 않았지만 행복했다’고 매듭지으며 담담히 삶을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시골마을 주부 프란체스카와 사진 작가 로버트 킨케이드의 운명적 사랑을 담았다. 동명 소설(1992)과 영화(1995)로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프란체스카(옥주현)는 미국 아이오와주에서 무뚝뚝한 남편과 두 아이를 두고 평범하게 사는 주부다. 이 마을에 자유분방한 사진작가 킨케이드(박은태)가 촬영차 찾아와 우연히 프란체스카와 조우한다. 킨케이드는 “불확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에서 이렇게 확실한 감정은 일생에 단 한 번만 오는 겁니다”라며 프란체스카에게 떠나자고 말한다.

그러나 초반에는 ‘일생일대 확실한 감정’이 쉬이 포착되지 않는다. 남녀 사이 세밀하게 흔들리는 감정을 담기에는 무대가 너무 넓었고, 미국 평야지대의 나른한 지루함을 표현하기에는 좁았다. 이들의 사랑에 불륜을 넘어선 설득력을 부여하려면 프란체스카가 견뎌낸 공허함을 보여줘야 하지만 크게 와닿지 않는다. 이 때문에 킨케이드와의 만남도 남녀의 흔한 데이트 정도로 다가온다. 두 사람의 감정이 발전하는 모습도 섬세하게 표현되지 못했다.

인상적인 대목은 후반부다. 노년을 맞은 이들을 비추며 뮤지컬은 인생이란 겹겹의 선택으로 이뤄졌음을 말한다. 만약 킨케이드가 하루 늦게 도착했다면, 그가 프란체스카의 집을 지나쳤다면 어땠을지 묻는다. 삶의 길목에서 내린 선택들이 모여 인생을 이룸을 보여준다. ‘일생에 단 한 번뿐인 감정’을 뒤로하고 각자의 길로 갔다 해서 꼭 비극이 아니라 그 자체가 삶이라고 얘기한다. 이 작품에서는 음악과 무대의 아름다움이 돋보였다. 뮤지컬의 주류인 ‘지르는’ 넘버가 아닌 서정적인 음악은 작품과 잘 어우러졌다. 시간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무대도 아름답다.

송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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