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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트럼프 '무역협정 재검토' 서명…FTA 재협상 현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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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재협상땐 5년간 19兆 손실

트럼프 또 "한·미 FTA 나쁜 합의"

중국·일본은 '당근' 제시하며 선방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재협상이 현실화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100일째를 맞는 29일(현지시각) 한·미 FTA를 비롯해 교역국과 세계무역기구(WTO)와 맺은 모든 무역 협정을 전면 재검토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미 정부가 이번 조사를 통해 그동안 불평등하다고 주장해온 한·미 FTA와 나프타(북미자유무역협정) 등 협정에서 미국에 불리한 부분을 끄집어내 재협상의 근거로 삼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여전히 “진의 파악 중” “공식 통보받은 바 없다”는 말로 일관하고 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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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무역협정 재검토…“한·미 FTA, 나쁜 협정”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미 상무부와 무역대표부(USTR)는 180일 안에 미국 내 일자리를 빼앗고 무역적자를 심화시키는 무역협정을 조사한 뒤 이에 관한 해결책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윌버 로스 미 상무부 장관은 이번 행정명령과 관련해 가진 브리핑에서 한국을 포함해 미국이 무역수지 적자를 내고 있는 10개 국가를 지목했다. 한국은 미국이 입는 적자 규모로 따지면 8위에 해당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일 한·미 FTA를 비판하고 있다. 그는 28일 워싱턴타임스와 인터뷰에서 한·미 FTA에 대해 “힐러리 클린턴(전 국무부 장관)이 협상한 아주 나쁜 합의”였다고 말했다. 전날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는 ‘끔찍한(horrible)’이란 표현을 쓰며 “한·미 FTA를 재협상하거나 종료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나프타 재협상을 마무리하면 한·미 FTA 재협상에 나서겠다”고 말해 한·미 FTA 재협상이 개시될 경우 시점은 이르면 내년 하반기쯤이 될 전망이다. 미 정부는 무역협정 개정 협상 90일 전에 미 의회에 알려 협상 권한을 위임받아야 한다. 나프타 협상은 오는 9월쯤 시작돼 최소 1년 정도 걸릴 전망이다. 양측의 동의가 필요한 재협상과 달리 종료는 미국이 협정 종료를 희망한다는 의사를 서면으로 통보하면 180일 후에 종료된다.

◇일본·중국은 선방, 우리 정부는 허둥지둥

트럼프 행정부가 한·미 FTA 재협상 의지를 밝히면서 국내 산업계에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30일 한·미 FTA 재협상이 추진돼 관세율이 새롭게 조정될 경우 우리나라에 앞으로 5년간 최대 170억달러(약 19조4000억원)의 수출 손실이 생길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우리 정부는 당황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일 강경 발언을 쏟아내고 행정명령에 서명까지 했지만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아직 미국 정부로부터 공식 요청은 없었다. 여러 경로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 발언 진의와 미 정부의 입장을 확인 중이다”고 말했다. 산업부의 이 같은 반응은 트럼프 대통령의 첫 인터뷰 내용이 전해진 지난 28일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코트라는 30일 ‘트럼프 취임 100일과 미국 통상·경제정책 평가 및 주요국 대응 현황’ 보고서를 발표하고 중국과 일본은 미국과 통상 마찰을 피하기 위해 미국 내 일자리 창출 계획 등 ‘당근’을 제시하며 전략적으로 대응한 반면 우리는 갈팡질팡했다고 분석했다.

미국이 가장 날을 세웠던 중국은 시진핑 주석의 미국 방문을 통해 중국의 대미(對美) 무역 흑자를 줄이기 위한 ‘100일 계획’을 제시하며 환율조작국과 관세 보복을 피했다. 시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산 소고기 수입 재개와 중국 금융기관에 대한 미국 투자자의 주식 보유 한도 증액에도 합의했다. 일본의 경우 미국에 4500억달러 규모 투자와 70만개 일자리 창출을 약속했고 양국 간 고위 협력 체계인 ‘미·일 경제대화’를 출범시켰다. 중국과 일본과 달리 우리는 뚜렷한 대응책 없이 미국에 끌려 다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코트라는 분석했다. 안덕근 서울대 교수는 “신임 정부가 구성되면 미국과 적극적인 정책 공조로 통상 마찰을 피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내 통상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인터뷰와 행정명령이 미국 이익 극대화를 위한 협상 전략일 뿐 전면 재개정이나 폐지까지 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언론들이 ‘광인 이론(Madman Theory)’이라고 부르는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전략이라는 것이다. ‘광인(狂人)’처럼 보이게 해서 겁을 준 뒤 원하는 수준을 높여서 협상하는 전술이라는 것이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장은 “사드 비용 언급을 통해 안보와 통상을 묶어 한국을 궁지로 몰아넣겠다는 전략”이라며 “너무 과민 반응하기보다는 차분하게 대응 전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승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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